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뭐 하러 미리 걱정하나?

최영미 시인

  • 입력2008-12-02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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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하러 미리 걱정하나?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빛을 향해 팔 뻗으며

    나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백년가뭄에 목이 마르고 등이 휘어도



    친구가 곁에 없어도

    나무는 울지 않는다

    눈 날리는 들판에 홀로 서 있거나

    막다른 골목에서 가슴까지 비에 젖어도

    외롭다 말하지 않는다

    지구의 뜨거운 중심에 가까이

    뿌리를 내리며

    나무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는다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

    빗물을 받아먹고

    흙을 빨아 연명하는

    잎과 줄기와 뿌리가 한몸인 나무는....

    세월의 나이테에 숨길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나무는 울지 않는다’

    나의 미공개 시(詩) ‘나무는 울지 않는다’이다. 사실 나는 지금의 금융위기가 그리 실감나지 않는다. 경제가 어찌됐든 끄떡없을 만큼 내 삶이 윤택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다. 나는 아직도 ‘주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그게 종이가 아닌가?) 신문의 경제면 기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환율이니 주가니 펀드니 떠들어도 나와는 무관한 일. 글을 써서 밥을 먹는 것보다 더 큰 꿈을 꾸지 않기에,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부모님에게 매달 거르지 않고 생활비를 보낼 만큼, 더도 덜도 말고 꼭 그만큼의 돈이 있으면 나는 만족한다.

    출판시장이 좋지 않다고 여기저기서 수군대니, 나의 낙천주의도 새 시집이 출간될 즈음이면 된서리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하러 미리 걱정하나? 내 경험으로 미루어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There is no fear except fear itself”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문장을 나는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위기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 불안에 쫓기어 성급한 결정을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마련이다. 말은 좋지만 실천은 어려워, 최근에 나도 갑자기 닥친 집안의 불상사를 성급하게 처리하며 손해를 많이 보았다. 아, 그때 내가 조금만 참았다면, 걱정에 휘둘리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개인이든 사회든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살아남는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를 위의 시로 만들어봤다.

    문명의 헛된 욕심을 버리고 생명의 뿌리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통장의 잔고가 두둑하지 않아도 당신은 행복할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으니 잊을 것도 없고, 특별히 기억할 것도 없고 허허실실 세월이 두렵지 않으리. 나무는, 울지 않는다. 울어도 소용없으니까. 잎과 줄기와 뿌리가 서러운 한몸인 나무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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