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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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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2003년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변. 드문드문 자작나무숲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녹아 있다. 하늘을 찔러 올라간 자작나무의 끝엔 조각구름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혹한의 1월, 같은 길에서 보았던 자작나무숲보다는 오히려 덜 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10여 회 방문길이 되어버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작나무숲은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이방인을 맞았다.

백야(白夜)! 글자 그대로 하얀 밤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빛! 북위 60。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6월은 빛의 앙금으로 인해 과도하게 늘어난 시간이 사람들을 밖으로 밖으로 내몬다. 낮과 밤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현지인이나 이방인이나 몽유병 환자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그 종착지는 러시아인의 어머니강 ‘네바’다. 새벽 1시, 피터대제의 겨울궁전 에르미타주에서 바실레프스키 섬 입구의 삼각주에 등대처럼 보이는 해전 기념 원주로 이어지는 궁전다리가 위로 들리고 그 사이를 유람선이 유유히 드나든다. 이때야말로 네바 강변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각이다. 불꽃놀이가 쉴 새 없이 펼쳐지고 홍조를 띠는 가로등 밑에서는 연인들의 밀어가 멜랑콜리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백야의 중심에는 마린스키 극장이 주도하는 ‘백야축제(Stars of White Nights)’가 있다. 1993년부터 시작된 백야축제의 중심에는 세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마린스키 극장의 수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있다. 여타의 다른 축제와는 달리 백야축제는 엄청난 무대 장치가 소요되는 러시아 오페라를 거의 매일 무대에 올리며 이밖에 러시아의 자랑인 발레와 심포니 콘서트도 병행한다.

오페라와 발레를 낮 시간과 저녁 시간에 동시에 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극장은 세계에서도 마린스키 극장이 유일하다. 마린스키가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200년에 이르는 독특한 극장 운영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백야축제는 단숨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름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아스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음악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 세계 음악계의 화두는 단연 탄생 250주년을 맞은 모차르트, 서거 100주기의 슈만, 그리고 탄생 100년이 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다. 필자가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먼저 찾는 곳이 바로 노보데비치 수도원이다. 이곳은 크렘린의 출정식이 열렸던 곳으로 러시아인의 기상과 기백이 스며 있는 러시아 정신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한데, 러시아혁명 후인 1922년에 박물관으로 지정됐고, 1934년 이래 국립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러시아를 움직인 예술가와 흐루시초프를 비롯한 정치가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헤아리면 2000기 남짓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5인조, 도스토예프스키가 잠들어 있는 네프스키 수도원 묘역이 있다면 모스크바에는 러시아의 예술혼(魂)이 잠들어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이 있다.



2003년 6월16일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짙은 녹음이 푸른 물을 쏟아내는 듯 싱그럽기 그지없다. 이방인이 수천기가 넘는 묘지에서 그 주인을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인 피아니스트 페투호프와 클리코바의 안내로 위대한 거장들의 마지막 자취를 하나씩 더듬어갔다. 구묘역 동쪽에 스탈린 정권과 평생 애증관계에 있으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켰던 쇼스타코비치의 묘지가 단아하게 누워 있다. 말년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작곡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대작곡가의 음성이 귓가를 스치는 듯하다.

지난 2월1일, 모스크바 브뤼소프 거리에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자택에서 만난 그의 부인 이리나 여사가 전해준 고인의 말년에 대한 회고가 생생히 떠올랐다.

“남편은 자신이 1인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자신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동료들을 더 값지게 여겼죠. 브리튼의 음악을 사랑했고 프로코피예프를 존경했으며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이해하고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시대 음악가들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음악을 위한 인생을 영위하고자 노력했지요. 흔히 스타들이 갖는 교만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증언대로 겸손하고 인간적인 작곡가의 묘비 위에 이름 모를 참배객이 놓고 간 꽃바구니가 정겨워 보였다. 순간 쇼스타코비치의 아파트 거실에 걸린, 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예프가 그린 13세 어린시절 작곡가의 초상화와 겹쳐진다. 목탄과 붉은 크레용으로 그려진 그 그림은 파란만장했던 천재의 삶을 예고라도 하듯이 대단히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묘비에 어린 쇼스타코비치의 얼굴이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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