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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마지막회’

작품으로 승화한 여성 예술가의 욕망과 좌절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작품으로 승화한 여성 예술가의 욕망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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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성이 예민한 예술가에게 사랑은 자극이자 모험이다. 사랑만큼 감성과 직관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도 드물다.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에로스적 에너지에는 사랑을 향한 맹목적 투신이 숨어 있다.
작품으로 승화한 여성 예술가의     욕망과 좌절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한다.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소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사건을 겪는 순간 삶은 특별해진다. 평범하고 별 볼일 없던 하루하루가 나만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엑스트라로 물러서준다. 그렇게 사랑은 ‘나’라는 존재를 값어치 있게 만들어준다. 한편 사랑은 숨어 있던 감성을 표면으로 이끌어내준다. 덤덤하던 사람도 삼라만상의 움직임이라든지 세상의 변화에 조금씩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가을이면 단풍이 지는 이유도, 아침이면 해가 뜨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싶다. 그 사람과 나, 우주 간의 특별한 인연이 생성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 예술가도 사랑을 한다. 감성이 예민한 예술가에게 사랑은 자극이자 모험이다. 영화가 즐겨 실존 예술가의 사랑을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의 충동과 열정, 파멸을 거의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감성의 프리즘처럼 예술가는 사랑의 진폭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현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예술가의 연대기에서 뜨겁고 격렬했던 사랑이 훗날 위대한 역사적 작품으로 기록될 그 작업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랑만큼 감성과 직관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도 드물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에는 에로스가 충만하다. 서로를 향하는 욕망과 갈구가 넘쳐날 때 그 에너지는 작품 너머 관객에게까지 이입된다. 지독한 사랑에 빠져 역사적 작품을 남겼지만 광기와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말소되어간 이름들, 그 예술가들의 이름을 사랑과 함께 불러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카미유 클로델-경계를 넘어버린 열정, 광기와 사랑 사이

프랑스 영화 ‘카미유 클로델’은 실존했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카미유 클로델의 전 생애를 그렸다기보다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연애기간에 한정되어 그 삶을 재조명한다. 그 연애 사건은 희대의 스캔들이기도 했던 스승 로댕과의 염문이다.



로댕의 제자였지만 로댕의 여자로 더 잘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 이 호명(呼名)의 모순 속에 이미 그녀, 예술가로서 지독한 자아를 지닌 한 여성의 파멸은 예견되어 있다. 자신의 재능마저 불태워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하지만 끝끝내 열정 너머 존재하는 예술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여인을 그린 ‘카미유 클로델’은 어느덧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한 예술가의 삶을 사랑을 통해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영화는 한밤중 묘지의 흙을 주워 담는 한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여자는 이미 미쳐 있다. 조각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 자신의 손으로 다른 한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광기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빠져 있다. 좋은 흙을 발견하기 위해 이미 그녀는 무덤이나 시체 따위에 대한 두려움을 버렸다. 그녀는 바로 카미유 클로델, 그녀의 열정은 젊음과 어울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한다.

채워도 차지 않는 욕망의 항아리

카미유 클로델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로댕의 제자로 들어간다. 로댕은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한눈에 알아보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로댕에게는 본처라고 부를 만한 오래된 연인이 존재한다는 것. 그녀는 로댕이 벌인 수많은 치정 사건에도 언제나 되돌아갈 수 있을 어머니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카미유는 한밤중 무덤의 흙을 파내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로댕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잠시 이 사랑은 아름다운 로맨스로 카미유의 삶을 빛나게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유부남과의 사랑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 유부남이 실력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카미유는 그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예술적 직관의 최고를 경험하지만 또한 에너지의 누수를 경험하기도 한다. 카미유는 점점 로댕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로댕에게 카미유는 아름다운 여성이자 자신의 예술적 에로스를 자극해주는 색다른 소재이기도 하다. 카미유가 총기 넘치는 여자를 넘어서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여자로 변해가자 로댕의 애정은 급격히 식어간다. 로댕에게는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로댕이 자신에 대한 애정을 거두자 카미유의 사랑은 집착과 분노, 증오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는 로댕의 몇몇 작품을 두고 자신의 모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로댕의 공공연한 애인이던 카미유의 이러한 주장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관심 속에서 광대처럼 카미유는 점점 더 스러져간다. 로댕을 모함할수록 로댕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진저리를 친다. 고장 난 사랑기계처럼 카미유는 로댕을 저주하고, 미워하고, 매달리지만 이미 그녀는 로댕이 사랑했던 카미유가 아니다. 버려진 광대가 되어버린 카미유, 참혹하게 훼손된 채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마치는 그녀는 예술적 광기가 한 사람에 대한 집착과 융해되었을 때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 가장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은 바로 사랑에 빠진 두 연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영화에는 ‘다나이드’와 ‘키스’ ‘칼레의 시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소개된다. 이 중 특히 ‘다나이드’를 만드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로댕은 카미유를 모델로 삼아 신화 속, 불운한 그녀들을 창조해낸다. ‘다나이드’는 첫날밤 남편을 죽인 죄목으로 평생토록 밑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만 하는 벌을 받은 님프들이다. 영화 속에서 로댕은 자신을 열망하는 카미유를 모델로 삼아 그녀의 목을 꺾고 근육을 도드라지게 해 조각품을 만들어낸다. 로댕의 작품 ‘다나이드’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카미유 그 자체에 대한 비유에 가깝다. 달빛을 받아 풍만해진 카미유의 육체는 마치 항아리처럼 둥글고 완만해 보인다.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는 항아리는 그녀의 욕망과 열정, 육체, 그러니까 카미유 자신이라는 편이 옳다. 사랑의 속살은 삼켜지지만 그 가시가 남아 목에 걸리듯이 그렇게 사랑은 이율배반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얻었지만 그것은 한편 무참히 훼손된 한 젊은 예술가의 영혼이기도 하다. 폐허가 될 것을 알면서도, 카미유 클로델은 자신의 열망을 단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론 실패한 사랑이 더 아름다운 열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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