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한-미 쇠고기협상 총괄한 임상규 전 농림장관의 경고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6-11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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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상 전략용’ 아니라 실제로 안전 위협
    • 강기갑 폭로 ‘농림부 문건’ 육성으로 입증
    • “쇠고기협상 타결은 ‘前 정권 설거지’ 아니다”
    • 30개월 이상 뼈-내장-살코기가 광우병 파동의 동력
    • 설렁탕 등 서민음식 직격탄 맞자 계층갈등 촉발
    • “30개월 이상이 본질이면 해법도 거기 맞춰라”
    한-미 쇠고기협상 총괄한 임상규 전 농림장관의 경고

    임상규 전 농림부 장관

    4월18일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산 쇠고기 위생조건 개정을 위한 한국-미국 고위급 협의 결과, 미국 산 쇠고기의 단계적 수입확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 내용을 방영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광우병 파동’이 번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식품위생,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정치 현상의 속성을 띠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20%포인트가 빠져 20%대로 추락했다.

    광우병 파동의 핵 ‘30개월 이상 소’

    광우병 파동이 정권을 위기에 빠뜨린 범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실행한 한-미 쇠고기협상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에 내포된 정치적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선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이 비과학적 과장이나 루머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미 쇠고기 합의에서 안전성과 관련된 핵심 내용은 다음의 4가지다.

    1. 한국은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다.



    2. 한국은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현행 수입 위생조건상 수입이 금지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7곳(뇌·두개골·눈·혀·편도·척수·회장원위부(소장 끝 50cm)) 가운데 편도와 회장원위부만 제외하고 나머지 뇌·두개골·눈·혀·척수는 수입을 허용한다.

    3. 한국은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조치 강화안’을 공표할 경우 연령제한을 완전히 없애 30개월 이상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4.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협의하되, 한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

    ‘신동아’가 한국언론재단의 기사검색시스템(KINDS)에 수록된 ‘광우병 파동’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4가지 핵심 내용 중 ‘3. 한국은 연령제한을 완전히 없애 30개월 이상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내용에 대한 기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 측은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신속히 ‘동물사료 금지조치 강화안’을 공표해 30개월 이상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수출되도록 했다.

    직전 농림장관의 최초발언

    그렇다면 광우병 파동 이슈 중에서도 국민적 관심이 가장 컸던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는 어느 정도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위해서는 실로 다양한 접근이 나올 수 있다. 찬·반론자 간에 논쟁을 벌이자면 끝도 없을 사안이다.

    ‘신동아’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농림부 수장을 지낸 임상규 전 장관(2007년 8월~2008년 2월 재임)과의 심층 인터뷰가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에 해답을 구하기 위한 신뢰할 만한 측정방법이라고 봤다. 왜냐하면 임 전 장관은 여·야 정치색이 없는 전문관료 출신이고, 한-미 쇠고기협상을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까지 총괄 지휘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을 국가차원에서 실질적, 유권적으로 결정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미 쇠고기협상 총괄한 임상규 전 농림장관의 경고

    미국 소 도축장

    그는 특히 장관 재임 기간 중 여러 과학자, 전문가의 찬반 의견을 수합해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종합적 결론을 내렸다. 광우병 파동이 상당 기간 지속되고 국회에서 쇠고기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임 전 장관은 청문회 증언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신동아’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임 전 장관은 극구 사양했다. 다음날 재차 인터뷰를 요청하자 임 전 장관은 단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 짧게 대답했다. 당초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매우 짧은 인터뷰였지만, 광우병 파동의 핵심인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그는 딱 부러지게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다음은 임 전 장관과의 대화내용이다.

    ▼ 몇 가지 질의 드리겠습니다.

    “질문하지 마시라니까요. 그 문제에 대해선 할 말이 없고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청문회에도 안 갔고.”

    ▼ 그런데 이 질문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임 장관께서만 답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말할 거 없어요. 노 대통령께서 (봉하 마을에서) 말씀하셨는데, 내가 뭘.”

    ▼ 한 가지만. 장관께서 농림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지난해 농림부는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침이 왜 필요했습니까. 나중에 양보해 줘도 되는, 미국과의 협상전략 차원이었나요, 아니면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가 실제로 국민들이 먹기에는 위험하다고 장관께서 최종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가요.

    “30개월 미만과 30개월 이상의 차이는요, 30개월 이상은 광우병 위험이 있다, 신중하게 하자, 그런 차이고, 그렇게 결정했어요.”

    “광우병 위험이 있다, 신중하자”

    ▼ 이명박 정부 측에서 이번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은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오던 일을 ‘설거지’ 한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 마을 연설에서 “양심이 없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박했는데요. 임 장관께선 이 논란의 직접 당사자이므로 이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한-미 간에 타결한 협상 내용에 대해 관여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한 일을 설거지했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나 생각해요.

    ▼ 한 가지만 더. 미국 측의 동물성 사료….

    “그만.”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공개한 정부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9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관계없이 30개월 미만 쇠고기, 모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제거를 협상 지침으로 마련한 것으로 돼 있다. 임 전 장관의 발언은 이러한 지침이 실제로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해 준 것이며, 이 지침은 필요에 따라 양보할 수도 있는 협상전략용이 아니라 30개월 이상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에 실제로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만들어졌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명박 정부의 농림수산식품부는 30개월 이상 뼈가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을 들어 안전하다고 밝혔지만, 이런 정황상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할 지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이 동물성 사료 금지조처 강화안을 공표했다”고 했으나 이는 미국의 동물성 사료 관련 연방관보 내용을 정부가 오역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명한 점은 미국에선 여전히 소 광우병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동물성 사료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우병 파동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언론 등을 통해 ‘30개월 이상 뼈가 포함된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지식을 설명했다. 찬반론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견해를 중립적으로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한-미 쇠고기협상 총괄한 임상규 전 농림장관의 경고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음식.

