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은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뒤져 물병을 꺼냈다. 병마개를 열고 꼭지를 입술로 가져갔지만, 그대로 머뭇거리다 도로 내려놓았다. 청년이 심호흡을 크게 들이쉬어 숨을 고른 후 다시 물병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병에 든 액체를 목구멍으로 털어 넣지 못하고 주저했다. 청년이 물병을 집어던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병신, 그것도 못해! 도대체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청년이 한참을 흐느껴 울다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구두끈을 풀어 나뭇가지에 매달고 목을 맸다. 청년이 가느다란 구두끈에 매달려 신음했다. 숨이 막혔고 얼굴에 핏대가 섰다.
툭. 꽈당.
구두끈이 청년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 차가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청년은 혁대를 풀어 나뭇가지에 매달고 다시 목을 맸다. 혁대에 목이 졸려 숨통이 끊어진 청년의 몸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밤새 싸늘하게 식어갔다.
청년의 시체는 이튿날 오전 부근을 지나가던 수리조합 사무원에 의해 발견됐다. 소사주재소 경관과 부검의가 현장으로 출동했을 때, 시체 주위에는 양잿물이 담긴 물통, 끊어진 구두끈, 책가방 등이 흩어져 있었다. 사망시간은 오전 1시로 추정됐다. 가방 안에는 일기장과 유서가 들어 있었다. 일기장에는 진로와 연애에 관한 고민이 씌어 있었고,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호라! 나는 생양가(生養家) 부모님께 길러진 지 19년. 부모님의 은혜를 만 분의 일도 못 갚고 죽으니 불효가 막심하다. 여러 가지 말을 쓰고자 하나 눈물이 앞을 가려서 못 쓰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 가치도 없이 죽는 것이 무엇보다도 분하고 억울하다.” (‘시험에 낙제하고 청년 학생 자살’, ‘조선일보’ 1925년 3월15일자) |
교복 주머니에는 구겨진 경기도 사범학교 수험표가 들어 있었다. 수험표에는 466호라는 번호만 적혀 있을 뿐 수험생의 이름과 주소는 씌어 있지 않았다. 경찰은 시체를 계남면장에게 인계해 가매장하고, 경기도 사범학교에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경기도 사범학교 입시 담당자는 ‘466호 수험생은 서울 옥천동에 사는 19세 청년 이인복이며, 이번 입시에 불합격했다’고 확인했다. 살인적 입시경쟁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을 또 한 명 잡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