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맞대결! 명사의 입담

  • 저자 이윤재 / 편집기획·진행 구미화

    입력2006-11-16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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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artee는 ‘임기응변, 재치 있는 응답, 재치 있게 맞받아치기’란 의미이고, feisty repartee는 ‘공격적인 응답’이란 뜻이다. put-down은 ‘되받아치기’이다. sarcasm은 그리스어로 ‘살을 찢는 듯한 빈정댐’이란 의미였는데, 오늘날에는 ‘비꼼, 비꼬는 말, 빈정거림, 빈정대는 말’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sarcasm이 일반 개인에 대한 빈정거림을 의미하는 반면 satire는 ‘사회 제도, 사회적 권위자 등에 대한 비꼼’을 뜻한다. Face to Face Confrontations between Celebrity(명사들의 정면대결), 그 진수를 골라보았다.

    마돈나 vs 샤론 스톤

    마돈나가 샤론 스톤에게 I want to kiss you(당신에게 키스하고 싶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샤론스톤이 이렇게 응답했다. Not in this lifetime. Why? Because I’m the only one she hasn’t done it to(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왜냐고? 나는 그녀가 키스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지)라고. 마돈나의 표정이 어땠을까?

    카트라이트 vs 링컨

    1846년 연방 하원의원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은 유명한 감리교 복음전도자이던 피터 카트라이트(Peter Cartwright)와 맞붙었다. 선거운동기간 중 링컨은 카트라이트가 인도하는 종교집회에 갔는데 카트라이트가 한참 설교한 후 All who desire to lead a new life, to give their hearts to God and go to heaven will, stand (새로운 삶을 누리며 하나님을 충심으로 받들어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는 자, 모두 일어나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일어서는 사람이 몇 안 되었다. 이에 카트라이트가 All who do not wish to go to hell will stand(지옥에 가고 싶지 않은 자, 모두 일어나시오) 하고 말했다. 이번엔 모든 사람이 일어났는데, 오직 링컨만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카트라이트가 물었다. Mr. Lincoln, where are you going? (링컨씨, 당신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링컨의 대답이 압권이다. If it is all the same to you, I am going to congress.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전 국회로 가겠습니다.)



    더글러스 vs 링컨

    Truth is generally the best vindication against slander. (진실이 중상모략에 대한 최선의 해명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58년 일리노이 주에서 미국 상원의원선거에 입후보했다. 그는 당시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와 경쟁했는데, 더글러스가 링컨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중상모략을 서슴지 않았다. 술 판매가 금지되던 시절, 식품가게를 운영했던 링컨에 대해 “링컨씨는 지난날 식품가게를 경영하면서 술을 팔았습니다. 금주(禁酒) 시대에 술을 판 사람이 뻔뻔스럽게 상원의원이 되겠다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라고 야유했다. 더글러스의 공격에 링컨은 이렇게 대응했다.

    What Mr. Douglas has said is true enough. But in those days Mr. Douglas was one of my best customers. I can also say this: I have since left my side of the counter, while Mr. Douglas sticks to his. (더글러스씨가 말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글러스씨는 제 가게를 애용한 단골 고객 중 한 분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죠. 저는 지금 그 가게에서 손을 뗐지만 더글러스씨는 여전히 드나들고 있습니다.)

    또 한번은 더글러스가 링컨을 two-faced man(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링컨이 이렇게 받아쳤다. I leave it to my audience, If I had another face, do you think I would wear this one? (저는 그 말을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만일 제게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제가 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I leave it to my audience, if I were two-faced, would I be wearing this one?이라고 씌어진 문헌도 있다.

    링컨은 더글러스와의 대결에서 결국 패했지만 일곱 차례의 공개토론 결과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아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포크너 vs 헤밍웨이

    맞대결! 명사의 입담

    각각 1949년과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포크너(왼쪽)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는 1954년 노벨문학상을 탄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 대해 He has never been known to use a word that might send a reader to the dictionary(그는 독자가 사전을 뒤져봐야 하는 단어는 단 한 개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헤밍웨이는 포크너를 향해 Poor Faulkner. Does he really think big emotions come from big words(불쌍한 포크너. 그는 정말 커다란 감정이 커다란 단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말했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I rewrote the first part of Farewell to Arms at least fifty times.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첫 부분을 적어도 50번은 고쳐 썼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이렇게 말했다. Easy reading is damn hard writing.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렵다.) 한편 미국의 저널리스트 진 파울러(Gene Fowler)는 이렇게 말했다. Writing is easy: All you do is sit staring at a blank sheet of paper until drops of blood form on your forehead. (글쓰기는 쉽다: 백지를 응시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이마에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

    윈스턴 처칠 vs 애스터 부인

    윈스턴 처칠은 남다른 유머감각으로 유명했다. 그는 어느 날 애스터 부인(Lady Astor)이 사치스럽다고 비난했다. 이에 화가 난 애스터 부인이 처칠에게 한 방 날렸다.

    Lady Astor : If you were my husband, I’d put poison in your coffee. (당신이 내 남편이라면 나는 당신 커피에 독약을 타겠어요.)

