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포클레인과의 전쟁… “뒷짐 지지 마! 악다구니로 막아!”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8-12-04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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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십리. 도읍 자리를 정하러 가는 승려에게 도사가 나타나“한 10리쯤 돌아가야 할 것”이라 했대서 붙여진 이름이라던가. 서울의 한쪽 구석 공장지대가 되어 수많은 사람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버텨내던 이곳에선, 요즘 뉴타운 재개발 바람을 타고 싸움이 한창이다. 철거용역업체 직원들과 왕십리2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집주인도 아니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무슨 권리가 있다고 저리 버티고 있을까.’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든다. 공연한 떼쓰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한 투쟁일까. “법대로 집행되지 않아 그냥 버틸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신산한 삶 속으로, 그들이 가진 왕십리의 추억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 보았다.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1. “이모, 막다간 우리 둘 다 다쳐”

    옥양목처럼 눈부신 날, 허물어진 건물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을볕을 쬐고 있다. 얼굴이 쪼그라든 할머니는 어디에서 찾았는지 집 짓는 데 쓰이는 스티로폼을 깔고 웅크리고 앉는다. 야구 모자로 얼굴을 가린 젊은 애기엄마는 고무줄놀이 하듯 한쪽 벽이 없는 건물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팔짱을 끼고 선 서너 명의 표정이 ‘성북동 비둘기’처럼 불안하다. 연신 손 깍지를 꼈다 풀었다 하는 중년 아줌마의 아랫입술에 흰 각질이 가득하다. ‘아시바’(안전펜스장치) 작업이 한창인 왕십리 2구역 주차장 풍경이다.

    건물 맞은편 골목에도 그만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검정 상하의를 걸친 건장한 남자들이 ‘왕십리 2구역 세입자 대책위’라고 적힌 붉은 조끼를 입은 여자들과 마주서서 이야기하다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주인이 버리고 갔다는 흰 발바리가 연신 꼬리를 흔든다.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웃던 여자가 한 남자에게 묻는다. 시장에서 콩나물 값 깎을 때 짓는 표정이다.

    “삼촌, 물어볼 게 있는데 말야. 장비(포클레인) 언제 들어오는 지 알아?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이번 주에 들어오는 거 맞지?”

    “에구머니나 어찌 아셨수? 아마 이번 주에는 올 거야. 오늘 아시바 치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오겠지. 근데 이모, 오면 뭐할 건데? 설마 지난번처럼 막진 않겠지? 괜히 그랬다간 이모 몸만 다치니까 막을 생각일랑 말어. 막다간 우리 둘 다 다치는 거야. 크게 다친다구.”



    검은 옷의 사내들은 철거반 용역직원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서로 적(敵)인 셈. 말을 이어나가는 용역직원은 영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그럼 목요일 금요일에는 비상(문자) 때려야겠네. 삼촌들도 알다시피, 세 들어 사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어? 오늘도 조금 막는 척하다가 그냥 하라고 냅두잖아. 그래도 장비 오면 진짜 철거하는 거니까 어떻게든 막아야지 않겠냐고.”

    소처럼 멀건 눈망울의 젊은 엄마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삼촌들도 보면 알잖아요. 우리가 무작정 떼쓰는 것도 아니고 법대로 하자는 건데, 조합이 너무하는 거라고 봐요, 정말. 둘 다(주거대책비, 임대주택입주권) 안 해주는 날엔 끝까지 갈 거예요, 두고 보라고 해요 어디.”

    철거가 진행된 지난 6월부터 얼굴을 트고 지냈으니 아무리 세입자, 철거 용역직원이라도 정들 만도 하다. 적대 관계가 익숙하지 않은 아줌마들에겐 누군가를 무작정 미워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했다. 곰돌이, 삼땡, 백상어, 대머리…. 철거요원들에게 저마다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며칠 전 대머리는 흑까치가 됐다. 한 세입자가 “혹시 별명을 듣고 상처받을 만한 별명은 짓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 뒤부터다.

    얘기가 통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번에는 허심탄회한 부탁이 오간다.

    “우리도 삼촌 입장 다 알아. 그러니까 우리 사정 좀 봐서 철거 좀 늦춰줘.”

