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원 맨 프리섹스와 레이디 채털리의 기억

  •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입력2008-12-01 17: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원 맨 프리섹스와 레이디 채털리의 기억

    일러스트·김영민

    “그녀의 연약한 살갗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녀는 욕망의 불길로 그를 느끼며 그 불길에 녹아갔다. 그녀는 자제를 잃고 말았다. 그녀는 열중했다. 죽음과도 같은 전율을 느끼며 자신을 온통 내맡긴 채 그에게 매달렸다……(중략)……그러나 그것은 이상하게도 평화스럽게, 천천히, 어둠 속에 평화를 밀어 넣듯이, 그리고 태초에 세상을 만든 것과 같은 묵직하고도 부드러움을 지니며 다가왔다.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완전히 자기만이 되어 그 물결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어느새 채털리 부인 코니의 터질 듯한 나신이 대뇌 피질에 드러누웠다. 숱한 갈등과 몸부림치던 번민이 윤리의 둑을 허물고 나와 진한 동물성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대뇌에 인화된 코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모습이다. 그때다. 여태까지 갇혀 있던 본능이 갑자기 문을 박차고 뛰쳐나와 뜨거운 피로 온몸을 휘감았다. 왼쪽으로 몸을 누인 채 선잠 자던 괴기한 물건이 잔뜩 핏발을 세우고 탐욕의 눈을 번득이기 시작했다.

    물건의 기세를 꺾어낼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손으로 빗장을 열 수밖에. 손(手)은 기능의 다양성만큼 헌신적 기관이다. 더구나 성 보조기구로써 손의 가치는 실로 유서 깊은 것이다. 재주 많은 손이 물건의 목을 빠듯이 껴안고 심리적 에너지(psychic energy)를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고된 작업이 시작되었다. 향락의 드센 물결에 끝없이 빠져드는 난폭한 괴물. 환상의 화면에는 요염한 코니의 교태가 생살을 녹이기를 그치지 않는다. 드디어 섬짓한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하는 광기(狂氣)가 손목과 팔뚝의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그 순간, 판타지 속의 코니는 책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겸연쩍게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물렁이. 굿판 한마당이다.

    역류하기 어려운 거센 성류(性流)를 잡아주는 자기애적(自己愛的) 성 형태,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은 자기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누적된 성적 긴장을 발산시키는 무난한 수단이다. 인체는 혼자 힘으로 성적 감응이 일어나며 자기 자극으로 극치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특수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강을 본능이라고 하면 물굽이의 거센 흐름을 잡아주는 자기애적 성 형태가 마스터베이션이다. 마스터베이션은 상상이나 공상, 또는 환상을 빌려 성적 충동을 스스로 다스리는 특징이 있고 장소, 방법, 시간, 대상의 선택이 자유로운 원 맨 프리섹스다.

    중세의 의사들(Tissot 이나 Benjamin Rush 등)은 당시의 성직자들과 함께 자위행위를 잔인한 비이성적 체벌로 응징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마스터베이션을 소화 장애, 시력 감퇴, 기억 소실, 발기 부전, 현기증, 간질병, 미치광이병에 걸릴 수 있게 하는 못된 질병이자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자기 도착증이라고 주장했다. 사내의 정액(semen)에 대한 그릇된 지식에서 파생된 오해 때문이었다. 정액은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물질이며, 피보다 더 귀중한 것이라고 여겨 잦은 사정(射精)은 신체 건강을 약화시킨다고 믿은 것이다.



    부모는 전력을 다해 자녀의 마스터베이션을 차단했다.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얇은 담요를 덮고 자게 하거나 냉수욕이나 식이요법까지 동원했다. 심지어는 자녀의 양손을 침대에 묶어 재우기도 하고 음경에 야간 발기 경보기(erection detector)를 설치하여 수면 중 발기될 때마다 경보종(警報鍾)이 울리게 했다. 물건에 철제 면류관을 씌워놓고 발기되기만 하면 뾰족한 가시에 찔리게 해 잠을 깨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무지한 방법으로도 효과가 없을 때는 표피에 금속으로 만든 링(ring)을 끼우거나(infibulation), 여성의 음핵을 절단하는 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위 오락은 소멸되지 않았다. 작은 손바닥만으론 끈질긴 본능의 강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터베이션은 그 어원(manus=hand, turbare=to defile·손으로 더럽히다)이 주는 느낌만큼 불결한 것이 아니다. 비윤리적이거나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다. 인간성의 방책 안에서 본능의 비위를 맞춰주는 단성의 섹스다. 생존과 생식은 위대한 진화의 목표이며, 성적 쾌락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오늘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는 열심히 딸딸거리는 성음(聲音)이 그치질 않는다. 금세(今世)는 결코 중세로 역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기진 본능을 달래주는 기분 좋은 육감은 피곤한 팔뚝을 격려하고도 남음이 있다.



    Sexstory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