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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8

“달 밝은 밤에 함께할 사람 없어라”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달 밝은 밤에 함께할 사람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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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청의 역사·문물 비교

“달 밝은 밤에 함께할 사람 없어라”

고북구 열하로 가는 중간지점에 새로 중수한 만리장성이 지나고 있다. 금산령(金山嶺)이라 한다.

여기서부터 ‘열하일기’ 제6장에 해당하는 ‘태학유관록(太學留·#53949;錄)’에 접어든다. ‘태학유관록’은 문자 그대로 태학관에 유숙하는 엿새 동안(8월9~14일)의 일기다. 다만 8월9일자 일기 중 오전 9시 이전의 것은 ‘막북행정록’ 편에, 오전 9시 이후의 것은 ‘태학유관록’편에 씌었다.

태학관 생활은 연암보다 먼저 유숙한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토론으로 시작됐다. 대리(大理)에서 온 통봉대부 윤가전(尹嘉銓)을 비롯해 조선에서 온 귀주(貴州) 안찰사 기풍액(奇豊額)과 왕거인(王擧人) 민호(民?) 등이 연암과 대담을 나눴다. 토론의 주제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았다. 천문, 건축, 목축, 종교, 음악, 문학을 넘나들었다. 그중 17세기부터 조선에 일기 시작한 지전설 같은 천문학이나 황교(黃敎) 같은 새로운 종교 파문이 주의를 끌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역사나 문물 비교는 비록 단편적이긴 해도 두 나라 문화사 정리나 역사관 정립에 시사한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연암은 상고사로부터 현대사까지 그 대강을 요약했다. 먼저 우리 고대사를 거론하면서 기자조선이 주나라 무왕(武王)의 봉강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만조선은 당시 진(秦)나라가 연(燕)족을 거느리고 조선에서 편거(偏據), 곧 일부 점거한 것이라고 했다. 그 국토 또한 요동땅을 포함 5000리에 뻗었던 것이 중고(中古)시대에 들면서 5000리 미만으로 줄었다가 고려 이후 연암 당시까지 3000리를 지켰노라고 했다.

그리고 연암은 당시 조선이 유교를 숭상하고 송나라의 문화와 예속을 따르는 ‘소중화(小中華)’임을 자인했으나 중국 역사에 기록된 조선의 문물이나 예술은 오늘의 조선이 아니고 기자·위만 때의 그것을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중국의 편견을 지적했다.



연암은 종착지인 열하에서도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갈등과 모순에 줄곧 시달렸다. 태학에 들어온 날, 군기(軍機·청나라 황제의 고문부)의 장경(章京·공문 수발을 관장하는 관원)이 와서 황제의 조서를 전달했다. 다름 아닌 건륭 고희연 자리에 참석할 조선 정사의 반열, 그러니까 외교 의전상 위치를 지정한 것이었다. ‘우반 이품말(右班 二品末).’ 그러니까 우열의 2품품관 끝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건지는 몰라도 청나라의 생색이 남세스러울 정도다. 조선 사절을 우반에 세우는 것은 전에 없던 특전임을 강조하고, 한술 더 떠 그 은총에 황감하다는 말씀을 예부에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 그 감사의 뜻을 황제께 상주하겠다는 것. 조선 사절이 머뭇거리자 독촉을 빗발치듯했다. 조선 사절은 할 수 없이 예부에 글을 올렸다. 황제의 은총에 감격한다고 말이다.

티베트의 성승은 중국인?

그렇게 뜻에 없는 감사를 올리고 속이 뒤틀린 판에 또 한번 벼락이 떨어졌다. 국책을 흔들 만큼 엄중한 일이었다. 8월10일, 건륭황제의 조찬에 초대받고 조선 정사와 부사가 궐내에 들어가 삼배구고두의 예를 갖추었는데, 그날 밤 군기대신이 정사를 예방해 또 황제의 명령을 전했다. “티베트의 라마 성승(聖僧)을 만나보지 않겠는가?” 하고. 날벼락이었다. 참모들의 불평이 들끓었다. 정사는 어이가 없었다. 청나라에 외교 사절로 와서 청나라 아닌 비방교국(非邦交國)의 지도자를 임의로 방문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런데도 군기대신은 “티베트의 성승은 중국인이나 다름없다”며 압박했다.

여기서 연암의 천의무봉한 상상이 또 한번 나래를 폈다. 만일 우리 정사가 라마 성승 만나기를 막무가내로 거절한다면? 청나라의 대(對)사절 조치는? 이 일로 우리 사절을 중국의 저 귀퉁이,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살이 시킬지도 몰라? 그럼 나도 덩달아 구경 길에 오를지도 모르지! 의리로 보아 혼자 귀국할 순 없잖아? 강남땅은 물론 광동땅 월남땅 서쪽땅까지 밟아보리라고.

연암은 손가락으로 하늘에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에, 사절단은 난제를 만나 끙끙 앓는데 연암은 철없이 구경할 생각으로 시근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튿날, 피서산장에서 황제를 알현한 뒤 라마를 예방하고, 그 답례로 금부처 하나 받는 것으로 날벼락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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