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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직에서 한직으로, 보안과 형사들의 한숨

“간첩?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요”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요직에서 한직으로, 보안과 형사들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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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화해협력 분위기…, 다 압니다. 하지만 보안형사들까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 수는 없잖아요. 요즘 세상에 우리가 대학생이 데모한다고 마구잡이로 조사하겠습니까? 아무나 잡아들이는 게 아니잖아요. 좌익운동권이면서 반국가행위가 명확해야 합니다. 왜 운동권을 좌익으로 보냐고요? 그들의 조직강령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非)주사계열(ML파)인데도 조직강령에 ‘우리 혁명에 있어 북의 민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제적 지원과 연대는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 관건이다(‘불꽃’ 창간호)’라고 적혀 있습니다. ‘통일’과 ‘민주화’ ‘노동해방’을 명분으로 삼은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요즘은 운동권의 축이 학원에서 노동계로 넘어갔어요. 이제 진짜 무서운 곳은 노동계입니다.”

노동현장을 끼고 있는 지방 일선서 보안과 형사 K씨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현실을 털어놓았다.

“예전처럼 동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형사가 부족해요. ‘보안혁신’이 곧 ‘인원축소’입니다. 요즘 2급지 경찰서에는 보안과가 아예 없어졌어요. 정보보안과로 통합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며 보안수사요원 중에서 인원을 빼 갔어요. 보안수사대(구 대공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남지역 어느 보안수사대엔 운전수하고 대장, 과장만 있는 곳도 있어요. 노동계를 움직이는 세력을 파악할 형사가 없는 거죠.”

운동권 대학생 고문한 밀실

과거엔 보안경찰을 대공(對共)경찰이라 했다. 대공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이적·외환 등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세력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위반사범에 대해 수사를 수행하는 경찰을 말한다. 여기에는 간첩과 반국가사범뿐만 아니라 학원과 종교·노동계의 좌경의식화사범에 대한 수사도 포함됐다.



임종길 전 남영동분실(현 경찰청 보안3과) 수사대장은 대공의 역사를 이렇게 들려줬다.

“제5공화국 때 치안본부에 대공과가 신설됐어요. 건국 초기에는 내무부 치안국 내 사찰과에서 여론을 수집하는 민정사찰과 외사사찰 업무만을 담당했어요. 5·16군사정변 이후 정보과에 소속됐지요. 그러다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대공과가 대공부로 확장되면서 세분화됐죠.”

1991년 5월,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개편되면서 기존 대공부가 보안국으로 개편됐다. 치안본부-대공부-대공분실 체제가 경찰청-보안국-보안수사대 체제로 이름이 바뀐 셈이다. 학원과 노동계의 좌익사범 수사를 관장하던 보안4과는 1999년에 폐지됐다.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87년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은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관의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이후 국민은 대공분실이라는 말만 들으면 ‘운동권 대학생을 잡아서 고문한 밀실’을 떠올리게 됐다. 대공분실이 반인권적인 고문을 자행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밀실수사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5공 말기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이 한 해에 300~400명에 달했다.

대공수사관 출신인 홍승상 전 분당경찰서장은 1980년대를 이렇게 회고했다.

“(대공수사관들이) 운동권 수사에 매달린 이유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민주화투쟁만 했으면 통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없었겠죠. 1980년대 초 대학에 ‘좌경 의식화학습교실’이 생겼어요. 학교에서 공산주의 학습이 이뤄진 거죠. 따지고 보면 전두환 정권이 그 빌미를 준 셈이에요. 당시에 청계천에서 단파 라디오가 동날 정도였습니다. 북한 대남방송을 청취하기 위해서였지요. 결국 치안본부 안에 ‘좌경 의식화 분실’이 만들어진 겁니다.”

감청허가서 잘 안 내줘

홍 전 서장은 “(대공수사관들은) 대학생을 조사하면서 ‘신문의 3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첫째,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 둘째, 범죄사실을 조작하거나 과장하지 말라. 셋째, 순화 차원에서 신문하라…. 그런데 지키지 않는 수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무슨무슨 일을 했고 무슨무슨 범죄사실을 조사해보니 몇 가지가 확인됐다. 이러한 것으로 봐서 이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이었어요. 이건 분명 과장입니다. 상대는 대학생 아닙니까. 마치 도자기를 다루듯 해야 하는데… 고문에 대해서만큼은 대공수사관들이 정말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386세대는 대공분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시내 한 대공분실에 다녀온 적 있는 P씨는 “대공분실은 마치 교도소 같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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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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