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0일 AI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각료들.
‘신동아’ 취재 결과, 질병관리본부가 ‘세균성 폐렴 환자’라고 발표한 AI 인체감염 의심 병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인플루엔자 A(H5N1) 감염자에 대한 케이스 정의’, 즉 WHO의 AI 감염환자 진단기준에 의한 ‘확진환자(Confirmed H5N1 case)’에 해당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4월21일 AI 단백질 검출 시인
WHO는 환자의 증상과 AI에 대한 노출 여부, 실험실적 검사 결과에 따라 환자를 의심환자(Suspected H5N1 case), 추정환자(Probable H5N1 case), 확진환자(Confirmed H5N1 case)로 나누고, 추정환자와 확진환자가 발생하면 해당 국가 보건당국이 즉각 WHO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국 방역당국은 이 기준에 따라 AI 감염환자를 진단한다.
WHO는 ‘38℃의 발열을 동반한 기침, 숨가쁨, 호흡곤란 등 급성 하부호흡기 감염 증상을 보이는 사람으로서 증상발현 7일 이내에 AI 감염동물의 살처분에 참가한 사람’을 의심환자로 규정한다. 또 ‘의심환자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흉부 엑스선상 급성 폐렴 소견을 보이고 호흡부전이 있는 경우 또는 인플루엔자 A 감염에 대해선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AI 바이러스 감염(H5N1형)에 대한 실험실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를 추정환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의심환자 또는 추정환자(둘 중 하나만 충족)의 기준에 부합하면서 WHO가 공인한 해당국 정부기관(한국의 경우엔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4가지 검사, 즉 H5N1 바이러스 배양 분리검사, 인플루엔자 A와 H5 HA(표면단백질 헤마글루티닌)를 타깃으로 한 PCR(핵산증폭검사), 혈청을 이용한 중화항체 비교 검사, 단일혈청 항체검사(다른 혈청검사 병행) 중 1가지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경우는 확진환자로 규정한다.
질병관리본부는 4월21일 배포한 보도해명자료와 4월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병이 WHO 기준 AI 인체감염 추정환자 또는 확진환자임을 이미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기자들이 질병본부 관계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WHO 환자 확진기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4월21일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신문’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에서 이 병사가 ‘WHO 기준 의심환자’이며 고열과 폐렴증상이 있었음도 인정했다.
다음날인 4월22일, 언론매체들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AI 바이러스 일부 항원 발견’ ‘PCR 검사 결과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중 H5형 양성’ ‘소량의 H5 바이러스 검출’이란 기사를 쏟아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질병관리본부가 살처분 참가 병사를 WHO 기준에 따라 의심환자로 분류했고, 병사에게서 채취한 혈청으로 PCR 테스트를 한 결과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중 H5형에 양성’이라는 것.
4월22일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 사병은 당시에 이미 확진환자였다. WHO는 ‘의심환자 또는 추정환자로서 두 가지 서로 다른 타깃(인플루엔자 A와 H5 HA)을 이용한 PCR검사에서 H5 양성’인 경우 ‘확진환자’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의심환자’라는 조건은 이미 공적 문서(보도해명자료)로 밝혔고, ‘PCR 검사 H5 HA 양성’ 부분도 질병관리본부 발언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대로라면 이 병사는 흉부 X-ray 검사상 폐렴이 확인됐고, 인플루엔자 A형임이 확인됐으므로 WHO의 추정환자 기준도 충족한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WHO에 이런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질병본부는 같은 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쏟아냈다. WHO 환자기준에 딱 맞아 떨어지는 확진환자 검사 사례를 말해놓고선 “불현성 감염(무증상 감염)일 가능성이 높다” “중화항체검사를 해야 확진 여부를 알 수 있다” “세균성 폐렴의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WHO 환자기준을 알지 못했던 언론매체들은 대부분 ‘국내 의심환자 첫 발생’이라는 사실과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중 H5 양성’이라는 PCR 검사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불현성 감염’을 제목으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