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스타 공화국에서 연예기자로 산다는 것은

  • 일러스트·박진영

    입력2007-08-07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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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공화국에서 연예기자로 산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TV에선 김태희가 모델로 나선 휴대전화 광고가 나온다. 출근길에 이나영 포스터가 붙어 있는 화장품 가게를 지난다. 점심때는 한 스타가 자주 간다는 음식점으로 손을 이끄는 동료를 따라 그 음식점으로 향하고, 퇴근 후 직장인들이 향하는 헬스센터에는 ‘당신도 2개월만 하면 몸짱 차승원 이효리처럼 된다’는 구호가 붙어 있다.

    예비 신인 자원을 발굴하는 오디션장. 수많은 젊은이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 연습, 노래 연습에 한창이다. 오디션을 잘 보지 못한 여학생은 길거리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방송사 화장실에서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학교에 갈 시간인데 왜 방송사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까. 한 케이블 음악채널에 좋아하는 스타가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먼 발치에서나마 스타를 보기 위해 방송사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결석도, 몇 시간째 화장실 냄새를 맡는 것도 그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타를 볼 수 있다는 설렘 앞에서는. 자정을 넘은 시각, 앳된 그러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흐른다. 전화를 받자 다짜고짜 입에도 담지 못할 육두문자가 날아든다. 전화를 끊지만 계속 이어지는 전화와 욕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비판한 기사에 대한 항의였다.

    10년 동안 대중문화에 관련된 글을 써오면서 한국 대중매체와 연예계의 변화, 특히 급변하는 스타의 위상을 지척에서 지켜봤다. 연예인 예비 자원을 발굴하고 교육·훈련해 연예계에 데뷔시킨 뒤 스타로 키워 유통시키는 스타 시스템은 더욱 더 정교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산업화했고, 연예인과 관련된 대중매체가 급증했다. 그리고 스타를 소비하는 팬들의 연예인에 대한 인식도, 연예인의 위상도 크게 변했다.

    연극영화, 신문방송, 음악 관련 학과가 130여 개 대학에 신설돼 한 해에만 1만여 명을 배출하고 있고, 연기학원이나 음악학원은 내일의 보아와 문근영을 꿈꾸는 청소년으로 넘쳐난다. 연예인 등용문 구실을 하는 기획사나 영화사의 오디션 경쟁률은 1000대 1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이제 ‘연예인 고시’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을 정도다.

    이뿐인가. 1000여 개에 이르는 전국 미인대회 참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연예인을 꿈꾼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예비 스타 스카우터들이 출몰하는 거리에는 오늘도 수많은 청소년이 배회하고 있다. 연예인 취재현장에서 종종 “어떻게 하면 자녀를 연예계에 데뷔시킬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부모들을 만난다. ‘딴따라’가 되겠다는 자식을 책망하던 부모의 자리는 연예인 자녀를 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대신하게 됐다.



    이제 대한민국은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대한민국은 스타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스타 공화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중매체가 스타의 화려한 면모를 확대 재생산하는 탓이 제일 크다.

    희소한 자원인 스타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을 형성해 몸값부터 출연 상황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다. 수요자인 PD나 영화감독이 권력을 갖던 시대는 지났다.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무리한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 인터뷰 약속장소에서 수십명의 기자가 한두 시간씩 스타를 기다리는 일이 예사다.

    스타 한두 명의 영입으로 주가가 춤을 추고, 드라마 한 회당 스타 출연료가 1억원을 웃돈다. ‘딴따라’는 구식 용어로 전락했고 ‘문화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때문에 스타를 발굴하고 유통·관리하는 연예기획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스타라는 로또 당첨을 꿈꾸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등록된 연예기획사는 2000여 개지만 실제 연예기획사는 훨씬 많다.

    스타에 목매는 곳은 연예기획사만이 아니다. 스타를 활용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대중매체와 스타에게 삶의 의미를 찾는 팬들 역시 스타에 과잉 의존하고 있다. 신인들은 단 한 번의 출연 기회를 잡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촬영장에서 스타에게는 스타의 이름이 새겨진 의자가 제공되지만, 일반 연기자들은 땅바닥에 앉아 스타 위주로 짜인 촬영에 임해야 한다.

    팬들 역시 스타의 정보와 홍보를 도맡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자신의 ‘오빠’(스타)를 비판하는 기자에게는 전화 테러는 물론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한다. 스타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태세다.

    스타가 모든 것을 갖는 스타 독식구조는 더욱 더 견고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 스타 공화국의 문제가 심각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연예 저널리즘이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공화국에서 연예기자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편견과 유무형의 압력으로 인한 자기검열, 상업성을 추구하는 매체의 요구, 타 연예매체와의 치열한 생존경쟁 등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널려 있다.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하고 많은 분야 중에 왜 하필이면 ‘딴따라 기자’를 하느냐고. 심지어 연예인들도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왜 하필이면 연예 담당 기자를 하냐’고 묻는다. 연예인에게 덧씌워진 편견이 연예기자에게도 전이된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묻는다. “A연예인과 B연예인이 사귄다는 게 사실이야?” “C연예인은 예쁜데 순 ‘성형발’이지?” “D스타는 바람둥이라는데 진짜야?” 많은 사람은 ‘연예인 기자=가십·스캔들 기자’라고 생각한다. 스타와 대중문화는 이제 대중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끼치고 청소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연예기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강변은 연예기자에 대한 편견 앞에서 한 기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대중문화를 파고든 심도 있는 기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스타들의 신변 기사들이 네티즌의 열띤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자극성 기사에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가창력 없는 가수와 연기력이 부족한 연기자가 막강한 기획사를 등에 업고 스타로 부상하고, 연예기획사가 스타를 내세워 자사 소속 신인들을 끼워 파는 독점 행태 등을 다룬 비판 기사를 힘들여 쓰고 난 뒤 항의와 비판을 받으면 회의에 빠진다.

    하지만 스타 공화국인 이 땅에서 좀더 좋은 연예기자가 되고 싶기에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처음 담당하던 10년 전, 대중문화 텍스트를 면밀히 살피기 위해 산 4대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고 모니터를 시작한다. 비판과 견제 없는 무한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듯 스타 공화국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대중을 오도(誤導)하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연예기자의 존재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딴따라 기자라는 편견도, 쏟아지는 악플과 욕설도, 스타와 연예기획사의 권력도 기사 쓰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포털에 ‘배국남’을 치면 뜨는“이 인간은 왜 이렇게 욕만 먹느냐”라는 글에도, ‘배국남 처단 모임’이라는 섬뜩한 안티카페의 등장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스타 공화국에서 연예기자로 산다는 것은
    배국남

    1962년 전남 나주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서강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한국일보 기자

    現 마이데일리 대중문화 전문기자, 충북대· 한서대·한성대 예술대학원 강사

    저서 : ‘여의도에는 낮에도 별이 뜬다’ ‘윤석호 PD의 세계’(공저)


    스타 공화국에서 연예기자로 사는 것은 힘들지만 그럴수록 존재 의미는 더욱 커진다. 열심히 쓴 기사에 달린 고등학생의 격려의 글 한 줄, 자신을 비판했음에도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노력하겠다는 스타의 전화 한 통, 건강한 비판은 연예기획사의 튼실한 토대가 된다는 기획사 사장의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변화가 발전적 방향으로 길을 잡는 작은 움직임을 볼 때 스스로를 다잡게 된다. 나는 스타 공화국의 연예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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