
1973년 동북고 3학년 시절 신철수 선생님(오른쪽)과 함께.
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북중학교에서 주최한 장학생 선발시험을 미리 본 적이 있다. 그 학교 서무주임으로 계신 분이 아버지 고향분이어서 알게 된 정보 덕이었다. 함께 과외 공부하던 친구들까지 떼로 몰려가서 실습 삼아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는 나 혼자 합격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대부분이 사교육을 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동북중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1%도 없었기 때문에 내겐 그다지 기쁜 소식도 아니었다. 짓궂은 과외선생님은 동북을 ‘똥북’이라고 발음하며 걸핏하면 “넌 똥북이나 가라”며 놀리셨다. 결국 동북으로 가게 된 후 그 말씀이 씨가 된 게 아닌가 싶어서 한동안 과외선생님을 은근히 원망하기도 했다. 그나마 후기전형으로 입학하면 장학생 대우라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3차, 이른바 보결로 들어온 셈이어서 그런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
학생들의 학업수준은 대체로 삼류(?)였지만 선생님들은 쟁쟁한 일류였다. 실력이 출중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의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영어를 가르치던 정향숙 선생님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여선생님인데도 학생들이 모두 무서워해서 영어시간에는 떠드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국어를 담당하신 오완영 선생님은 꼭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처럼 수업을 하셨는데 나중에 진짜 목사님이 되셨다. 바로 그 오 선생님이 어느 날 나를 부르시더니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가서 신철수 선생님을 만나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반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워낙 소심한 터라 그 말을 들은 후 남은 시간 내내 걱정이 되어 수업에 몰두하기가 어려웠다.
“‘문학의 밤’에 나가봐”
방과 후 1층 교무실로 향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러나 특별히 죄지은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 신 선생님이 자리에 계셨다.
“네가 주철환이야?”
그리 다정한 음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윽박지르는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네가 쓴 거 맞아?”
선생님의 손에는 몇 장의 원고지가 들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지난 국어시간에 내가 제출한 작문 과제물이었다. 왜 내 숙제가 지금 선생님의 손에 들려 있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한번 내 앞에서 읽어봐.”
선생님의 말씀에, 겁에 질린 목소리로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고개를 끄덕이시던 선생님이 짧게 말씀하셨다.
“제법인데.”
중학생이 된 후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그러고는 놀라운 명령을 내리셨다.
“너, 다음 달에 열리는 교내 문학의 밤에 나가라.”
선생님은 이렇게 나의 화려한 데뷔무대를 마련해주셨다. 그 시의 제목은 ‘나’였고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