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주거환경 개선’ 염불보다 ‘지역구 뉴타운맨더링’잿밥에 신경

  • 이진평 정책평론가

    입력2008-06-1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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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타운 사업은 향후 10여 년 동안 서울의 모습을 확 바꿀 대역사(大役事)다. 지금처럼 개발욕망과 정치논리에 물들어 집값 폭등과 낮은 재정착률로 대변되는 ‘뉴타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서울의 미래는 캄캄하다. 이제 뉴타운 사업은 ‘강북을 강남만큼 끌어올린다’는 균형발전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주민이나 투자자들의 집값 상승 욕망에 기댄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 주택 공급도 지양해야 한다. 주민 삶의 질을 제대로 개선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이명박 대통령은 18대 총선 투표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서울 은평구 뉴타운 건설현장을 찾았다. 당시 강북 지역의 뉴타운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뉴타운 문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앞으로 서울시 당정회의를 통해 수시로 보고하고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한나라당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 정태근)

    “앞으로도 계속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오세훈 시장)

    5월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당정협의가 끝난 뒤 언론에 보도된 발언이다. 이날 당정협의에는 한나라당 서울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 및 당협위원장 35명과 오세훈 서울시장 및 서울시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 이날 보도 내용만 보면 뉴타운 선거공약 논란으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 지역 유권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데다 여전히 양측의 의견 차가 커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한 참석자는 “당정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때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시의 뉴타운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자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인 정태근 18대 국회의원 당선자(성북 갑)가 “뉴타운 사업의 부정적 효과만 너무 강조하는데, 뉴타운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다른 당선자들도 정 당선자의 발언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강북지역 집값이 조금 뛴다고 마치 큰일 나는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는 것.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뉴타운



    강남북 균형발전과 주거환경개선을 목표로 추진돼온 뉴타운 사업이 왜 이처럼 격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이는 뉴타운 사업이 치밀한 도시계획 및 엄밀한 주거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강북 주민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데서 비롯된다. ‘강북뉴타운 건설’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력이 서울시장 취임 초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핵심사업이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사업 취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발전에 목마른 강북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표 계산이 있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보이는 실적’으로 승부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서울시장 재임 동안 뉴타운 사업에도 적용됐다. 일부 소외 지역을 번듯한 주택단지로 바꿔놓을 경우 ‘전시효과’를 통해 다른 지역 주민들의 표심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때문에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더불어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초기부터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 길음, 왕십리 3개 지구를 시범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의 시장 취임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이들 3개 시범지구에 투입한 시 재정만 1500억원가량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은평뉴타운 지역은 이 대통령이 뉴타운 사업의 ‘모델 케이스’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낡은 주거지역을 재정비해야 하는 다른 뉴타운 지역과 달리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사업 속도를 높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대통령은, 다른 뉴타운과 달리 은평뉴타운을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통해 공영 개발했다.

    은평뉴타운 사업의 임기 내 가시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무리수가 뒤따랐다. 사업을 서두르면서 과다한 토지 보상비를 지급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은평뉴타운의 입찰 방식으로 아파트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던 턴키 방식을 택한 것도 문제가 됐다.

    턴키 방식은 외국에서 공장 등 유형화한 건축물을 반복 설계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시공, 납품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기술 및 설계의 창의성을 활용하고 공기를 단축한다는 취지로 시행돼왔다. 문제는 이 방식이 높은 설계비용 때문에 사실상 상위 6대 건설업체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가격 경쟁입찰 방식에 비해 20~30% 이상 많은 사업비가 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턴키 방식은 주로 지하철이나 터널공사, 장대(長大) 교량 등의 공사에 적용됐을 뿐 아파트 시공에는 도입된 적이 없다.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28일 서울시청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긴급대책 소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만나 총선 이후 불거진 뉴타운 추가 지정 논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은평뉴타운에 턴키 방식 적용을 고집한 것은 왜일까. 우선 공기 단축이 이유로 지적된다. 턴키 방식은 기본설계를 확정한 다음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다른 입찰 방식과 달리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에 부치기 때문에 공기가 단축된다. 4년 임기 내 사업 가시화를 바란 이 대통령으로서는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또한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전시’할 목적으로 고급 브랜드 아파트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경쟁입찰 방식의 경우 삼성, 현대 등 고급 아파트 브랜드 업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고가 브랜드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턴키로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논리에 떠밀려 35개로 확대

    시범 뉴타운이 확정되자마자 뉴타운은 또 한번 정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 주민들의 욕구를 대변해 각 구청장과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가 쏟아졌다. 서울시장실 주변은 뉴타운 사업과 관련한 구청장 등 면담자들과 지역 민원인들로 붐볐다.

