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건국 60주년 특별연재/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⑤

‘오적’·생명담론과 김지하

70년대를 걸머진 양심 “촛불 켜라 모셔야겠다”고 나선 뜻

  • 윤무한 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오적’·생명담론과 김지하

2/8
다섯 도둑의 악행은 법의 그물망을 요리조리 피해간다. 어명을 받아 이들을 잡으러 온 포도대장이 이들을 지목한 돈 없고 빽 없는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오적의 개 노릇를 하다가, 얼마 후 그들과 함께 급살당하는 것으로 ‘오적’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현실 속의 큰 도둑들은 권력과 금권을 마음껏 누리며 떵떵거리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김지하는 단형(短形) 판소리 기법을 이용한 이야기 시, 서양의 발라드(ballade) 형식의 담시 ‘오적’으로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통렬히 고발한 것이다.

‘오적’이 1970년 5월호 ‘사상계’에 실렸을 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전선’에 전재되면서 정치문제로 번져나갔다. 박정희 정권은 김지하를 비롯해서 부완혁 등 네 명을 구속했다. 반공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던 양길승은 박 정권이 용공좌경으로 몰아붙인 ‘오적’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한 통쾌무비한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장장 20쪽이 넘게 숨 몰아쉴 사이 없이 욕설과 쌍소리를 섞어 쏟아내는 이 ‘오적’은, 동빙고동이라는 부유층의 주거지가 도둑촌이라 불리며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그 도둑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는 것을 그야말로 속시원히 풀어준 시 아닌 시이다. 어찌 시가 그 당시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을까.”(양길승, ‘1970년대 김지하 : 오적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 ‘역사비평’ 제31호)

이른바 ‘오적 사건’으로 1953년에 창간된 이래 줄곧 이 땅의 정신풍토에서 민주주의의 견고한 진지 노릇을 하던 ‘사상계’가 등록말소 처분을 받은 채 영영 자취를 감추었고, 김지하는 100일의 구속 끝에 풀려났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1964년 6·3한일회담반대운동 때 23세의 나이로 4개월의 감옥체험을 한 김지하는 이 사건으로 국내외에 걸쳐 유명인사가 되었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다.

1971년에 김지하는 ‘나폴레옹 꼬냑’과 ‘구리 이순신’ 연극공연을 준비하다가 당국의 방해로 중단해야 했다. 그 후에도 일본의 기생관광과 경제침략을 풍자한 담시 ‘앵적가(櫻賊歌)’를 발표했으며, 민중에 대한 종교적 실천의 문제를 제기한 희곡 ‘금관의 예수’는 그가 가사를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인 노래로 더 유명해졌다.



‘오적’·생명담론과  김지하

1970년 야당이던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이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게재하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이를 압수하고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쓴 절창

이듬해인 1972년 김지하는 가톨릭 계통의 종합교양지 ‘창조’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다. 때마침 대연각호텔이 불타는 대화재가 발생했다. 김지하는 이 화재를 우리나라 근대화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를 압축해놓은 상징으로 보았다. ‘비어(蜚語)’는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어’는 곧 유언비어의 뒷말로 ‘메뚜기처럼 뛰는 말’, 즉 ‘소문’이란 뜻이다. 예컨대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소문에 의하면 이렇고 저렇고 그렇다”라는 식이었다.

‘비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고관(尻觀)’으로, ‘엉덩이를 보라’는 뜻과 ‘높은 관리’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두 번째는 ‘소리 내력’.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벌려고 애쓰지만 잘 안되는 ‘안도(安道)’의 억울한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저항을 그렸다. 세 번째는 ‘육혈포(六血砲) 숭배’, 파시즘과 그리스도교의 결정적 대결을 예상하는 이야기 시다.

이미 ‘오적’으로 온 세상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했던 터라, ‘오적’과 비슷한 담시가 가톨릭계 잡지에 발표되자 당국에서는 처음부터 문제 삼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 무렵은 내밀하게 남북회담이 준비되고 있던 때로 문제가 확대되면 정권의 도덕적 파탄이 우려됐다. 김지하는 곧 서울 모래내 하숙방에서 체포되어 마산의 가포(架浦)국립결핵요양원에 연금당했다. 입구에 정보요원이 지키고 있었고 사방을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쳤으니 말 그대로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창조’ 역시 그해 11월 자진 휴간 형식으로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72년 10월 이른바 10월유신이 선포됐다. 불길하기 짝이 없던, 민주주의의 장송곡이 마침내 울려 퍼졌다. 김지하는 유신체제의 암흑이 온 누리를 짓누르던 어느 날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숨죽여 흐느끼면서’ 한 편의 절창을 썼다. 그 후 20여 년 간 이 절창은 국민적 기도나 다름없었다.

2/8
윤무한 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목록 닫기

‘오적’·생명담론과 김지하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