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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5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보자기로 사람, 자연, 역사를 감싸고 치유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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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갖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를 통한 천과의 자기 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1988년 현대화랑 도록의 ‘작가노트’ 중에서

이렇게 그의 초기 작업은 천에서 시작됐다. 그에게 천은 일상적인 옷에 다름 아니었다. 옷이란 인간이 부끄러움을 알고 나서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에게 옷이란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대체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 옷이란 삶의 조건이자 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옷은 제2의 피부’라는 말처럼 그 사람을 대변하기도 한다. 즉 옷이라는 외피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사람 됨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고인의 옷을 태우는 우리네 관습도 따지고 보면 옷이 갖는 인물의 대체재로서의 의미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서양의 가방, 동양의 보자기

보자기는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보(褓)’ ‘복(?)’ 또는 ‘복(福)’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복(福)자를 쓰는 이유는 보자기를 복을 싸두는 용기의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지방별로도 이름이 조금씩 달라 보대, 밥부재, 보재기, 보래기, 포대기, 보자, 보따리 등 다양하게 불린다.

보자기가 처음에는 무언가를 가리고 덮는 옷의 개념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보자기인 선암사의 탁자보를 탁의(卓衣)라 하고, 갓난아이를 싸는 천을 강보(襁褓)라 하는 것도 옷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어령은 “서양인은 가방을 만들어냈고 동양인은 보자기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같은 운반용, 포장용 수단이지만 가방은 한 가지 기능만 하는 대신에 보자기는 다양한 목적과 수단을 지닌다. 또 가방은 용도가 없을 때도 자체의 모양과 무게를 지니지만 보자기는 접어두면 된다. 게다가 자신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정한 자기 모양도 없다. 그리고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두루 다 쌀 수 있다. 그 자체가 ‘공(空)’인 까닭에 천변만화(千變萬化)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보자기로 김수자는 세계를 싸기 시작했다(The Heaven & the Earth, 1984). 그의 바느질은 연역적 오브제로 이어진다. 그에게 바느질은 바늘을 가지고 천에 구멍을 내어 서로를 잇는 행위였다. 하지만 바느질이란 바늘로 상처를 내는 한편 그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바느질이란 하나의 행동이 이중적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지게 등 민속적인 농기구들이나 사다리, 빨래걸이 등을 일일이 천으로 싸고 감는 행위(Untitled, 1991)를 통해 당시 물성에 대한 생각을 안료가 아닌 천을 통해 구현하기도 한다. 물질을 에워쌈으로서 새로운 물질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작업은 당시 매우 신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진화를 시작한 김수자의 천과 보자기는 사각의 틀을 벗어나 벽면에 부착되기도 하고(어머니의 땅을 향해, 1990~1991), 바닥에 놓이거나 모서리에 걸쳐지거나 또는 다른 오브제를 감싸면서 새로운 공간(장소)과 만나게 된다. 이 공간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장소, 그리하여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보자기도 관객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장소’가 된다(꽃을 향하여, 1992). 이후 이 장소라는 개념은 보따리만큼이나 그의 작품을 결정짓는 뼈대가 된다.

그의 보자기는 이 장소에 던져진 것처럼 널려 있거나 전시장 벽면의 틈새에 끼워지는 형태의 설치작업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더 이상 천을 자르고 꿰매지 않는다. 대신에 있는 그대로의 천에 최소한의 형태를 부여하는 보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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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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