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노무현의 옥동자’ 정연주(KBS 사장) 퇴진 못 시키면 이명박 정권 좌초”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6-11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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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위는 ‘노무현 홍위병’이자 ‘KBS 방패막이’였다
    • 노 정권, 방송위 이권사업 개입 의혹
    • ‘비상식’과 ‘특정 이념세력 챙겨주기’
    • 정연주 사장의 편파방송·방만경영…방송위는 눈감고
    • 정 사장, 출근 저지하면 호텔에 사장실 차릴 사람
    • 정연주 퇴진-공영성 강화-수신료 인상 동시 추진해야
    • MB캠프 출신 KBS·YTN 사장 임명 안 된다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방송위원회 위원(9명)은 방송사 허가, 방송사 등록 취소, 프로그램 및 광고에 대한 심의의결 등 방송에 대해 막강한 행정권을 행사해왔다. 방송위원은 KBS 사장 임명 제청권을 가진 KBS 이사와 MBC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에 대한 임명권도 갖고 있었다. 1981년 출범한 방송위원회가 최근 정보통신부와 통합되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출범하면서 방송위원의 권한은 대부분 방통위로 이관됐다.

    작심하고 ‘정연주 퇴진’ 주장

    노무현 정부 시절 방송위원을 역임(2006년 7월~2008년 2월)한 김우룡(金寓龍·64)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은 방송위에 압력을 넣어 이권사업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 ‘비상식’과 ‘특정 이념세력 챙겨주기’로 얼룩졌다. 방송위는 정연주 KBS 사장의 편파방송과 방만한 경영을 눈감아줬다”고 밝혔다.

    김 전 방송위원은 작심하고 ‘정연주 사장 퇴진론’을 폈다. 그는 “‘노무현의 옥동자’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키지 못하면 이명박 정권은 견뎌내지를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 인터뷰는 5월11일 오후 그의 자택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먼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이 막강해졌어요. 방통위는 대통령 산하 독임제 행정기구 성격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방송위 시절보다 더 축소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반대로 방통위원장 1인의 방송 분야 인사권·정책 결정권이 지난 방송위 위원장에 비해 훨씬 더 커졌어요. 그런 자리에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상임고문이던 최시중씨가 임명됐어요. 최 위원장은 방송·통신 분야의 전문성 문제를 지적받자 ‘통신사 기자를 해봤다’고 답변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배짱 한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사 사장 인사와 관련, 최근 YTN 이사회는 표완수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거쳐 새 사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 상임특보 출신인 구본홍 전 MBC 보도본부장이 YTN 새 사장 후보로 부상하자 이 회사 노조는 그의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또한 방송계에서는 “정연주 KBS 사장의 후임으로 이명박 후보 선대위 방송전략팀장 출신인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유력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KBS·YTN 사장의 조건

    ▼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KBS와 YTN의 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능력과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추고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대선 공신(功臣)들에게 정부 부처나 공기업의 공직을 내주는 것은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 말아야 할 자리가 있어요. 상당한 전문지식과 지혜가 필요한 자리,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자리가 그것이죠. 방송사 사장직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식견 있고 존경받는 인물일지라도 특정 정치인 캠프에 몸담았다면 방송사 수장이 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봅니다.”

    ▼ 거론되는 분들이 ‘공정보도 할 테니 믿어달라’고 한다면….

    “아무리 소신을 갖고 공정보도 하겠다고 해도 이미 이미지가…. 특정 정파 색깔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모자 쓴다고 가려지는 일이 아니죠.”

    ▼ 그래도 임명을 강행한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언론 특보 출신 서동구씨를 KBS 사장에 앉힌 전례가 있습니다.

    “정권이 마음먹으면 캠프 출신 인사를 방송사 사장에 임명할 수 있겠죠. 그럴 경우 방송사 내부에서 균열이 엄청날 거예요. 노조가 반발할 거고. 당사자는 상처 입게 되고 경영 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될 겁니다. 해당 방송사도 언론으로서의 신뢰도가 실추될 수 있어요. 서동구 사장도 반발에 부딪혀 며칠 만에 그만뒀잖아요.”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정연주 KBS 사장

    김 전 위원은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가 인사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마당에 방송사 사장 인사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방송의 생명은 객관성입니다. 저널리즘 교과서는 ‘객관성은 신화(神話)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방송이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도 사실이죠. 사장이 되겠다는 후보자 본인의 의지가 강하고 정권의 신임이 두터워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청와대는 그런 짓 말아야 해요. 무리도 보통 무리가 아닙니다.”

