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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의 본성(들)’

유전자냐 문화냐…인간 진화에 대한 연구

  •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과학사 및 과학철학 daeik@chol.com

‘인간의 본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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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식의 내용, 논증, 주장은 다른 대가들의 것들과 어떻게 다른가. 논의 스케일과 디테일이 비슷하다고 해서 책의 메시지와 가치마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평하자면, 이 책은 스케일과 디테일 면에서는 특급 저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그런 자료들로부터 이끌어낸 결론과 주장은 본성론을 제시한 기존의 다른 학자들의 것과는 대립각을 형성한다.

우선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빠져 있어서 본성이 시대와 문화, 즉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기존의 본성론이 여전히 낡은 이분법-즉 ‘유전자 대 환경’ ‘본성 대 양육’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유전자는 김치찌개 요리법?

문제는 저자가 겨냥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유전자 결정론이나 ‘본성 대 양육’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지금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화살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왜 제대로 된 생물학자들 중에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 사람이 없는지부터 살펴보자. 이유는 간단하다. 치사 돌연변이 유전자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적절한 환경이 없이 유전자만으로는 그 어떤 표현형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해 특정한 표현형(인간의 몸, 마음 그리고 행동)을 산출한다는 이론이 입증된 지 오래고, 이것은 도킨스와 진화심리학자들이 모두 받아들이는 기본 전제다. 예컨대 사람의 키는 대체로 유전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만 영양 상태에 따라서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극단에는 인간이 어떤 유전자들을 갖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환경에 의해 표현형이 산출된다는 환경 결정론이 버티고 있다. 인간이 백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던 존 로크에서부터 비둘기를 잘만 훈련시키면 파일럿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에 이르기까지 환경 결정론에 발을 담근 이는 의외로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견해 역시 유전자에 관한 진실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그 유전적 기초 없이 나올 수는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 행동에서 유전자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유전자는 마치 김치찌개를 끓이는 요리법과도 같다. 이 요리법에는 김치찌개를 어떻게 끓이라는 기본적인 지시사항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려면 기본적인 요리법 이외의 것들이 잘 갖춰져야 한다. 예컨대 맛깔 나는 김치, 잘 다져진 양념 등이 적절한 시점에 들어가지 않고는 요리법만으로 맛있는 김치찌개가 끊여질 리 없다. 마찬가지로 유전자는 적절한 환경적 요인들과 상호작용해 인간의 몸, 마음, 그리고 행동을 만들어낸다. 보다 중요한 물음은 이 상호작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본성 대 양육 논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본성이 오랜 진화 과정을 겪은 유전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그것은 고정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불행하게도 이런 믿음은 유전자 결정론의 한 형태로서, ‘인간 본성’(즉, 우리의 진화된 심리)과 그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저자가 비판하는 견해이지만, 주류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대체로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즉 준보편적이고 거의 변하지 않으며 인간 종(種)의 전 역사를 통해서 태어난 (정상적) 아기들 모두에게 공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본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간의 행동은 가변적이며 다양하다. 고정된 규칙들(본성 또는 심리 기제)이 다양한 환경의 입력 속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다윈이 주장했던 자연 선택은 우리의 심리 메커니즘을 설계함으로써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했다.

살인에 관해 잘 알려진 진화심리학적 연구는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연구에 따르면 살인율은 사회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지만 살인 양상은 정확히 일치한다. 예컨대 1970~80년대 미국 시카고의 살인율은 연 100만명당 900명 정도인 데 비해 영국 웨일스의 살인율은 100만명당 30명 정도였고 아일랜드에서는 살인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 지역들 간에는 유의미한 유전적 차이도 인간 본성의 차이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살인율을 다르게 만든 요인은 유전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다. 이것이 바로 리들리가 말한 ‘양육을 통한 본성’의 사례다.

신동아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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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과학사 및 과학철학 daeik@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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