    이때부터 이 대통령도 자의 반 타의 반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초 3~5곳만 지정하려 했던 뉴타운지구가 결국 12곳까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도 열악한데 왜 어떤 지역은 해주고, 우리는 안 해주느냐”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이 대통령은 뉴타운지구와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기준의 하나로 ‘권역별 형평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지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니 권역별로 안배하겠다는 뜻.

    하지만 뉴타운 사업 지정만으로 집값이 껑충 뛰는 현실을 목도한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대권 도전을 앞두고 표를 염두에 둔 이 대통령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03년 2차 뉴타운 12곳과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이하 균촉지구) 5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후 사업 대상지가 확대되고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됨에 따라 서울시는 2005년 6월 뉴타운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게 된다.

    뉴타운 사업의 정치적 효과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도 ‘뉴타운 특별법’ ‘도시구조개선 특별법’ ‘도시광역개발 특별법’ 등 3개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이후 국회는 3개 법안을 통합해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 그해 12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그 사이 다시 3차 뉴타운 10곳과 2차 균촉지구 3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지정된 세운균촉지구 등 2곳을 합해 당초 3곳으로 출발한 뉴타운 사업은 모두 35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총 사업대상지는 27㎢로 약 720만평.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5%에 이르는 규모다.

    “사업지 주변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가구의 15%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되는 서울시 창건 이래 최대 규모의 역사(役事)”라는 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서울시가 수십년간 추진해온 주택재개발사업 면적보다 더 넓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발을 빼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며 “당시 이명박 시장도 이 정도까지 사업이 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전격 방문에 담긴 뜻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총선을 전후해 불거진 뉴타운 공약(空約) 사태도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당수 낙후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되자마자 집값이 뛰는 것을 지켜본 다른 낙후지역 주민들에게 뉴타운은 지역개발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주민들의 이러한 개발 기대감을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후보 각각 20여 명이 뉴타운 추가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 권한이 있는 오세훈 시장을 활용한 여당 후보자들이 단연 유리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뉴타운을 시작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뉴타운 공약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거 막판 이 대통령이 자신이 재임시절 공들여 추진했던 은평뉴타운을 전격 방문한 것도 여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다분했다는 게 중론이다. 뉴타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를 유권자에게 과시하는 이벤트였다는 것.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시점 이후 박빙 지역 유권자 상당수가 여당 후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 수준에 불과하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성북구 월곡1동 재보궐선거 유세장. ‘재정착 없는 뉴타운 전면 재검토’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실제 선거 결과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던 ‘강북 3구’인 강북, 노원, 도봉구는 이번 총선에서 모두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이들 지역의 야권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다가 졌다. 이들 지역은 모두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공약을 내건 곳이다. 통합민주당이 뉴타운 개발 공약과 관련 있는 서울시내 9개 지역구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 유권자의 66%가량이 “뉴타운 공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다. 통합민주당이 선거 후 뉴타운 공약을 두고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그냥 묻혀 지나갈 수도 있었을 뉴타운 공약 논란에 불을 댕긴 이가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시장이라는 점이다. 오 시장은 선거 닷새 후인 4월14일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강북 부동산 값이 들썩이는 시점에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에게서도 거센 항의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오 시장 발언이 보도된 뒤 “선거 때는 당장 뉴타운이 될 것처럼 떠들더니 어떻게 된 거냐”는 유권자들의 항의가 한나라당과 각 지역구 당선자 측에 빗발쳤다고 한다. 서울지역의 한 당선자 측은 “그런 전화를 받고 가만 있을 정치인이 있겠느냐”며 “최소한 오 시장을 윽박지르는 모양새라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세훈 ‘뉴타운 소신’의 배경

    그러면 오 시장은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왜 그렇게 서둘러 뉴타운 추가 지정 불가를 밝혔을까. 서울시는 “오 시장이 평소 일관되게 밝혀온 원칙을 선거 이후 맨 처음 잡힌 인터뷰에서 재확인했을 뿐인데, 야권이 정치공세를 통해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또한 2년여 동안 서울시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뉴타운과 오 시장의 ‘인연’을 들어 설명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취임 초기, 행정경험이 전무한 오 시장이 서울시 행정 전반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시 간부들 사이에 적지 않았다. 전임 이명박 시장 때부터 서울시를 출입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06년 가을의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었다. 사실 은평뉴타운 고분양가는 고급 주거 단지화를 목표로 일을 추진한 이명박 전 시장의 책임이 컸다. 하지만 언론은 ‘서울시가 고분양가를 통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썼고, 여론의 비난은 오 시장을 향했다.