    “이모 사정 아니까…. 노력해 보긴 하겠는데 쉽진 않아, 이게 직업인 걸. (지나가는 중년여자를 보며) 이모, 그 부침개 맛있게 잘 먹었어요, 엄마가 해준 것처럼 맛있더라….”

    말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리를 떠나려던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글구 이모네 프락치나 좀 잡아. 우리한테 자꾸 정보 주는 사람이 있어. 대책위원회 직위고 전화번호고 다 가지고 있던데 뭘.”

    #2. “두 얼굴을 갖고 하란 말야!”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운 2층 건물(세입자대책위원회 임시사무실)에 사람들이 올라온다. 2층 안방 문 앞에 때 묻은 운동화와 통굽구두가 하나둘 놓인다. 목소리 큰 여성위원장이 은미 엄마, 현정이 엄마를 부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족히 열 사람이 모여 방바닥에 앉았다.

    검정 체육복 차림에 캡 모자를 쓰고 있는 젊은 애기엄마는 긴장했는지 멀뚱멀뚱 여성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아들에게 따뜻한 물로 머리 감으라고 말하다 주위 눈치에 전화를 끊었다. 손이 벌겋게 부어오른 중년 여자는 방에 깔린 요 안으로 다리를 밀어 넣는다.

    10년째 식당을 한다는 여성위원장이 어느새 호통을 친다. 장수처럼 목소리가 크다.

    “그렇게들 히히덕거려서 되겠어? 웃으면서 하는 게 아니라 싸워야 해! 걔네 봐, 웃을 거 다 웃고 이 건물 밀 때는 안면에 딱 철판 깔잖아! 우리도 원천적으로 활동 못하게 철판 딱 깔고, 아시바 못 하게 해야 해! 법이 예전하고 달라져서 걔네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못해!

    우리도 인간이고 걔네도 인간이니까 좋게 지낼 수도 있어, 나도 이해해. 간 쓸개 빼줄 땐 빼줘! 한 얼굴 가지고 하면 안 돼. 두 얼굴 가지고 하란 말야. 걔네들이 철거만 10년 넘게 했는데, 요령이 없겠어?”

    다들 동의하는지 묵묵히 앉아 있다. 그때 뚱하고 앉았던 중년 여자가 갑자기 말한다.

    “그래도 아시바 칠 때는 남자 넷 여자 넷은 있어야 해. 쇠막대기가 얼마나 크다구.”

    “한 명이 악다구니를 쓰면 장비(포클레인)도 막을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아시바 막는 데 무슨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해! 나 죽이고 가라고 붙들고 늘어지면 못할 게 없어! 앞으로는 조직부장이나 조장만 나서지 말고 다 같이 행동해! 내 형제가 할 때만이라도 뒷짐 지지마! 누구는 피 터지고, 멍들고, 뼈 꺾이고…. 이런 사고방식으론 할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하면 좋아하는 건 (재개발) 조합장뿐이라구!”

    사람들의 눈에서 저마다 결의가 느껴진다. 풀죽어 있던 좀 전의 모습은 간 데 없다. 그때 회색 머플러를 매만지고 있던 파마머리 학부형이 웃으며 말한다.

    “(웃음) 나도 고집 있어. 할 땐 한다고, 왜 이래~.”

    뚱한 중년여성도 머쓱했는지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듯 말한다. 떨리지만 우렁찬 목소리다.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땐 한다고. 두고 보라지, 누가 이기나.”

    대화중 전략도 나온다. 중장비를 다루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간 틈을 타서 장비를 점령하자는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조합의 공사현장을 지키는 대책위 사람들에겐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철거용역 담당자들이 경계를 늦춘 때 끼니를 해결하니, 틈새를 노리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점심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이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몇몇 사람이 밥을 사먹고 오면 돈이 없어 밥을 굶는 노인들은 욕을 한다. 그래서 아예 굶는 게 낫다는 엄마들도 생겼다. 한때는 식당을 하는 이가 밥을 해줬지만 그마저도 돈벌 속셈이 있다고 누군가 흉보는 바람에 없어진 지 오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회의는 잠시 중단된다. 여성위원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이구, 우리 아들~, 집에 왔어? 배는 안 고파? 엄마 금방 갈게~.”