    △30개월 미만 소에 비해 30개월 이상 소에서 광우병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위험은 현저히 높아진다 △30개월 이상 소에서 살코기 부분에 비해 뼈에 광우병 물질이 있을 위험이 훨씬 더 높다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30개월 이상 소에서 광우병 물질이 축적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현재 상황을 놓고 계산했을 때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억분의1~48억분의1 정도다. 이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옹호론자는 무시해도 좋을 확률이라고 해석하고, 비판론자는 평균 인체 감염확률을 10억분의1로 가정하면 ‘아주 길지 않은 일정 기간 동안’ 전 국민 중 5명꼴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30개월 이상 미국소의 정치학

    임 전 장관의 증언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찬·반 전문가들의 견해, 미국의 동물성 사료 사용을 종합하면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한국 농림부도 30개월 이상 뼈가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봤으며, 그 중에서도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뼈 부분이 더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최근 농수산식품부와 육류수입업계에 따르면 미국 측은 자국 내에서는 잘 소비되지 않는 등뼈, 사골, 갈비, 꼬리, 우족, 내장 등 주로 뼈와 내장 부위를 집중적으로 한국에 수출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연합뉴스 5월11일).

    상대적으로 가장 위험한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뼈나 살코기’가 수입될 경우 주 이용층은 소규모 음식점과 단체 급식소에서 설렁탕, 갈비탕, 곰탕, 쇠고기 요리 등을 소비하는 서민-중산층이나 학생들이 된다. 현재는 소규모 식당에선 소뼈의 원산지가 추적되지 않고 단체급식은 지금도 음식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30년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을 기회’가 이들에게 제대로 주어진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광우병 파동은 ‘계급갈등 성격’을 띠게 되고 커다란 ‘정치 이슈’로 탈바꿈하는 동력을 얻는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는 이명박 정부가 설명하듯 ‘광우병이 걸릴 확률’의 관점에서는 큰 문제 거리가 안 된다. 그러나 과거에 안심하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먹던 음식을 이제는 불안해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먹어야 하는 데에서 오는 ‘불만’은 구체적 화폐가치로는 측정되진 않지만 상당한 문제 거리가 될 수 있다. 서민·중산층에는 상당한 박탈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뼈의 수입이 서민들에게 주는 분노감은 인터넷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내장국밥에 소주 즐겼는데…”

    “내장국밥에 소주 몇 잔을 즐기는 이 땅의 영세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구나. 국밥도 안심하게 못 먹는 세상을 만들다니. FTA고 뭐고 간에.”(hiway1234)

    “대통령 말 대로 안 먹으면 된다.”(rnwh2187)

    “곰탕 설렁탕 도가니탕 내장탕.. 우리 고유의 탕 음식 문화도 사라지고 말겠군. 뼈와 내장이라도 안 들여 오면 좋을텐데.”(wgwan1)

    “고기수출입상들 양심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쓰레기 수준의 고기들을 뒤섞어 들여올 것이다.”(ssubal)

    “소규모 식당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라.”(toutefois)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화살은 정부로 쉽게 향하게 된다. “왜 30개월 이상까지 허용했느냐”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미국 축산업자들의 폐품 처리장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봉 노릇을 자처했다.”(sahara)

    “미국 쇠고기 업자들이 처리 문제로 골치 아팠던 쇠고기 부산물을 한국서 사준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정작 우리나라 국민은 혹 광우병인자가 있는지 몰라 불안해하는데 말이다.”(kh1815)

    정부는 광우병 파문이 커지자 수습책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측도 한국 정부의 이런 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파문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0개월 이상 뼈가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는 여전히 수입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한 광우병 파동의 계층갈등 성격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 쇠고기협상 총괄한 임상규 전 농림장관의 경고

    한승수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앞서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3월11일 외교부 업무 보고에서 “나는 친미(親美)도 친중(親中)도 없다고 생각한다. 국익이 서로 맞으면 동맹이 될 수 있다. 국익에 위배되면 오늘날 동맹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실리외교’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한미동맹은 일시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동반자적 관계’로 인식되어온 점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든 발언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한 한 미국 정부 인사는 측근 A씨에게 “이 대통령의 3월11일 연설이 실제로 미국에서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반전의 계기로 중시했는데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흠결로 작용했다. 정상회담에는 한미관계의 복원, 한미FTA체결, 해외투자유치, 북한 문제 등 국내외 중요 현안이 연계되어 있었다.

    A씨는 “한국 정부는 ‘과거 한국이 미국에게 줬다가 좌파 정권이 거둬들인 것을 다시 미국에 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쇠고기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그것이다. 원래 수입해오다 광우병 문제로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고, 파병했다 철군한 아프가니스탄에 경찰을 다시 파견하기로 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했다.

    정권의 기반 흔든 위험물질

    정상회담 직전 한-미간 쇠고기 문제가 합의됐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에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위험 물질’이 들어 있다는 점은 간과됐다. 영농업자 출신의 대통령 참모인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한-미 쇠고기 합의서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권 한 인사는 “광우병 파동을 계층갈등, 정치 문제로 비화시킨 핵심적 원인에 대해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인사의 설명이다.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기도, 국민여론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민들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말로는 안 통한다.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광우병 파동의 핵심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뼈, 내장, 살코기’라면 최소한 이들의 국내 흐름(수입 및 유통)을 관리·통제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 설명대로라면 미국산 수입 쇠고기 중 그 비중이 미미하다. 국민을 화나게 한 것은 협상을 잘못한 정부가 결과적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사실과 또 그 불안을 방치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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