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 주택의 건축비는 최저 5000만~6000만원에서 최고는 3억원…건축자재는 외국 수입품이 사용되고, 사치품의 구입을 규제하는 법률은 마이동풍, 건물의 유지비만도 매월 10만원은 들며, 승용차 두 대, 구내 엘리베이터, 응접실의 열대어 등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확인도 안 해보고 짐작으로 두들겨대거나 비아냥거린 부패, 호화, 사기, 비리 등의 묘사는 그 뒤 그가 중앙정보부에 붙들려가 조사를 받을 때 크게 문제가 되었다. 취조관들은 입을 모아 “우리가 가서 보고 확인한 뒤에 과장이면 너는 골로 간다. 반공법에 국가보안법, 간첩죄에 해당한다, 알겠어?”라고 을러댔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다섯 도둑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담은 풍자 담시였다. 이들을 꼬집어 짐승 이름을 뜻하는 벽자(僻字) 투성이의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옥편을 찾아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다섯 도둑 이야기’의 파문
‘오적’을 쓰던 당시의 심정을 훗날 김지하는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다”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 그 도입부는 이렇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 내 어찌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오적’은 이어 다섯 도둑의 악행을 차례대로 묘사해나간다.
(재벌) 재벌놈 재조 봐라 /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 온갖 특혜 좋은 이권 모조리 꿀꺽/이쁜 년 꾀어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잡고…
(국회의원)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 혁명공약 모자 쓰고, 혁명공약 배지 하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 우매한 국민 저리 멀찍 비켜 서랏 / 골프 좀 쳐야겠다…
(고급공무원) 어허 저놈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 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 쥐뿔도 공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 한 손은 노땡큐 다른 손은 땡큐땡큐 /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공금은 잘라 먹고 뇌물은 청해 먹고…
(장성)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 죽는 쫄병들은 / 일만 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잡아 주어패서 / 영창에 집어넣고…
(장차관) 굶더라도 수출, 안 팔려도 증산 / 아사한 놈 뼈다귀로 현해탄 다리 놓아 / 가미사마 배알하듯 / 예산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 행여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고 캔트 피워 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