    #3. “나라가 깡패 양성소인가요?”

    그동안 시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무서운 건 밤마다 순찰을 도는 대여섯 명의 용역직원들. 주민들에게 “돈 안 벌고 뭐했냐, 그렇게 버러지처럼 받아먹으면 좋냐”고 을러댄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억울한 표정으로 하소연한다.

    “젊은 사람들이 욕하면서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하면 정말 무섭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 친구들이 나타난 뒤에는 밤엔 밖에 나가질 않고 낮에도 큰길로만 다녀요.”

    “껌이라도 씹고 있으면 뱉으라고 을러요. 제가 남자이긴 하지만 어깨들이 시비 거는데 움츠러들 수밖에요. 검정 점퍼에 검정 티셔츠, 바지까지 통일해서 입고 다니는데 무섭죠, 무서워.”

    “차라리 군인이나 경찰이 투입되는 게 낫겠다 싶어요.”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이주자들이 세입자 투쟁을 하는 건 ‘적절한 보상을 못 받고 떠나 더 나쁜 환경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위협을 느끼게 된 건 10월 9일부터다. 장비는 오전에만 들어오니 그날 점심을 먹곤 다들 쉬었다. 그들은 주민들이 방심한 틈을 노렸다. 오후 두세 시나 됐을까, 갑자기 150여 명이나 되는 용역직원이 2구역을 곳곳에서 둘러쌌다.

    “린치를 하는데 병원 진단이 안 나오게 기술적으로 해요. 귀 잡아당기고, 비틀고, 팔 꺾고….”

    “112에 신고했더니 5분이면 올 거린데 15분 만에 오대요. 그것도 달랑 두 명이. 와서 상황정리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 거예요. 배신감이 들데요. 우리더러 업무방해죄라고 하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경찰서 가서 조사 받고 나왔어요. 그때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요. 처벌은 안 받았지만 계속 경찰서 가면 형을 살 수도 있대요.”

    경찰이 크게 다친 몇몇만 챙긴 채 가버리자 대책위 40여 명은 도로에 누워버렸다. 대책위 맞은편 길에 50m 가량을 차지하고 누워 주민보호를 하지 않은 경찰서장과 조합 측에 항의했다.

    “한 시간쯤 지나니까 경찰이 여럿 오대요. 경찰서장도 경고방송하고. 곧 집시법 위반이라고 끌고 가더라고요. 그렇게 성북, 혜화, 동대문, 성동경찰서로 대책위 사람 40여 명이 흩어진 거죠.”

    “그나마 하루 있다가 나온 게 다행이지. 48시간 있었으면 딸 결혼식도 못 치를 뻔 했어요. 토요일 다섯 시가 결혼식인데 금요일 세 시에 나왔어요. 사위가 그러대요. ‘어머니 왜 큰일 앞두고 거기 계세요?’라고요. 그 난리 치른 걸 생각하면….”

    그 뒤로도 두 차례 더 대책위 사람들은 사무실을 부수는 용역직원들과 대치했다.

    #4. 1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돈

    재개발구역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집주인도 아니면서 왜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책위 사무실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2구역 사람들이 성동구청이 주최하는 걷기대회에 갔다 왔다는 그날, 귀여운 인상의 애기엄마를 붙잡아 말을 붙였다. 팔을 붙잡곤 “이사 갔느냐”고 물으니 눈자위부터 벌게진다. 목소리가 깊이 잠겨 있다.

    “임대아파트 하나만 신청하곤 바로 이사 갔어요. 주거이전비 1000만원 정도도 같이 받을 수 있다는 건 모르고. 주인이 자기도 이사 가야 한다며 우리한테 나가라고 해서 나왔어요. 4년 반 동안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 35만원을 주고 살았는데, 월세가 열 달치 밀려서 되레 150만원을 주고 나왔죠. 이번에 빚을 내 옮긴 집은 답십리 지하방이에요. 등본을 떼보니 16년 동안 열네 번 이사를 다녔더라구요.”