    오 시장으로서는 억울했을 법도 한데, 긴박하게 움직여 사태를 반전시켰다. 그 사건을 계기로 80% 공사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를 시작으로 서울시 주택정책의 물꼬를 확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뒤따른 장기전세 주택정책 등을 통해 기존 주택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서울시정에 대한 오 시장의 장악력이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계기로 구축된 ‘오세훈표 주택정책’에 대한 오 시장의 자부심과 애착이 상당하다. 또 ‘서울시가 손을 대 부동산값이 오르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교훈도 얻었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인터뷰 내용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공직자로서 선거기간 중 후보들의 공약을 놓고 의견을 표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자당 후보들이 곤혹스러워할 발언을 하기가 쉬웠겠는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총선을 전후로 강북 집값이 급등한 데 대한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은평뉴타운 때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에 강북 집값이 더 뛸 경우 덤터기를 쓸 수 있겠다고 봤을 수도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강북 집값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이렇게 점화된 뉴타운 공약 공방으로 오 시장은 통합민주당으로부터는 ‘여당 후보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한나라당 일부 당선자들로부터는 ‘자당 후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원성을 사게 됐다. 협공에 시달리던 오 시장은 4월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의 왈가왈부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며 여야 정치권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면서 기존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집값이 안정돼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당분간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집값 폭등,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 유형 등을 기존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으로 거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는 한동안 계속됐다. 민주당은 4월28일 뉴타운 공약과 관련, 정몽준 의원 등 한나라당 당선자 5명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오 시장 압박도 계속됐다. 정몽준 의원은 “뉴타운을 안 한다고 하면 직무유기”라고 했고, 홍준표 의원은 “뉴타운 추가 지정을 안 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지정권을 국토해양부로 이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정현 당선자처럼 “다음 시장선거에서 공천을 안 줄 수도 있다”는 이도 나왔다.

    정치권의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를 따져보려면 뉴타운 사업의 실태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직접 다녀온 은평뉴타운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뉴타운 사업이란?

    뉴타운 사업은 기존 재개발 사업이 소규모로 진행돼 기반시설이 부족해지고, 사업성 위주의 고밀도 개발로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다. 공공이 나서 광역적 개발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취지였다. 강남북 간 불균형 해소라는 명분에 따라 강북지역에 사업이 집중됐다.

    뉴타운은 크게 주거환경 개선과 기반시설 정비를 목적으로 하는 주거지형, 그리고 상공업지역 또는 역세권 등을 중심으로 도시 기능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중심지형(균형발전촉진지구)으로 나뉜다. 2005년말 통과된 ‘도시 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로 지정되면 건물 층수 제한과 용적률, 주택 의무 건설 비율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대신 늘어나는 용적률의 50%를 임대주택으로 건립해야 하며 20㎡ 이상의 토지를 거래할 경우 거래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행법에서는 뉴타운을 지정할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있다. 이 때문에 지난 총선 때 정치인들이 무리한 공약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에는 모두 26곳의 주거지형 뉴타운과 9곳의 균촉지구가 지정됐다. 뉴타운 사업 한 곳이 기존 재개발구역 면적의 보통 40~80배나 돼 전체 뉴타운 사업 면적은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7.5%에 달한다.


    원주민들은 떠나고…

    5월8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수색뉴타운 6구역. 수색기차역 삼거리에서 은평터널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는 수십년 된 낡은 저층 상가들과 단독 및 다세대 빌라 등이 늘어서 있었다. 조그만 식당들과 술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모양새는 이 지역의 시계가 1980년대쯤에서 멈춰서 있음을 느끼게 했다. 반면 경의선 기찻길 건너편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막 지어진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건물들의 뒤로는 몇 년 전 들어선 상암동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년쯤의 시차가 있는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수색-증산 뉴타운지역은 4월22일 서울시로부터 재정비 촉진계획안을 승인받았다. 주민들의 기대는 컸다. 6년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주민 김용준(66·자영업)씨는 “이 지역이 낙후돼 있고 주거여건이 좋지 않아 불편했는데, 뉴타운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니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뉴타운 건설이 완료되면 40평형(132.24m2)대의 주택을 분양받아 입주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건너편 상암동 아파트보다는 좀 싸더라도 최소 7억~8억원은 가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근 수색시장에서 만난 양정임(58)씨는 뉴타운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세로 살고 있는 18평 빌라의 전세가가 불과 4~5년 사이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두 배나 뛰어올랐다는 것. 양씨 내외가 시장 노변에서 분식 장사를 해서 버는 돈으로는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모든 게 뉴타운 지정 이후 전셋값까지 덩달아 뛰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철거가 진행되면 지금 사는 집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것이다.

