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유골함에서 발견된 편지.
중국에서는 육조(六朝)에서 당(唐)에 이르기까지의 한어를 ‘중고한어(中古漢語)’, 이전의 것을 ‘상고한어(上古漢語)’라고 한다. 또 중고한어 이후의 한어를 ‘중세한어(中世漢語)’라 하고,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어를 ‘현대한어(現代漢語)’라 하는데, 광의의 중국어가 바로 현대한어다. 이와 같이 상고, 중고, 중세, 현대로 내려오면서 중국에서 한자 발음은 계속 변했다. 예컨대 ‘학(學)’은 한음(漢音)이나 오음(吳音)으로는 ‘학’이지만, 현대 한어에서는 ‘쉐(Xie-X는 한어병음방안의 발음으로 영어 발음기호와는 다르며, 설면음(舌面音) X는 한글 ㅅ발음과 비슷)’라고 읽는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발음하는 ‘학’은, 한자가 한반도에 유래할 당시의 한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서기 3세기부터 서기 6세기까지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계속됐는데, 북조는 북방 이(異)민족의 나라였고 남조는 한족의 나라였다. 고대 일본은 남북조시대에 중국 남방의 육조문화와 접촉해 한자를 수입했는데, 이때 유입된 한자의 발음이 육조음(六朝音)이다.
육조가 중국의 남방에 있었고, 그때 남방에 자리잡은 대표적 지역 제후국이 오(吳)였으므로, 일본에서는 유입된 한자의 발음을 ‘고온(吳音)’이라고 했다. 오나라는 장강(長江) 하류, 현재의 장쑤(江蘇)성 지방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으며 그 수도는 지금의 난징(南京) 일대였다.
그런데 오음 한자의 대부분은 육조로부터 직수입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쓰시마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인들은 이를 ‘쓰시마온(大馬音)’ 또는 ‘와온(和音)’ 혹은 ‘와온(倭音)’이라 칭했다.
그런데 쓰시마온이나 와온이라는 명칭에는, 오음을 그 뒤에 들어온 ‘간온(漢音)’에 비교해 은근히 멸시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즉 쓰시마온, 와온이라고 한 데에는 ‘중국 본바닥식이 아닌 촌스러운 발음’이라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그것은 오음을 와온이라고 불렀던 반면, 한음을 일명 ‘세이온(正音)’이라고 높여 불렀던 데서도 드러난다.
오음이 한반도와 쓰시마를 거쳐 일본에 유입되고 난 뒤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7~8세기에 일본의 견당사(遣唐使)나 유학승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한자와 한어를 다시 배워 왔다. 이때 배운 한자와 한어는 남방 육조나 한반도식이 아닌 북방 수·당의 것으로 오음과는 달랐다. 이에 일본인은 당시 중국의 대 통일제국 수·당의 음을 정통으로 생각하고 존경하게 된 것이다.
가나(カな)의 뿌리는 신라 구결(口訣)
이때 일본에 유입된 한자의 발음은 실은 당나라의 장안음(長安音)이었는데, 장안음으로 발음되는 일본의 한자음을 ‘간온’ 또는 ‘세이온’이라고 불렀다. 간온이 유학승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진 시기는 당대였지만, 중국에서 그 발음이 정리된 시기는 한대였기에 당나라의 장안음을 일본에서는 간온이라고 불렀다.
그후 남송부터 원·명에 걸쳐 일본의 승려가 중국을 왕래했는데, 승려에 의해 일본에 전래된 송·명 시기 한자어의 발음을 당송음(唐宋音) 또는 당음(唐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음들이 당대나 송대의 발음은 아니다.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 일본에 들어온 남송부터 원·명대까지의 한자 발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오음·한음·당음은 같은 글자지만 발음이 크게 다른 경우도 있다. 가령 외(外)자는, 外科(げか, 게가)라고 할 때는 오음으로, 外國(がいこく, 가이고쿠)이라고 할 때는 한음으로, 外郞(ういろう, 우이로)이라고 할 때는 당음으로 쓰인다.
이와 같이 일본 한자(Sino-Japanese)는, 한자 발음의 유출 지역과 유출 시기에 따라서 오음, 한음, 당음으로 명확히 구분해 정리하는 것이 특색인데, 베트남(Sino-Vetnamese)이나 한국(Sino-Korean)도 일본처럼 한자를 수입했지만 이렇게 정리하지 않았다.
고대 일본은 견수사(遣隋使)를 세 번, 견당사를 열아홉 번 중국의 장안에 파견해 수·당의 선진문화를 배웠다. 견당사의 인원은 대개 100명 이하였으나, 많을 때는 594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