    남편이 퀵서비스 일을 한다는 그는 고개를 떨구고는 검지손가락 마디를 매만진다.

    “남편이 많게는 한 달에 180만원쯤 버는데, 못 벌면 150만원도 안 돼요. 그래서 저도 성북구 쪽에서 미싱 일을 하는데 많아야 100만원이고요.”

    차라리 싸울 시간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으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주거대책비 1200만원은 제가 1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에요. 교통비, 식비로 나간 돈 빼면 한 달에 남는 건 60만원도 안되니까요. 여기 장비 막으러 오는 날이면 신랑 밥도 못해주지만 나올 수밖에요. 법적으로 보장된 걸 못 받았다는 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발 빼기도 너무 늦었고요. 넉 달이나 보낸 시간도 아깝고.”

    왕십리 2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에는 총65명이 참여하는데 그중 이미 이사간 사람이 80% 이상이다. 광명시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오는 선영이 엄마도 그런 경우다. 사람들이 빙 둘러앉은 사무실 안에서 사위가 줬다는 선크림을 거울도 보지 않고 얼굴에 문지르며 말한다.

    “난 왕십리에 안 살았으니까 별 할 말 없어요, 우리 남편이 살았지. 그이가 신혼 초에 자메이카 가서 돈 벌다가 곧 우리를 초청한다고 했거든요. 난 그게 어떤 나라인지 몰랐어. 후진국인 줄도 몰랐어, 무식해서. 알았으면 안 보냈지.

    그렇게 기다린 게 20년이야. 포장마차하고 식당일해서 애들 네 명을 키웠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당뇨지수 400이 돼서 딱 나타난 거야. 딸이 저 아저씨 누구냐고 묻는데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 20년 만에 만났는데 돈 한 푼 없대요. 그래서 화딱지가 나서 왕십리에 집 한 채 얻어주고 혼자 살라고 했어요. 애들이나 나나 그 사람 보는 게 싫었거든.”

    남편은 돈 번다고 돌아다니지만 그녀는 미덥지 않은 눈치다. 오랜 세월 식당일을 해서 그런지 몸이 아파 손을 놓을 수밖에 없던 터라 대책위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5. 만나주지 않는 구청장

    이번엔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50대 아줌마다. 웅크리고 앉아 철거반원을 보는 표정이 영 마뜩찮다. 얘기를 하자고 청하니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자가 와 있다는 걸 조합에서 알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으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허물어진 건물 안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조합에서 이사 가지 않으면 임대주택을 신청한 게 무효가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3500만원 전세비 빼서 서둘러 성북구로 이사 갔죠. 그랬더니 집주인 아저씨가 왜 이사를 벌써 가느냐고 그러더라고요. 버티면 더 받는다는데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죠. 임대주택을 신청해도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던 거죠. 3구역에 혼자 사는 이는 임대주택 신청하고도 이주비 730만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두 식구니까 850만원은….”

    TV에서 처음 뉴타운 소식이 나왔을 때 정말 기뻤다는 그녀. 왕십리재건축 기공식 현장까지 찾아가 오세훈 시장의 얼굴을 보며 연신 “고맙네, 고맙네” 했다 한다. 자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화제가 사람 사는 얘기로 흐르자 시무룩했던 그녀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이 돈다.

    “그전에는 동네는 후져도 살기는 괜찮았어요. 동네 사람 40~50명이 모여 산악회도 만들고 그랬거든요. 다 형제 같았죠. 매달 둘째 주 일요일마다 전국 산을 돌아다녔는데, 재개발 들어가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스물아홉에 왕십리로 시집와서 여태껏 살았으니 24년은 산거잖아요. 친한 이웃이 없을 수가 없지. 누가 ‘오늘 한번 놀자’ 그러면 저녁에 곱창도 먹으러 가고, 단란주점 가서 노래도 부르고…. 같이 놀러간 아줌마들 남편들이 막대기 들고 잡으러오면 내가 안 된다고 막아주기도 했는데, 이젠 다들 이사 가서….”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왕십리 뉴타운 예정지는 4300가구 가운데 3600가구가 세입자다.