    Churchill : If I were your husband, I’d drink it! (내가 당신 남편이라면 기꺼이 마실 거요.)

    문헌에 따라서는 If I were your husband가 If I were married to you로도 전해진다.

    Lady Astor로 불린 낸시 애스터(Nancy Witcher Astor)는 1879년 미국에서 태어나 여성 최초로 영국 하원에 진출한 정치가다.

    버나드 쇼 vs 윈스턴 처칠

    버나드 쇼는 ‘Pygmalion’ 첫 공연에 윈스턴 처칠 총리를 초청하기 위해 단신을 보냈다.

    TO WINSTON CHURCHILL: Am reserving two tickets for you for my premiere. Come and bring a friend if you have one. (처칠 귀하: 귀하를 위해 제 작품 첫 공연 표 두 장을 남겨놓았습니다. 친구가 있으면 함께 오셔서 보시지요.)

    처칠의 회답은 이러했다.

    Impossible to be present for the first performance. Will attend the second if there is one. (첫 번째 공연엔 참석할 수 없군요. 두 번째 공연이 있으면 그때나 참석하겠습니다.)

    버나드 쇼가 if you have one(친구가 있으면)이라고 sarcastic comment(빈정대는 말)를 하자 처칠이 if there is one(두 번째 공연이 있으면)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두 사람 다 없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one이라는 부정(不定)대명사를 썼다. 즉 버나드 쇼는 처칠에게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모욕을 주고, 처칠은 쇼의 연극이 1회 공연으로 끝날 것이라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어떤 문헌엔 버나드 쇼가 처칠을 초청한 공연이 ‘Saint Joan’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Saint Joan은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 또한 처칠이 답장에 Will attend the second if there is one 대신에 Would it be possible to have tickets for the second night if there was one?이라고 썼다고 기록된 문헌도 있으나 의미엔 별반 차이가 없다.

    이사도라 던컨 vs 버나드 쇼

    미모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과 버나드 쇼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우생학(優生學) 신봉자인 던컨은 쇼에게 아이를 갖자고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Think of a child with my body and your mind. What a wonder it would be! (나의 육체와 당신의 두뇌를 닮은 아이를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놀라워요!) 쇼의 대답이 압권이다. Yes, but what if it had my body and your brains? (그렇지, 그런데 만일 내 육체와 당신의 두뇌를 닮으면 어쩐담?)

    이 일화의 주인공이 이사도라 던컨이 아니라 이탈리아 여배우 두세(Eleonara Duse)라고 기록된 문헌도 있다.

    알렉산더 해밀턴 vs 애런 버

    1804년 7월11일 오전 7시, 미국 뉴저지 허드슨 강변 숲에서 두 발의 총성이 잇따라 아침 공기를 갈랐다. 10보의 거리를 두고 한 사람은 그대로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일어서다 다시 쓰러졌다. 서 있는 사람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애런 버(Aaron Burr)였고, 쓰러진 사람은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었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총결투(pistol duel)가 벌어졌다. 해밀턴의 탄환은 애런 버에게서 몇 피트 떨어진 나무에 박혔고 애런 버의 탄환은 해밀턴의 오른쪽 간을 관통했다. 해밀턴은 그 다음날 죽었다. 그의 나이 49세. 그는 결투 전날 밤 이런 글을 썼다.

    I am strongly opposed to the practice of dueling for both religious and practical reasons, and I have resolved, if our interview is conducted in the usual manner, and it pleases God to give me the opportunity, to reserve and throw away my first fire, and I have thoughts even of reserving my second fire. (나는 종교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결투라는 관습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대면이 일상적인 방식대로 이루어져 신의 도움으로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발은 쏘지 않고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두 번째도 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나중에 이 같은 내용을 전해들은 애런 버의 반응은 Contemptible, if true(그게 사실이라면 한심하군)이었다. 해밀턴은 숨을 거두기 전 I was going to intentionally fire my first shot to the side(나는 일부러 첫발을 빗나가게 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결투 다음날 오후 애런 버는 이렇게 말했다. Had my vision not been impaired by the morning mist, I would have shot Hamilton in the heart. (아침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만 않았어도 해밀턴의 심장을 맞췄을 텐데.) 애런 버를 만난 벤담(Jeremy Bentham)이라는 사람은 Burr is little better than a murderer(버는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해밀턴은 아내와 7명의 자식을 빚더미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친구들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었다.

    결투의 발단은 이렇다. 뉴욕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해밀턴이 자신에 대해 a dangerous man, and one who ought not to be trusted with the reins of government(위험한 인간, 정권을 맡겨서는 안 될 인간)이라고 말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애런 버가 해밀턴에게 prompt and unqualified denial or an immediate apology(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회나 신속한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해밀턴이 만족스러운 대응을 보이지 않자 결국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해밀턴은 미국 독립전쟁 중 워싱턴의 부관으로 활약했고 미국이 배출한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미국 경제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현재의 10달러 지폐에는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애런 버도 독립전쟁 때 워싱턴의 참모였다. 그러나 이 사건 후 도망함으로써 정치 생명에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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