    이어 김 전 위원은 자신이 몸담았던 노무현 정권 시절의 방송위에 대해 “개개인을 비판할 뜻은 없다”면서도 “방송위 시절에 대해선 통절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2006년 7월 구성된 3기 방송위는 시작부터 좋지 않았어요. 정치색이 강했습니다. 노조가 출입을 막아 방송위원들은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목동 주변 호텔에서 한동안 회의를 했죠. 방송위는 민간 합의제 기관이라지만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을 갖지 못했어요. 정책은 좌파 이념에 경도되어 있었고 노무현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곤 했죠.”

    “규정에도 없는 특혜 지원”

    김 전 위원은 “심지어 노무현 정권의 일부 실세는 케이블방송 공익채널 지원과 관련된 방송위의 고유 업무에도 압력을 행사해 자신과 가까운 특정 사업자나 이념세력에 이권을 챙겨줬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 공익채널 지원사업이 어떤 겁니까.

    “종합유선(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 등에서 방영되는 여러 채널 중 일부는 문화, 과학, 복지, 외국인 시청자 분야 등 시청률이 저조하고 광고주가 선호하지는 않지만 공익적으로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다룹니다. 방송위가 지난해 이런 채널들을 ‘공익채널’로 선정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게 국고를 지원해 정책적으로 육성하기로 한 사업이 공익채널 지원사업이죠. 공익채널로 선정되면 상당액의 지원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전국망에 방송이 되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큰 이권이 됩니다.”

    ▼ 공익채널 선정 과정에 잡음이 있었나요.

    “사실은 2006년부터 시작하려 했는데 선정과정에서 별의별 구설이 나와 1년을 연기한 거죠. 그런데 지난해 11월 선정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 잡음이 엄청나게 나왔어요. 밀어붙인 거죠. 특정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미리 내락한 뒤 그 사업자에게 유리하도록 선정 기준을 맞췄다는 의혹도 나왔죠.”

    ▼ 그렇게 볼 근거는 무엇인가요.

    “어떤 채널을 공익채널로 선정하려면 그동안 그 채널이 방영한 프로그램들이 어느 정도 공익적이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방송위는 ‘기존 방송 실적이나 경영능력을 참고하지 않겠다’는 선정 기준을 정한 거예요. 결국 특정 사업자를 봐주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실제로 방송을 한 번도 내보내지 않은 A사업자가 공익채널로 선정됐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 실세 측이 이 사업자와 가까웠다고 해요.”

    ▼ 공익채널 선정에 당시 여권의 입김이 있었다는 건가요.

    “심한 편이었죠. 공익채널로 선정된 B사업자의 경우엔 노무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특정 이념세력이 설립한 방송사업자였어요. 방송위는 B사업자에게 제작비 15억원을 지원했는데 이는 방송위 규정에도 없던 특혜였죠. 이 밖에 공익채널로 선정된 사업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관변 미디어’였어요. 이러다 보니 정작 사업취지에 맞게 지원받아야 할 사업자는 탈락했죠.”

    김 전 위원은 “방송위원회의 각종 정책은 당시 청와대 등 여권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결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했다.

    ▼ 방송위의 이념적 편 가르기 논란이 잦았다면 왜 그때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요.

    “방송위 내부의 일은 밖으로 잘 공개되지 않아요. 방송위는 진보좌파 진영은 적극 밀어주고 보수우파 진영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제재를 내리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방송위에서는 서울시청이 운영하는 교통방송의 뉴스 보도를 금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죠. ‘교통방송의 대표자인 서울시장(이명박)이 특정 정당(한나라당) 소속이어서 편파·왜곡 뉴스가 자주 나오니 뉴스 보도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였죠.”

    “관영 미디어에만 뉴스 허용”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방송위원회가 2006년 12월 지상파 방송 재허가와 관련된 회의를 하고 있다.

    ▼ 교통방송의 뉴스 보도가 실제로 중단되지는 않았죠.

    “내가 강하게 반대했죠. ‘그런 논리라면 국회의장이 특정 정당(열린우리당) 소속이므로 국회방송도 뉴스를 중단해야 한다. 국정홍보처의 대표자인 대통령도 특정 정당 소속이니 한국정책방송(KTV)도 뉴스를 내려야 한다’고 반론을 폈어요. 내가 ‘교통방송이 편파·왜곡보도로 심의 제재받은 사례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 건도 없다’고 해요. 논리에서 밀리니까 슬며시 철회하더군요.”

    방송위는 KBS 이사 11명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인사는 노무현 정권이 하고 방송위는 거수기에 불과했다고 한다. “KBS 이사는 공개모집을 통해 선임하도록 돼 있는데 허울뿐이었다. KBS 이사 11명 중 8명은 청와대 등 여권이 2, 3배수로 추천하는 인물 중에서 됐다”는 것.

