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이혼할 때 전 재산 내놓고 욕도 먹었지만 즐겁게 살았다

조영남 가수

  • 입력2008-12-02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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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할 때 전 재산 내놓고 욕도 먹었지만 즐겁게 살았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간신히 깡통에다 소변을 보셨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안방 문만 열면 있는 우물가에다 그걸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엔 우물가 근처만 가도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도 거기에 오줌 눠서 그랬는지 연초록색 이끼가 잔뜩 껴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별말씀 안 하셨다. 그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분이 아니었다. 당시 엄마와 나는 고구마, 감자, 마늘 농사를 함께 짓는 동지였다.

    충청도에서 살다 서울 후암동 해방촌으로 온 건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다. 누이, 어린 조카 둘과 살다 보니 물 긷는 건 자연히 내 몫이었다. 동네 수도가 하나밖에 없어 물을 긷는 데 2, 3시간은 족히 걸렸다. 물이 안 나오는 날에는 남산에 올라 숲을 막 헤쳐보면서 물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받으려면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때 아는 노래, 좋아하는 노래 다 부르곤 했다. 데이트하던 아가씨랑 같이 가기도 하고.

    대학생이 될 즈음, 부모님이 시골집을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불광동 부근 독박골에서 살았는데 그때 동생이 죽을 뻔했다. 다락에서 자고 내려오던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나란히 자고 있던 동생 배를 밟은 것이다. 평소에는 ‘짬프’를 잘했는데, 잠결에 그만 실수했다.

    “젊은 여자 때문에 본처 버렸다고…”

    대학 때부터 ‘쎄씨봉’이라는 경음악감상실에 가서 아마추어 시간만 되면 ‘돈 워리’ ‘월 버튼 마운튼’ 같은 컨트리 송을 불렀다. 돈 받는 건 아니었지만 부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러다 이백천, 정홍택 같은 분들이 미8군 악단장에게 다리를 놔줘 미8군 쇼단에 취직하게 됐다. 주말 밤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등록금 6만원은 가볍게 벌었다.



    재미있게 노래 부르다 보니 방송에 나와서 노래해보는 건 어떠냐고 해서, ‘딜라일라’를 부르며 가수 데뷔를 하게 됐다. 당시 대학 3학년으로 스물두 살이었는데, 미8군 때 벌이보다 훨씬 좋았다. 데뷔한 지 1, 2년 지난 뒤에는 아파트도 샀다.

    그러다 이혼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수시로 주는 건 귀찮을 것 같아서 한꺼번에 아이 교육비 몫으로 재산을 다 줬다. 전세 값, 미국에 있던 거 다 계산해줬다. 그때 나는 ‘나한테는 다시 좋은 시절 안 오겠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이 젊은 여자 때문에 본처 버렸다고, 패륜이라고 욕해서 지금처럼 섭외가 잘 안 왔다. 욕먹을 짓을 했으니까 욕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뻔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위축되진 않았다.

    개털이 됐지만 금방 옥수동에 월세집을 얻었다. 밤무대를 뛰면 당시 현철 주현미가 500만원이라면 나는 250만원이었는데, 개의치 않고 주어진 대로 즐겁게 일했다. 물론 전에 비해 경제적으론 좀 어려웠지만 그 어려움이 나에게 잔재미를 줬다. 친구들이랑 카페도 가고 술집도 가고, 여자들도 만나고, 책도 읽고. 나처럼 개털인 김홍신, 김한길과 매일 만나서 놀며 더 돈독해졌다. 2년 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그걸 잊었는지 다시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맨놀맨 하라우”

    나는 뻔뻔하고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시절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재미있게 내 방식대로 살아갈 자신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늘 “놀맨놀맨 하라우”(급하게 하지 말고 놀면서 하라) 하셨는데, 그게 내 신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재미있게 살려다 보니 인생을 즐겁게 살았다.

    눈뜨는 매 순간이 위기다. 돈 있는 사람은 돈 아까워하고, 돈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힘들고. 긍정적으로 살면 그만이다. 위기가 닥쳐오면 올 것이 왔구나, 하면 된다. 막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내가 손해다. 남 보기도 추잡스럽고. 쫌스러운 표정 보이면 여자들이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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