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양극화 시대의 한국 경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

  • 이승협 한국노동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입력2008-12-02 12: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양극화 시대의 한국 경제
    ‘양극화시대의 한국 경제’ : 유태환·박종현·김성희·이상호 공저, 후마니타스, 303쪽, 1만5000원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는 사회만이 발전한다. 근대 이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은 울리히 벡이 말하는 성찰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도 바로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공백을 메워주는 책이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양극화시대의 한국 경제’는 말 많고 시끄러웠던 지난 5년을 냉철하게 성찰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성찰의 공백 메워주는 책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제목에서부터 은연중에 저자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통상(한미FTA), 금융(자본시장 육성), 노동(노동시장 유연화) 및 연금(연금개혁)이 사회 양극화를 확대 심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상당히 인색하고 비판적이다. 나아가 이 책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한미FTA, 자본시장, 노동시장 유연화 및 연금 개혁은 완료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진행 중인 의제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성찰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사회 양극화를 경고하는 것 또한 저자들의 숨겨진 의도로 읽힌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경고하는 성찰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를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능력에 달려 있다.



    유태환은 노무현 정부의 대외통상정책을 한미FTA를 중심으로 전략과 시스템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노무현 정부는 폐쇄적 고립경제모델에 대한 반성으로 대외통상정책을 추진했지만, 의욕 과잉과 전략 부재로 인해 준비되지 못한 정부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한 것으로 본다. 유태환은 이러한 측면에서 전략적 대외개방 정책을 주장한다. 전략적 대외개방 정책의 핵심은 통상정책의 도구화다. 경제발전을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상정책을 놓고, 내적 합의를 거쳐 경제구조를 외부화하는 전략적 접근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노무현 정부는 현실적으로 주어진 다양한 선택지를 배제하고 한미FTA로 통상정책을 축소시키는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고 평가한다. 더구나 정부의 전략적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술적 실수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어 결과적으로 한미FTA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미국에 끌려 다녔다고 분석한다.

    노무현 정부의 대외통상정책의 기조는 자유무역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경제에 자율적인 발전경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자유무역(free trade)이라는 시장근본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시장참여자의 삶의 질이 고려되는 공정무역(fare trade)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적 의제들

    두 번째 글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 역시 사실상 과거의 아픈 기억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IMF 경제위기의 주요한 원인이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후진성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토대가 되는 자본시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단순한 자극-반응의 정책개발 논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박종현은 금융정책의 비대칭성이란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이 자본시장의 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보편적 금융 인프라의 구축을 통한 자본의 순환 측면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한다. 자본시장의 확대를 위한 금융허브의 육성, 자본시장통합의 추진, 간접투자자산 및 펀드시장 활성화 정책이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지만 외국계 투기자본의 유입과 서민금융의 소외로 자본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소외된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안적인 금융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종현이 말하는 대안금융은 소액금융, 지역금융 및 사회책임투자와 같이 사회공공적 관점에서 운용되는 자본을 말한다. 제도권 자본시장에서 배제되어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빌려 쓰고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는 서민금융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대안적 자본시장의 형성은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대안금융은 기존 자본시장을 대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인 별도의 자본시장 영역으로 설정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안금융의 종자돈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떤 주체가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제도는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反노동정책

    세 번째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다루는 김성희의 글은 전통적인 경제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정책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정책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하위영역처럼 다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현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적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노동정책은 고용, 노동조건 및 임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양극화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개별 노동자의 생존 및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희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초기에는 개혁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지향했지만,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대립 이후에 반개혁적 시장주의로 변질됐다고 분석한다. 비정규직법안은 사회정책의 영역이어야 할 노동정책에 시장논리를 도입해,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악화시키고, 고용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 대표적인 악법이라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정책 논의의 과정에서 제기된 의제, 의제의 제도화, 제도의 시행과정을 검토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추진능력의 한계를 문제 삼는다. 특히 무능력한 노동부 관료들에게 정책방향 설정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노동정책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했으며, 노무현 정부 역시 이를 통제할 만한 정책역량이 부재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이상호의 글은 노무현 정부의 연금정책을 사회적 연대와 평등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사회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실패를 보완해주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사회안전망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은 항상 시장에 대한 개입을 그 원칙으로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보편주의적 복지제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제도의 포괄성과 보장성이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급속하게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노후생활의 안정문제다. 비경제활동인구인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급격한 인구구성비의 변동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실업자 및 비정규직의 증가, 퇴직연령의 하락과 같은 노동시장의 구조변화 역시 노후생활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대간 협약의 형태로 충당되는 연금재정의 안정성 확보는 2018년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긴급한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안적 방향과 반대로 가는 현실

    이상호는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방안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즉 연금재정의 안정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연금체계가 갖고 있는 사각지대, 즉 납부예외자와 장기체납자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고령인구의 빈곤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금제도의 기본 취지는 취약계층의 소득안정에 있다. 그런데 연금제도가 존재함에도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의 소득불안정성이 여전히 높다고 하면, 연금제도의 존재의미 자체가 의심받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정책의 한계가 존재한다. 연금재정의 안정성을 위해서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서구의 연금개혁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더 내고 덜 받는’ 재정 안정성 확보로 연금개혁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연금재정의 안정성은 확보됐지만, 연금의 사회적 정당성은 오히려 후퇴하는 아이러니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연금에 대해 힘들 때 목돈 내고, 나중에 푼돈 받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이 오히려 연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낮은 보장성에 있다. 연금이 실질적인 소득보장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연금제도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이상호는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방향만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양극화의 관점에서 주요 쟁점별로 정리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시장의 폭주에 대한 사회적 규제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한다. 양극화시대의 한국 경제는 이러한 쟁점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역사적 과거에 대한 검토이지만 쟁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은 이 책에서 설정하고 있는 대안적 방향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시장적이고 더 기업친화적이다. 사회적 연대와 평등은 더욱 가치절하되고 시장은 과소사회화되어 폭주하고 있다.

    대안 부재의 사회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이 단 한 권의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읽는 이의 과욕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한계로 남는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