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구글의 창조적 환경은 우리 기업 문화가 지향해야 할 바다. 오른쪽 사진은 구글 R&D센터 한국지사.
지식산업의 부상
제조업 공동화는 산업 기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대로라면, 미국은 그때 주저앉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무렵, 미국엔 또 하나의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미래주도형 지식산업의 부상이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1975), 스티브 잡스의 애플(1976), 스콧 맥넬리의 선 마이크로시스템(1982), 시스코(1984) 등 세계적인 IT 하이테크 기업들이 이 시기에 창업했다. 고도의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지향적 지식산업의 확장이 제조업 공동화의 공백을 메워줬다. 이 시기에 본격화한 미국의 지식산업은 1990년대에는 인터넷 혁명을 주도했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들어 야후, 이베이, 구글, 유튜브로 이어진다. 오늘날 혁신적 인터넷 사업의 세계 주도권을 미국이 갖고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결론은 제조업의 공동화로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건재하다. 한국도 그럴 수 있다. 산업구조 피라미드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제조, 생산, 단순 개발이 아닌 부가가치 높은 지식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지 않고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자. 먼저, 제조업에서 지식산업으로의 진화는 일직선의 진화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축으로 방향타를 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즉 새로운 DNA가 필요하다. 기존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인드, 획일적인 가치관이 아닌 다양한 가치관의 수용, 조직의 기존 틀이 허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개인의 창의성 존중, 이런 것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제조업 공동화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런 DNA가 사회·문화 전반에 잠재했다. 1950년대 소수민족 인권운동은 단지 흑인의 인권신장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기존 사회질서의 재정립을 초래했고, 이러한 전통적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은 1960년대 히피문화운동으로 연결됐다. 흔히 히피라고 하면 탈사회적 건달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사회 주류로 편입되면서 기존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새로운 실험과 창조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제조업 공동화의 공백을 메운 미래지향적인 지식산업이라는 배는 이런 환경에서 발주됐다.
지금 한국의 사회·문화 코드에 새로운 축으로 방향타를 돌릴 만한 DNA가 있는가. 기존 질서에 도전장을 던졌던 386세대가 있다지만,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전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 생활 5년 만에 내린 결론
지난 5년 동안 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매일 신문이란 신문은 죄다 샅샅이 읽고,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곁눈질하고, 내 주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틈만 나면 지방도로 양 옆에 숨어 있는 군, 면, 읍, 리를 찾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양파 껍질 한 겹만 벗기면 한국은 여전히 농경사회다.”
겉보기엔 인터넷 시대의 최첨단을 걷는 것 같지만,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농경사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집단 공동체 의식과 수직적 위계질서가 사회문화 코드의 핵을 이룬다.
농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근면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계절에 맞춰 파종과 수확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개개인의 일탈을 막아야 한다. 수렵사회와 달리 한 곳에 정착해 서로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공동체의식이 발전한다. 공동체의식은 획일적 가치관을 구심으로 집단구성원의 결속을 요구하고, 공동체 밖의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을 불러온다. 내 편, 네 편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구성원의 내부 충성에 혼란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특성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주된 가치관으로 정립된다.
이런 사회를 유지하려면 엄격한 위계질서 확립이 필수다. 혼자 튀는 개인의 창조성보다 공동체 리듬에 맞추는 순종이 강조된다. 이런 틀에서 보면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현상들이 설명된다. 학연, 지연, 혈연이 주가 되는 인맥 코드는 누가 내 편이고 누가 네 편인지 가르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다. 상명하복(上命下服)식 조직문화는 개인의 일탈을 막아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문화와 가치관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도 이해할 만하다. 비합리적이고 비합법적인 것이 집단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용인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