    수색6구역의 집값 변화 추이를 보면 양씨의 사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사업 초기인 2003년 이 지역 내 Y빌라 한 가구(대지 지분 8평)의 집값은 4500만원. 하지만 현재 시세는 약 6배인 2억4000만원에 이른다. 대지 3.3m2당 3000만원꼴이다. 하지만 이런 집들에 사는 원주민들은 본격적인 사업 시행 전에 대부분 집을 팔고 떠난다. 30평형(99.18m2)대 조합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분양가가 5억원이 넘어 3억원가량이 더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이를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입주 이전까지 손바꿈이 일어나 대부분 외지인들 차지가 되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오른 집값에 집을 팔고 간다고 해도 실제로는 크게 득볼 게 없다. 서울시내 웬만한 지역의 집값이 다 올랐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집을 사도 남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집값을 맞추기 위해 더 외곽으로 밀려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색 토박이인 박모(53)씨도 “결국 뉴타운으로 집값이 올라도 정작 득 보는 사람은 주로 돈 많은 외지인들뿐”이라고 푸념했다.

    강북 집값 불안의 원인

    수색뉴타운 사례에서 보듯 뉴타운 사업은 지정된다는 소문만 돌아도 대상 지역 집값이 껑충 뛴다. 지정 단계뿐만 아니라 뉴타운 사업의 행정 및 사업 절차가 하나씩 진척될 때마다 계단식으로 집값이 뛴다. 집값이 뛰면 사업추진조합의 사업비 부담이 늘고, 사업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일정한 시점에 집을 내놓고 외곽으로 밀려가게 마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길음뉴타운 사업의 경우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17%선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열악한 주거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을 사업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원주민은 그 혜택을 거의 못 본다는 얘기. ‘외지인과 투기꾼들을 위한 뉴타운’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소형 주택이 크게 줄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2007년말 펴낸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한 저가 소형주택 확보방안’에 따르면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 비중이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2002년의 경우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이 전체 서울지역 주택 비중의 64.6%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21.3%로 대폭 줄었다. 반면 아파트는 2002년 32.4%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76.5%나 됐다.

    이런 추이는 서울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가량의 소형 주택이 철거된 반면 신축된 소형 주택은 1만4000여 호에 불과하다. 최근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 등의 집값 상승 배경에는 이와 같은 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강북 소형 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 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형 주택 철거로 인한 집값 상승효과가 인근 지역까지 파급된다는 점이다. 은평구의 경우 은평뉴타운, 수색뉴타운, 증산뉴타운, 가재울뉴타운 등의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들 사업지역의 이주 수요로 인근 지역 집값까지 크게 오르고 있다. 은평구 구산동, 신사동이나 응암동 등 뉴타운 대상지가 아닌 인근 지역도 2~3년 사이 집값이 두 배가량 뛰었다. 응암동 S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인근 뉴타운 대상지역에서 밀려나오는 사람들이 응암동 주변으로 옮겨오면서 이곳의 집값과 전세 시세도 크게 올랐다”며 “뉴타운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집값이 오르고 서민들이 갈 곳이 없어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강북 3구’의 집값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의정부 동두천 양주 등 인접 경기도 지역까지 번져간 것도 이 같은 연쇄 파급효과 때문이다.

