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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10

희망과 만남의 열매 여는 향유네 포도밭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희망과 만남의 열매 여는 향유네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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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가운 머슴살이 3년

희망과 만남의 열매 여는 향유네 포도밭

비가 오는데도 풀을 베는 향유아빠. 머슴 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러나 바르게 사는 길만 확인했지 손에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살 곳을 찾아 전국을 돌다 경북 김천에서 유기재배 포도농사를 짓는 김성순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분 도움으로 종관씨는 머슴살이를 시작한다. 스물일곱 나이에. 낫 한 번, 호미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던 사람이 밑바닥부터 시작하겠다고.

머슴. 요즘에는 참 낯선 단어다. 내가 자라던 1960년대엔 동네마다 머슴이 흔했다. 땅이 없어 가난한 집 아들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잣집에 들어가 그 집의 농사일과 잡일을 해주는 머슴살이였다. 한 해가 끝나면 새경을 받곤 했다. 한창 자랄 때인 사춘기 무렵부터 머슴살이를 하다가 점차 독립한다.

우리 사회가 공업화의 길을 걸으면서 시골에서 머슴이 사라졌다. 종관씨가 머슴살이를 시작한 해가 1998년이니 요즘 세상에 머슴이란 ‘오래된 미래’라고 할까. 머슴이라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일도 배우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꾸릴 수 있으니 종관씨는 달갑게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결혼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김현씨와 결혼해서 같이 농사짓기로 했는데, 식을 올릴 형편이 못 되었다.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식을 올리기로 하고 같이 살기로 한다. 그러자 농장 주인인 김 선생이 마음을 써주셨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니 꼭 식을 올리라고 하면서 마을 빈집도 소개하고, 우선 급하게 결혼자금으로 쓰라고 300만원을 빌려주셨다.



부모 도움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큰일들을 한꺼번에 치러냈다. 믿었던 부모님은 때마침 터진 외환위기로 사업이 어려워졌고, 집안의 큰아들인 종관씨는 오히려 부모를 뒷바라지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몸도 마음도 다시 태어나야 하고, 기술도 익혀야 했다. 부부 관계도 시작이니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주 큰일이었다. 부부는 젊음 하나 믿고, 척박한 농촌에 적응해가야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독립의 길로 나아갔다. 머슴 일을 줄이면서 독립해서 할 수 있는 농사의 규모를 늘려가는 식으로. 두 번째 해는 주중에는 머슴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제 농사를 따로 지었다. 남은 쉰다는 주말이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1분이 아까웠다. 달 밝은 밤이면 달빛이 아까워서라도 일을 했다. 남의 일을 하는 거와 자신의 일을 하는 거는 다를 수밖에. 월급쟁이와 경영자의 차이라고 할까. 생산, 선별, 가공, 유통, 서비스 등 전 과정을 자신들이 책임지는 거다.

서러운 임차농, 그 막막함이란

그러다가 머슴살이 3년 만에 김 선생에게서 독립한다. 지역도 김천에서 상주로 옮겼다. 하지만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 시간의 독립일 뿐이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자신들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한다는 것일 뿐, 땅은 여전히 남의 땅을 빌려야 했다.

그런 조건에서 꾸준히 농사를 지어 기술을 익히고, 독립된 판로를 개척할 만큼 외연을 넓혔다. 그 사이 향유가 태어났다. 향유엄마는 아기가 태어난 걸 기뻐했지만 향유아빠는 기쁨은 잠깐, 부양해야 할 식구가 늘어난 거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남의 땅에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땅 주인이 환경농업에 대한 이해가 있고 장기 임차가 가능하다면 그나마 아주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환경농업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당시에는.

땅이란 공산품과 달리 아무거나 선택할 수 없다. 인연이 닿아야 하고, 때가 맞아야 한다. 임대하는 땅은 조건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땅 주인도 농사를 짓지 못해 버려둔 땅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교통이 안 좋다거나 땅 힘이 약하다거나 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땅 주인은 주인대로 욕심을 낸다.

풀약(제초제)을 쳐서 풀을 태우듯이 하며 농사짓던 주인은 향유네 농사 방식이 못 마땅했다. 향유네는 초생재배(草生栽培)를 한다. 풀이 ‘적당히’ 있는 게 좋다는 거다. 풀이 있음으로 땅의 온도가 자연스럽게 조절되고, 풀뿌리는 흙이 쓸려가는 걸 막아주며, 풀이 많이 자라면 베어 거름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은 풀이 있다면 그 풀이 거름을 다 빨아먹는다고 여긴다. 주인 눈에 풀이 보이면 곧장 잔소리를 해댄다. ‘풀 키우냐? 풀약 쳐라.’ 그렇다고 향유네는 독약이나 다름없는 제초제를 뿌릴 수는 없었다.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 거다. 그럼, 주인은 ‘내년에는 밭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농사를 지어보면 알지만, 땅을 살리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한두 해 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비료와 제초제로 땅이 척박해진 곳일수록 더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땅 주인에게 사정하다시피 설득하고 나면 다음은 ‘임차료를 올려달라’라는 말이 나온다. 농업이란 내 땅에 농사를 지어도 돈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 아닌가. 임대차 계약을 하고 농사를 시작했지만 적지 않은 부담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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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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