    이내 신산한 인생 얘기가 이어진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많이 한 손은 퉁퉁 부어있다.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던 남편과 알콩달콩 살았지만 어렵게 시작했던 식당이 실패하면서 빚을 진 게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손이 후들거려 병원비가 더 나갈 지경이 돼서야 일을 접었다. 그녀는 그 길로 대책위에 들어왔다.

    “이건 자존심 싸움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세게 싸우면 앞으로 다른 뉴타운 지역 세입자들이 고생을 덜 하겠죠. 나도 세입자가 이렇게 많은지는 몰랐어요. 왕십리만 해도 85%가 세입자라잖아요.”

    6월부터 거의 매일 왕십리 2구역 현장에 나왔다는 그녀는 장비가 오는 날에는 오전 5시, 보통 때는 8시에 사무실에 온다. 왕십리 2구역 내에서 진행되는 철거사업을 찾아내 막는 게 주 임무다. 성동구청장을 찾아가 항의하는 일도 매주 이어진다.

    “대책위 조끼를 입고 가면 안 만나주니까 평상복을 입고 구청장실로 가거든요. 근데도 어떻게 아는지 회의 중이라는 둥 부재중이라는 둥 문을 꽉 잠가버려요. 한번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봤는데 구청장용 비상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더라고요. 구청장이 그렇게 높은 사람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걷기대회도 구청장 얼굴 한번 보려고 간 거였거든요. 경품 받으면 인사하면서 말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 봤네요.”

    #6. “우리 논 거 아니에요,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철거용역 직원들은 “남 돈 벌 때 뭐하다가 여기서 이러느냐”고 말하지만, 이들도 할 말은 있다. 왕십리 세입자들은 대부분 IMF 외환위기 당시 진 빚을 갚아나가던 중 재개발사업에 맞닥뜨렸다. 자영업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눈매가 시원한 여성위원장은 대뜸 왕십리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흡사 노랫가락 같다.

    “맞선 20일 만에 결혼해서 곧장 이곳에 왔으니까 1986년부터 왕십리에 살았구만. 여긴 서울 같지 않고 고향 같아서 괜찮겠다 싶었어요. 인심도 좋고, 다른 아줌마들이랑 음식도 같이 해먹고. 주인집 셋집 따로 없이 어울려 지내고.”

    살림이 어려워진 건 IMF 때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난 뒤부터였다.

    “건설 중장비 사업이었는데 가짜어음 사기를 당했어요. 큰딸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다섯 살 때니까 먹고살려면 뭐라도 해야 했죠. 동네 아저씨가 돈 1000만원 그냥 빌려주면서 그러대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참말이지 눈물나게 고마웠어요.”

    솜씨 좋은 전라도 아줌마가 그 돈으로 차린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음식값도 쌌고 붙임성도 좋았다. 그렇게 살면서 빚 2억원 중 1억6천만원을 갚았다. 그러나 물가가 올라 음식값을 올리자 손님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재개발이 이어졌다. 공장과 사무실이 물밀 듯 빠져나가자 손님은 아예 끊겨버렸다. 세입자도 임대주택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받을 수 있다는 걸 동네 사람들 중에 맨 처음 알게 된 게 그때였다.

    “마음이 안 흔들린다면 거짓말이겠죠. 내가 왜 이 지랄을 하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이 사람들을 모았기 때문에 혼자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그 맘 알아요?”

    고3인 딸은 중1때부터 지금껏 급식비를 면제받았다. 정 안 되면 급식당번을 해서라도 면제받았다. 그렇게 강하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가는 대신 손톱손질을 배워 돈을 벌겠다고 했다. 부모 마음이 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대학이라도 보내야 하는데….”

    #7. 맘 편히 누워 죽을 곳

    왕십리가 고향이라는 황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얀 얼굴의 그는 눈매나 입매가 다부져 보인다. 그는 대책위에서 잠을 자는 순번이라 사무실에 나왔다 한다. 매일 밤 남자 네 명이 사무실을 지킨다.

