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코틀랜드에서는 6월 하순부터 한밤중에 티샷을 하는 ‘백야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저도 골프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경기의 철칙이요 골프의 정신일 것입니다. 이참에 시민광장의 사용권과 세탁권에 관해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로부터 1년 뒤,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지구의 최고 실권자이던 존 해밀튼 대주교가 1532년 1월25일부로 이른바 ‘해밀튼 헌장’을 공포했다. 스월컨번의 너른 뜰은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평등하게 목축, 수렵, 골프, 축구, 활쏘기, 군사훈련,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민광장의 성격이 명확하게 표시된 헌장이었다.
해리 바든의 캐디
한참 후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역사책 속에 잠들어 있던 이 헌장을 한 청년이 다시 현실세계로 끌고 나왔다.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이때의 소송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찾은 길, 이제는 73세의 노인이 되었지만, 봅 마크레인의 굳은 일자 입술에는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탁권 소송에 대해 듣고자 찾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에든버러의 민사법원에 제소하셨지요? 자신에게 스월컨번에서 세탁할 권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소. 실은 70년쯤 전에 크리스토퍼 게인이라는 남자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의 손녀사위고요. 원고가 죽은 뒤 소송을 승계해 마침내 판결을 받아냈을 뿐입니다. 나는 인문학적 성향에 독서가 취미인 사람입니다. 싸움질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자손으로서 선조의 명예와 권리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에든버러 커트’라고 하는 아름다운 유리잔에 봅 마크레인은 고급 싱글버렐을 가득 따라주었다. 마침 석양이 창문으로 비껴들어 유리잔의 액체가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러자 실내가 풍요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왜 크리스토퍼 게인은 빨래를 할 수 없게 된 샛강에 미련을 가졌던 것일까요?”
“실은 일요일의 산책이 원인이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올드코스 일대는 해밀튼 헌장에 따라 보호되는 시민광장이지요. 그런데 골프장측에서는 잔디밭이 상한다는 이유로 산책길을 말뚝으로 둘러싸서 보행의 자유에 제한을 가했습니다. 이는 시민에게서 광장을 빼앗는 만행이고 오만이었죠. 그래서 세탁권을 이유로 저의 조부님이 일어섰던 것입니다.
결코 골프를 혐오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골퍼였고 저도 골퍼니까요. 그러나 골프를 하지 않는 시민도 많습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을 위해 골프장측의 횡포를 규탄하는 일은 골퍼가 맡는 게 정당하다고 조부께서는 생각하셨던 거지요. 물론 저도 그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하고요.”
“재판에 이겼으니 당신은 이제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스월컨번에서 빨래를 할 수 있게 됐군요.”
“그렇죠. 그런 마음만 있다면요. 물론 농담입니다. 요즘에는 누구나 빨래를 세탁기로 하니까 그 샛강에서 빨아야 할 빨랫감은 없지요. 지금은 수량(水量)이 워낙 적어서 넘어져 굴러버릴지도 모르고요. 만일 제가 작정하고 빨래를 하기 시작한다면 라운드하는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셔츠다, 팬티다, 샛강 주변에는 온통 말리려고 널어놓은….”
“조부인 크리스토퍼 게인씨께서는 어떤 인물이셨나요?”
“해리 바든의 캐디셨다고 하더군요.”
“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