    그는 또 “방송위가 국회방송, 국정홍보처 산하 한국정책방송(KTV), 아리랑TV, 방송대학TV(OUN) 채널에만 뉴스 보도 기능을 새로 허용하고 나머지 케이블TV 채널에는 허용하지 않은 것은 정권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KTV가 뉴스 보도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종용하자 이렇게 얄궂은 선정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얄궂은 선정’이란 KTV 등 국영 3개 미디어에 뉴스를 허용하는 대신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OUN을 끼워 넣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OUN 측은 “우리는 뉴스 보도 기능을 원하지도 않는데 허용됐다”는 공문을 방송위에 보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은 “언론학자인 내가 보기에 기상천외한 조치였다”고 했다. 노 정권 시절 국정홍보처와 KTV는 보수 신문들과 대립 양상을 보였으며 ‘정부가 스스로 정부 관련 뉴스를 제작해 보도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 국영 채널을 중심으로 4개 케이블 채널에만 뉴스 보도 기능을 새로 허용한 것은 부당한 조치였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모든 케이블 채널에서 뉴스 보도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케이블 채널에는 ‘부편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영화 채널은 영화 콘텐츠를 80% 방영하고 나머지 20%는 재량에 맡기는 거죠. 그 20%를 뉴스 보도에 활용해도 무방하다고 봐요. 영화 채널은 영화 관련 뉴스를 주로 보도하면 되는 거죠. ‘아무나 뉴스를 보도하면 폐해가 클 것’이라고 하는데, 부작용을 우려해 표현의 자유 자체를 사전에 제약하는 것은 헌법의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관영 미디어에만 뉴스 보도를 허용한 게 더 큰 문제 아닌가요? 뉴스 보도 기능을 일부 방송사업자가 계속 독점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도 나눠먹기 동참”

    ▼ 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나라당도 자신과 성향이 맞는 인물을 방송계에 진출시키는 ‘코드 인사’를 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야당도 마찬가지로 나눠먹기에 동참했어요. KBS 이사 공개모집 때 야당 문광위 의원들은 3배수 인물을 방송위에 전달하면서 그 안에서 야당 몫의 이사를 선임하라고 종용하죠. 다만 여권 추천 인물이 수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방송위나 KBS 이사회의 인선은 전반적으로는 여권과 성향이 맞는 코드 인사, 보은(報恩) 인사, 말 잘 듣는 사람 뽑는 인사로 흘렀어요.”

    ▼ 그러나 KBS 이사진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별로 없었는데요.

    “KBS 이사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장의 경영을 감독하는 기능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의해 사실상 구성된 KBS 이사진은 정연주 사장과 같은 코드다, 정 사장의 독단과 독주를 방치했다, 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방송위가 원칙대로 이사를 선임하지 못한 거죠. 방송위, KBS 사장, KBS 이사가 같은 편이니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 되지 않는 겁니다.”

    김 전 위원은 “방송위는 KBS에 휘둘리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KBS 수신료 인상 문제를 근거로 들었다.

    “수신료 인상은 KBS 이사회가 결의하고 방송위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받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거쳐’라는 법률 표현의 의미가 애매해 방송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어요. 회의 끝에 ‘거쳐’에 대해 ‘검토하여 국회가 표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의견을 첨부하여 보내는 것’으로 정의했죠. 방송위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해 KBS 수신료 인상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정연주 사장은 수신료 인상에 올 베팅한 듯 보였어요. 사원과의 약속이고, 임기 연장을 위한 카드로 비쳤어요. 그러나 방송위에선 검토 시한인 두 달을 거의 다 채웠죠.”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KBS공정방송노조 조합원 30여 명이 4월30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정연주 사장 자택 앞에서 정 사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방송위가 그만큼 충분히 검토해 의견을 표명했다는 의미 아닌가요.

    “이 문제가 두 달을 끈 건 내가 강력하게 지연작전을 폈기 때문이죠. 방송위의 지배적 분위기는 ‘KBS의 안(案)대로 빨리 긍정 의견을 국회로 보내자’였어요. 이에 저는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는 의견을 낼 때 내더라도 KBS의 경영 개선을 촉구하는 조건 정도는 붙여야겠다’고 맞섰죠. 결과적으로는 제 요구가 어느 정도 관철됐죠.”

    이어 김 전 위원은 “KBS가 경영난으로 수십억원대 국고지원을 요청하자 방송위는 이를 수용했다. 방송위는 KBS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줬고 KBS의 문제점에 대해선 눈감아주었다. 방송위는 KBS의 ‘방패막이’와 같았다”고 주장했다.