    서민주택 대란 우려

    이런 상황은 향후 몇 년 동안 강북 집값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지구 내에서 철거된 주택이 2003년엔 296가구였으나 지난해에는 7040가구로 늘었다. 2007년말부터 시범 및 2차 뉴타운 사업이 가시화하면서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올해에는 미아, 왕십리, 은평, 가재울, 아현뉴타운 등이 철거에 들어가 이주 가구 수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 또 3차 뉴타운 지역의 철거가 본격화할 2010년경에는 전세난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 주택국이 작성한 ‘주택 유형별 변화전망’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2012년까지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단독 다가구 주택의 40%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뉴타운 사업의 동시다발적 진행으로 인한 주거 불안은 뉴타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예견됐다. 대단위 개발사업인 뉴타운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지정했기에 동시다발적 주택 철거 및 이주 수요 발생은 불 보듯했다. 서울시는 그 대책으로 이명박 시장 시절부터 뉴타운 지역 내 사업지구별 단계적 철거를 추진했다. 하지만 ‘우리부터 먼저 해달라’는 민원 때문에 결국 큰 시차 없이 진행됐다. 뉴타운 지역을 동시에 지정한 이상 지구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시정연의 장영희 선임연구원이나 세종대 변창흠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경실련 등 시민단체, 심지어 서울시 일부 간부들이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 시절 이 같은 우려는 사실상 묵살됐다. 이 대통령은 뉴타운 사업의 잠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울시 간부들을 관련 회의에서 배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시절 뒷일은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뉴타운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뉴타운은 주거유형 다양화 측면에서도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 주택국 자료에 따르면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서울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2005)에서 22% (2012)로 급감한다. 반대로 아파트 비중은 2012년까지 전체 주거형태의 78%로 올라가게 된다.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성 및 투자 수익 확보에 유리한 아파트 일변도의 주택 공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지금도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곳곳이 아파트 숲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경 서울의 풍경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 서울시내에서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일부 뉴타운 등에서 타운하우스와 테라스형 주택 등을 시범적으로 도입, 주택 유형 다양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무리한 추가 지정 요구

    이 같은 뉴타운 사업의 현실을 이해한 상태에서 다시 최근 불거진 뉴타운 사업 논란을 되짚어보자. 우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4차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현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요구다. 치밀한 도시계획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기존 1~3차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된 탓에 동시다발적 이주 수요가 집값 불안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서민들의 주거난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기존 뉴타운 사업지역의 철거 및 이주 수요만으로도 이런 상황이 5~6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추가로 뉴타운을 지정할 경우 당장 투기심리를 더 키울 뿐만 아니라 소형주택의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주거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무더기 지정에 따라 뉴타운 사업도 충분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지정된 3차 뉴타운 11곳 중 6곳에서 아직 사업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2차 뉴타운 사업 대상지 가운데 관리처분계획인가(뉴타운 사업시행 과정에서 사업구역의 이주 및 철거를 서울시가 승인하는 단계)를 받은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의원들도 나름대로 논리를 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라도 공급을 늘리기 위한 뉴타운은 해야 한다”(정몽준 의원)거나 “뉴타운은 원래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집값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주장(홍준표 의원) 등 다양한 논리가 나온다.

    홍준표 의원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개발을 하면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남은 규제하더라도 강북 부동산 값은 좀 더 올려 키를 맞춰야 한다.’ 오랜 집값 상승기 동안 소외돼온 일부 강북 주민들 처지에서 들으면 반가운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반적인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재산증식 욕구’만 지나치게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뉴타운 사업은 시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지 집값을 올려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집값을 올려 시민들의 불로소득을 늘리는 것이 공공정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강북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결과 이 지역의 집값이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특정 지역의 집값을 올리기 위해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서울시와 같은 행정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홍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는가.

    시장경제 뒤흔드는 발상

    강북 집값이 강남 집값에 비해 떨어져 있으니 이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시장 기능을 깡그리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홍 의원은 ‘강남 집값은 충분히 올랐으니 이제 그만 오르도록 꽁꽁 묶자’는 요지의 말도 했다. 이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강북 주민이 소외됐으니 오늘은 강남 주민들이 차별을 받으라고 할 수 있을까. 시민의 재산 가치를 정책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재조정하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빈곤층에 대한 소득 재분배는 공동체적 연대감과 사회복지 증진 측면에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도화해 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이 아닌, 특정 지역에 따라 부의 편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 또는 차별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길이 없다. 더구나 원주민 재정착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뉴타운 사업을 통한 개발이익은 대부분 돈 많은 외지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은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뉴타운 지정권을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넘기는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유정현 당선자도 거들고 나섰다. 이는 중앙의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주장이다. 뉴타운 사업 추진 과정에 거쳐야 하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과 조합설립인가 등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사업이다. 중앙으로 권한을 넘길 경우 지역의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중앙정부가 지자체보다 더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오히려 관련 절차가 복잡해지는 데 따른 사업 지연 등으로 주민들의 민원만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몽준 의원은 “집값이든, 물건값이든 오르면 해결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뉴타운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장기적이고 총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급 구조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나 투기 심리가 한껏 부풀어 오른 지금의 부동산시장 문제를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만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택은 공장에서 버튼만 누르면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는 통조림이 아니다. 주택이라는 재화는 공간적, 환경적으로 공급이 극도로 제약된다. 서울 강남에 집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시 기반시설의 부하를 넘어 강남 아파트를 50, 60층씩 마구잡이로 빽빽이 지어댈 순 없다. 또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넘친다고 해서 강남으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아파트의 경우 시공기간만 2~3년씩 걸린다. 지방에 넘쳐나는 미분양 물량도 대부분 최근 2~3년 안에 분양이 공고된 물건들이다. 반면 몇 년 전까지 청약대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몇몇 신도시 아파트들에는 지금 불 꺼진 집이 수두룩하다.

