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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6

어떤 그릇에 담아 먹을 것인가

생활과 예술 사이, 조선 도자기의 슬픈 역사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어떤 그릇에 담아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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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릇에 담아 먹을 것인가

일본 도쿄지역의 정식 상차림과 그릇.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도자기 오타쿠 한 사람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시미즈 유키오(淸水幸夫)라는 40대 중반의 회사원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골동품 도자기를 감상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특히 유약을 도자기 표면에 흘려서 만든 삼채(三彩) 도자기에 매료되어 자신도 한번 만들어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집 근처에 있는 도예교실을 다녔다. 지난해에는 100V 전원을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가마까지 구입했다.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 집 한 채를 따로 마련한 시미즈씨는 아예 ‘도다방(陶茶房) 시미즈(淸水)’라는 작은 간판까지 거실에 매달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시미즈씨는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작업장으로 간다. 점토로 그릇 모양을 서너 개 정도 성형해 말린다. 토요일에는 마른 그릇을 전기가마에서 1차로 굽는다. 그 다음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내기 위해 유약을 다양하게 발라본다. 작은 전기가마에서 구울 수 있는 그릇은 4~6개다. 토요일 저녁에 2차로 전기가마에서 그릇을 구워낸다. 작업을 하면서 그가 좋아하는 재즈를 틀어놓고, 말리고 굽는 시간엔 자신이 만든 컵에 담은 커피를 마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이 책에는 시미즈씨와 같은 이 두 명을 더 소개하고 혼자서 도자기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약 140쪽에 걸쳐서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한다. 비록 전문적인 도자기 가마에서 구워낼 만한 수준 높은 그릇을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나 가족, 혹은 지인들이 사용할 술잔, 밥그릇, 접시 등을 직접 만든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수준의 기술을 익히면 정년 이후에도 자신만의 직업 아닌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조리사에서 옹기 장인으로

전북 진안군 마이산 언저리에 있는 백운면 솥내마을에 가면 40대 중반의 이현배라는 옹기장이가 일하는 가마가 있다. 이현배씨는 대학에서 서양조리기술을 전공하고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다가 초콜릿과 색깔이 비슷한 옹기에 빠진, ‘먹물 든’ 옹기장인이다. 고향이 장수군인 그는 호텔 조리실에서 일하면서 문득 어릴 때부터 보아온 옹기가 떠올랐다. 결국 1980년대 후반에 호텔 일을 그만두고 고물장사에 나선다. 그 목적은 전국을 다니며 잘생긴 옹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옹기를 보면서 점차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갔다. 마침내 1991년, 전남 승주에 있는 옹기 가마를 찾아간다. 본래 이 가마는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고(故) 한창기 선생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당시 이 가마에선 ‘남도 전통 옹기쟁이 박나섭의 한평생 “나 죽으믄 이걸로 끄쳐 버리지”’(뿌리깊은나무, 1990)의 주인공 박나섭이 일하고 있었다. 이현배씨는 여기에서 3년여, 그리고 경북 문경의 분청사기 가마에서 1년여 동안을 그릇 만드는 기술을 익히며 보냈다.

이씨는 박나섭 옹이 생전에 늘 말했듯이 옹기 굽는 일을 ‘흙일’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일이 힘들고 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5년 가까이 흙일 배우기에 빠진 끝에 그는 지금의 솥내마을에 온전하게 남아 있던 가마 하나를 구입했다. 1970년대까지 솥내마을은 옹기 굽는 가마가 3곳이나 있었지만, 이씨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2곳의 가마는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로 버려져 있었고, 오로지 한 곳만 재생이 가능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부인의 적극적인 배려로 그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곳에 정착, 옹기장이가 됐다.

호텔에서 양과를 만들던 솜씨와 옹기 굽기 수련과정에서 익힌 기술로 그는 박나섭의 옹기와 닮은, 옛 맛이 진하게 나는 옹기를 만들 수 있었다. 옹기는 청화백자나 고려청자 만드는 과정에 비해 복잡하지 않다. 그렇다고 간단한 것도 아니다. 점토를 물에 담그고 다시 꺼내서 질이 고운 바탕흙을 만드는 것 자체가 흙으로 그릇 빚는 장인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발로 물레를 돌려서 점토로 크고 작은 그릇을 만드는 일 역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옹기의 냉혹한 현실

이렇게 성형한 그릇을 그늘에서 잘 말린 후 가마에서 구워내면 질그릇이 된다. 말린 그릇에 유약을 바른 뒤 가마에서 구워내면 옹기라고 부르는 오지그릇이 된다. 이씨의 옹기 가마는 청화백자나 백자를 굽는 가마와 닮았다. 그만큼 크다. 경사진 언덕에 누워 있는 가마에 그릇을 가득 채우려면 적어도 그릇이 500개는 넘어야 한다. 여기에 불을 지펴서 가마 속에 남아 있는 산소를 모두 태우고 나면 흙 그릇은 유약과 산화해 단단해지면서 비로소 색도 그 자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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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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