    “왕십리에서 학교를 나오고 손목시계 금속밴드 만드는 공장엘 다녔는데, 만드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재미있었어요. 여기는 금속공장이 워낙 많고 아는 사람들도 있으니 잘됐다 싶어 휴대폰 부속품 공장을 차렸죠. 그랬다가 뭐, 그놈의 IMF 때문에.

    처음 부품 만드는 걸 개발이라고 하는데, 그걸 따다가 제작에 착수하면 비용이 들어요. 근데 회사도 사정이 어려우니까 단가가 비싸다는 둥 그러면서 계약을 자꾸 파기하는 거예요.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내 몫이죠. 기업 대출이고 보증기금이고 다 쓰다보니.”

    그는 왕십리를 떠나는 게 영 불안하다. 그래도 괜찮던 시절, 동네의 80%를 차지하던 금속공장 사람들끼리 닦은 안면 덕에 그간 동네 공장 사람들이 맡기는 일을 하며 생활해왔다. 그랬기에 왕십리를 떠나는 게 영 불안하다.

    무엇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시에서 사람들이 머물 시설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법에도 그렇게 돼 있다잖아요, 가(假)이주단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근데 위반해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진행이 될 리가 없지요.”

    왕십리에 20년을 살며 복사기 고치는 일을 했다는 2구역 대책위원장 임흥규씨가 주섬주섬 손바닥만한 수첩을 꺼내 내민다. 몇 장 넘겨보니 빼뚤빼뚤한 글씨가 깨알같다. ‘금호6구역 벽산아파트 23세대, 하왕 2-1구역 송학마을 102세대, 금호 6구역 바탕고을 23세대, 하왕 푸른마을 21세대, 행당 2동 68세대, 왕십리 26세대, 금호 4가 37세대.’ 끝까지 싸워 가(假)이주단지가 지어진 지역이라는 것이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뒤뚱뒤뚱 걷던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어렵게 입을 연다.

    “왜 동회에서 해주는 거 있잖아, 빗자루 들고 여기저기 쓸고 다니는 거, 남편은 그거 해서 30만원 벌고, 나는 폐지 주우러 다니는데 한달에 15만원도 벌기 어려워. 동회 일은 한 집에 둘은 안 된다네. 그거 해주면 참 좋은데…. 우리 아저씨? 왕십리에서 만나 그냥 의지하며 사는 거지 뭐. 이젠 늙어서 아예 바보가 됐어. 맘 편히 누웠다가 죽을 데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지. 색시가 생각해도 그렇지않우?”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이 투쟁하는 이유

    개정법 혜택 못 받는다?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철거 용역과 대치중인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뉴타운 시범사업으로 지정된 왕십리 1,2,3구역. 3구역 세입자들만이 주거대책비(4인가구 기준 1300만원선)와 임대주택(16평 내외) 입주권을 받고 떠났다. 1,2구역 주민들은 두 가지 중 하나씩밖에 받지 못했다. 지금도 “3구역은 SH공사가 맡고 1,2구역은 일반 건설업체가 맡아 보상이 쉽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총 4300가구 중 세입자가 3600가구로 다수를 차지한 까닭인지 서울시내 전체 뉴타운 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왕십리에만 세입자대책위가 만들어진 상태다. 이미 철거가 시작된 이곳엔 버티는 주민과 정황도 모르고 이사 갔다가 ‘뒤늦게나마 권리를 찾겠다’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

    1구역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건 법이 원상복귀할 수 있다는 조합측 판단 때문. 2구역의 상황은 좀더 복잡하다. 2006년 6월29일 사업시행인가가 났기 때문에 2007년 4월12일 개정된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해,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신청권 가운데 하나만 받는 게 당연해졌다는 것이 조합측 입장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둘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입자 측은 “서울시와 성동구는 안 된다고 하지만, 국토해양부에선 ‘2007년 12월21일에 보상계획공고가 났기 때문에 새 법을 적용받는데 무리가 없다’고 했다”며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인 상태다. 주민들은 “우리들을 쫓아내려면 1,2,3차 명도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그 비용 1500만원을 들이느니 차라리 주거이전비를 달라”고 주장한다. 조합이 가(假)이주단지(임시거주단지)를 마련해주라는 법 조항을 어기고 있지만 처벌규정이 없어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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