    반면 수요는 어떤가. 투기 심리가 팽배할 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게 수요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강북의 경우에도 강남 등 타 지역 주민들이 거래한 물건이 태반이라는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투기 수요를 막지 않고 국지적으로 물량공급 계획을 세운다고 당장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공급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왜 집값이 더 뛰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수요의 함정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2006년 현재 93% 정도다.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100%를 넘지 않았다. 따라서 꾸준히 질서정연하게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주택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를 때까지는 꾸준히 주택공급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공급한 주택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세력에게 돌아가 집값 거품을 키운다면 서민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뉴타운 지역에 몰려드는 수요는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 또는 투기수요가 대부분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들의 얘기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주택 공급이 아닌 주거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인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은 신도시 개발과 같이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소유권을 기준으로 한 주택공급 호수는 상당히 늘어나지만 실제 수용할 수 있는 가구수는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다가구 주택과 소형 주택이 줄고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길뉴타운과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의 경우 주택 호수는 4만5803호에서 7만5428호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될 가구수는 8만5765가구에서 7만5428가구로 12%가량 줄어든다. 이는 뉴타운 지역에서 줄어든 가구수를 다른 지역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타운 두 곳만 해도 이런데, 이를 전체 35개 뉴타운 지역으로 확대해보면 이 같은 주택 수요 창출 효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만하다. 뉴타운 사업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주택 및 전세 수요만 계속 늘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의 수급논리에 따른다면 뉴타운은 추가 지정을 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도 취소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많은 정치인이 뉴타운 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나 지역개발 촉진사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택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뉴타운맨더링’은 계속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쉽게 굽힐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이미 헛공약 논란에 휘말리면서 네티즌들에게 ‘타운돌이’(탄핵 정국에서 국회에 손쉽게 입성한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탄돌이’라고 부른 것에 빗대 18대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한나라당 당선자들을 지칭)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얻었다.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지역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켜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에 유리하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듯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곳의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 친한나라당 성향을 띤다. 그러니 서민층 주거지인 지역구를 아파트 단지 위주의 중산층 주거지로 바꿀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우호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집중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때문에 같은 행정구역 내 계층별 지지성향 분화가 심하지 않아 게리맨더링의 유혹은 비교적 작았다. 하지만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대규모 뉴타운 사업 등으로 지역구민들을 ‘물갈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를 ‘아파트맨더링’이나 ‘뉴타운맨더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지난 총선 결과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보여줬다. 따라서 ‘뉴타운맨더링’을 염두에 둔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뉴타운 추가 지정 공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로 뉴타운 사업이 진행돼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진폭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대부분의 지역구는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로 변모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 대통령이 이런 것까지 염두에 뒀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정말 ‘지속가능한 기여’를 한 셈이다.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뉴타운을

    뉴타운 사업은 이 같은 정치논리에만 맡겨두기에는 그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너무나 큰 사업이다. 이제 기존 뉴타운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펼쳐야 할 시점이 됐다.

    향후 뉴타운 사업은 ‘강북을 강남만큼 끌어올린다’는 균형발전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주민이나 투자자들의 집값 상승 욕망에 기댄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주택 공급, 기존 도시의 흔적을 송두리째 없애는 도시 설계, 개별 조합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세입자 주거 대책, 주민 사이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 방식, 상당수 원주민을 쫓아내는 비인간적인 뉴타운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주민들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뉴타운 추가 지정을 보류하고, 이미 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 중인 곳도 단계적, 순차적 개발로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또 뉴타운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 가운데 소형 및 임대 주택 공급 비율을 높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공공 임대주택 및 장기전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뉴타운 개발로 쫓겨난 서민들이 안정적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은 향후 10여 년 동안 서울의 모습을 확 바꿀 대역사다. 지금처럼 개발욕망과 정치논리에 물들어 집값 폭등과 낮은 재정착률로 대변되는 ‘뉴타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서울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동체가 중심이 된 뉴타운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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