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농담이라며 호남의 최고 명문이 ‘호남고’이고 전주에서 최고 명문이 ‘전주고’라고 했다. 그럼, 올드 여고생들은 누구인가? 전라여고는 어디에 있는가? 단체 미팅을 나왔는가? 아니다. 전라여고는 전라고 출신과 결혼한 여인네들이 자동으로 편입하게 되는 가상의 여자고등학교다. 나이야 들쭉날쭉하겠지만, 실제 여고동창생들처럼 만나면 언니, 동생 하며 스스럼이 없다. 소풍 내내 팔짱을 끼고 다니는 축도 있다. 이러다가 머지않아 ‘전라여고 동문회’가 결성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고생들도 수학여행길이 신나기는 마찬가지인지라 하나같이 하루 종일 얼굴에 웃음을 달고 다닌다.
연이은 모임 기록 경신
남고생들은 동창의 아내를 무조건 ‘형수’로 부르는 미덕을 발휘했다. 부부동반 51쌍, 자녀 4명, 싱글 13명, 모두 119명이었다. 이벤트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추억의 수학여행’ 콘셉트는 적중했다. 회장단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자발적인 찬조금이 보름 사이에 1000만원을 웃돌았다. 참가하지 못하면서 100만원을 쾌척한 친구도 있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부부는 금일봉을 기꺼이 내밀었다. 20만원, 30만원, 50만원 등 기부행진이 이어졌다.
마른 오징어 25축(500마리), 수건 100장, 머리염색약 100개, 세금절약가이드 100권, 시 전문지 100권 등 찬조물품도 넘쳐났다. 아름다운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올해는 관광버스 4대를 빌렸다. 지난해에는 단양 8경과 충주호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관광버스 3대에 100명이 나눠 탔더랬다. 2006년에는 대관령목장과 오대산 월정사 소풍에 관광버스 2대 60명 참가.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인가. 해마다 기록이 경신되는 이유는 “엄청 재밌다더라”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결국 올해는 재미동포, 재캐나다 동포까지 비즈니스를 겸해 방한, 30년 만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제 재경동문회나 1년 2차례(신년하례식, 쌍륙절) 부부 동반행사는 굳어진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정례행사말고도 번개모임(벙개)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린다. 참가인원 평균 15∼20명. 쉰(지천명) 넘어 살다 보니 축하할 일도 많고 위로할 일도 많다는 게 그들의 변(辯)이다. ‘6산會’라고 월례 산행모임은 또 어떤가? 2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시산제를 필두로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인왕산, 유명산, 명지산 등을 두루 다녔다.
말하자면 이들의 만남은 일상 마시는 술과 같은 것.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이다. 한 친구는 “볼 수만 있다면 날마다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누구나 고교 3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班)이 아니었던 동창을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면 어색하지 않던가. 그것도 한 세대를 걸러 만난다? 처음에는 서로 명함을 건네고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