    600억대 적자와 편파성 논란

    KBS는 2004년 638억원 적자를 기록하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국고보조금 43억원과 방송발전기금 60억원을 받았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2007년 공개한 KBS의 ‘2007년 추정 재무자료 및 향후 3년간 추정 재무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KBS의 2007년 적자액은 737억원으로 추산됐으며 2008년 1320억원, 2009년 2143억원, 2010년 2786억원으로 적자폭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김 전 위원은 “방송위는 정연주 사장과 긴밀하게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가 정연주 사장을 적극 옹호했다. 일부 방송위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의 홍위병처럼 행동했으며 KBS를 적극 감싸는 태도를 보였다. 방송위가 KBS에 포위돼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OBS 경인방송의 경우 방송사 설립을 추진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친미보수성향’으로 알려지자 허가를 내주는 데 2년 이상을 끌었으며, 롯데그룹이 우리홈쇼핑 인수에 6개월 이상 걸린 것도 방송위의 ‘반(反)기업 정서’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은 “방송위를 매개로 한 노무현 정권의 ‘정연주 사장 밀어주기’ 분위기 속에서 정 사장은 독주를 했다”고 주장했다. “KBS의 적자폭이 6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였습니다. 방송의 생산물은 정신적 산물이어서 구체적 원가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연주 사장의 경영 방식은 ‘방만하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어요.

    방만할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의미도 퇴색시켰어요. KBS는 타 방송사와의 연예오락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면서 연예인 출연자의 출연료를 급등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민영방송과 차별화해 공익성을 제고하는 모습을 프로그램 편성에서 뚜렷이 드러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미흡한 측면이 있었어요. 예산을 전용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나타났죠. 여기에다 대통령 탄핵 방송에서는 편파 보도가 심했어요.”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행정지도를 하고 싶었지만 방송위는 통상적 심의에만 의존했고 이 같은 정책 차원의 심의는 외면했다. KBS의 영향력이 큰 만큼 KBS 감시는 방송위의 매우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인데 이러한 책무는 놓아두고 SBS, OBS, 롯데만 잡았다”고 했다.

    ▼ 탄핵 방송의 경우 보수진영에서는 편파·왜곡 방송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계적인 50대 50 균형 맞추기 보도가 반드시 공정보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습니다만.

    “그냥 보기에도 탄핵 방송은 편파적이었어요. 이 건은 워낙 명백해서 분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예요. 우의(牛意), 마의(馬意), 조작된 여론이 동원됐어요. KBS는 노무현 정권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고 노 정권과 방송위는 정 사장 임기 내내 그에게 관대했어요. 그런 노 정권이 SBS는 옥죄었죠.”

    “정 사장 있는 한 인상 어렵다”

    ▼ SBS 재허가 문제 말인가요.

    “방송위가 2004년 재허가 문제로 SBS를 상당히 괴롭혔죠. SBS에 대해 3년간 100억원씩 사회에 출연하라고 결정했어요. 일종의 징벌적 조치인데 사실 말이 되지 않아요. 방송도 기업인데 정상적으로 세금 내면 되는 것이지, 사회 출연금을 강요받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김우룡 전 방송위원의 직격탄

    2004년 4월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1만여 명의 시민이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카드를 들고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출연금은 어떻게 사용됐나요.

    “SBS는 300억원을 다 낸 것으로 압니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방송위가 관여했죠. 그 돈을 국방부 정보화사업에도 썼어요. 웃기는 용도죠. 방송위는 지역민방에 대해서도 공익법인에 출연하게 하고 롯데엔 우리홈쇼핑 인수 때 500억원을 출연하라고 했죠. OBS 허가를 내줄 땐 대주주인 백성학 회장 및 그 계열사 임원이 3년간 방송사 임원으로 취임할 수 없도록 했어요. 월권이에요. 방송위는 노 정권과 코드가 맞는 정연주 사장에겐 수신료 인상, 국고지원, 프로그램 심의 등 현안마다 협조적이었고, 노 정권과 이념적 성향이 맞지 않는 다른 사업자에겐 허가 지연, 재허가 연기, 수백억대 출연금 요구 등 혹독하게 대했어요. 이런 환경에서도 KBS 경영상태는 악화됐죠.”

    ▼ 정연주 사장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 있나요.

    “둘이서 한 번 봤어요. 식사하자고 연락 와서. ‘수신료 인상 건 좀 도와달라’고 당부하는 자리였어요.”

    ▼ KBS 이사회는 TV 수신료를 현행 월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한 바 있는데요. 수신료 인상은 정 사장뿐 아니라 KBS의 대다수 구성원이 공감하는 사안 아닌가요.

    “나도 수신료 인상은 KBS가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982년 신문 1부 월 구독료가 1800원 정도일 때 월 수신료가 2500원이었어요. 지금 신문 1부 월 구독료가 1만5000원인데 TV 수신료는 그대로죠. KBS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서라도 수신료는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광고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겠죠.”

    ▼ 그렇다면 수신료가 인상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신료는 강제 징수되는 세금 성격이 강합니다. 물가 심리와도 연계돼 있고, 정부나 국회로서도 국민 설득이 어려운 사안 중 하나예요. 서민들은 라면값 몇백원 오르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월 4000원으로 인상하는 건 간단히 처리할 사안이 아니죠. 광고 없이 판매 없습니다. KBS2 TV 광고를 줄이는 것이 국내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해요. 현실적으로 KBS에 ‘수신료 인상’을 주면 KBS도 ‘기업 윤리’ 차원에서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해결되지 않겠어요? 이건 뒷거래도 아니고 사회와의 투명한 주고받기 같은 거죠.”

    “KBS 사내 승진 사장 나와야”

    ▼ 그 ‘주고받기’는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형식적으로는 KBS 측이 먼저 경영 청사진을 확정해서 제시한 후에 국회에서 수신료 인상 건이 의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정연주 사장의 퇴진이죠.”

    ▼ 정 사장의 거취에 대해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KBS에서 불행한 일은 사내 승진으로는 사장이 한 번도 배출되지 않았다는 거죠. 정 사장의 경우 신문기자 출신으로 경영적 실패와 거센 편파 방송 논란을 불렀어요. 나도 MBC PD 출신이어서 방송 현장 사정은 어느 정도 알아요. 이제는 비(非)당파적이면서 방송 전문성을 갖춘 KBS 내부 인사가 하루빨리 사장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자체가 KBS의 경영 청사진이에요. 사실 정 사장이 연임하고 있는 것은 오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었죠. ‘노무현 정권과 잘 통한다’는 게 정 사장의 기반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탄핵 방송은 아무리 느슨한 잣대로 봐도 편파적이었어요.”

    ▼ 방송사 사장의 임기는 방송의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보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임기일 경우에만 보장돼야 합니다. 정 사장의 경우 방송사 수장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전문성’이나 ‘비당파성’ 요건이 부족함에도 오직 ‘특정 정치권력 코드’로 사장이 됐어요. 그렇다면 그 권력이 소멸됨과 동시에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마땅한 거예요. 재론의 여지가 없어요. 나는 덕망과 능력을 충분히 갖춘 인사라도 이명박 후보 캠프에 몸담은 경력이 있다면 KBS의 새 사장이 되어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 사장도 마찬가지예요. 정 사장은 캠프에 가담만 안 했다뿐이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 앞장서서 기여한 일등공신이에요. 그의 정치적 편향성은 세상이 다 알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의 수장을 계속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KBS는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영방송의 길로 가야 합니다.”

    ▼ 그러나 정 사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남은 임기를 다 채워주기를 원할 것 같은데요.

    “저도 그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출근을 저지당하면 호텔에 사장실을 마련해 거기서 업무 볼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보여준 뱃심으로 봐선. 그러나 정 사장의 조속한 퇴진▼ 공영성 강화▼ 수신료 인상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 KBS를 위해서나 우리 사회를 위해서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MB에겐 굉장한 부담”

    ▼ 한나라당 측은 대선 직후부터 정 사장의 퇴진을 여러 번 요구했습니다. 정 사장 퇴진은 현실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현 여권에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합니다.

    “부인하지 않겠어요. 다만 그 문제는 정 사장의 퇴진이 방송 독립성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면 해결돼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국민의 이익과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겠죠. 지금 이명박 정권의 곳곳에 노무현 정권의 그림자가 잔존해 있어요.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정책의 입안, 집행, 공론화, 사회적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장애가 되고 있어요. 특히 대다수 국민은 TV가 보여주는 뉴스를 사실로 믿고 TV가 설정해주는 사회적 의제를 그대로 추종하는 게 현실입니다. 현 정부는 정연주로 대표되는 전임 정권의 이념적 잔재를 TV 방송사에 그대로 두고는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갈 수가 없어요. 정 사장의 사장직 유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굉장한 부담입니다. ‘노무현의 옥동자’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키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은 견뎌내지를 못할 상황이에요.”

    김 전 위원은 “허울뿐인 방송사 이사 공모제가 이명박 정부에서도 반복되어선 안 된다”면서 “KBS 이사진 및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가 정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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