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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大전환! 오바마 시대

대선 캠페인 700일, 현장에서 본 오바마 리더십 요체

경청과 배려로 말단까지 파트너 만드는 ‘풀뿌리 조직관리’

  • 김동석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소장 dongsukkim58@hotmail.com

대선 캠페인 700일, 현장에서 본 오바마 리더십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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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최대의 정치스타.’ 버락 오바마 당선자에 대한 열광과 인기는 미국 대륙을 넘어서는 분위기다. 정치경력 12년, 중앙무대 데뷔 4년 만에 백악관에 입성한 능력의 요체는 과연 무엇이며, 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대선기간 내내 오바마 캠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이 선거 현장에서 드러난 그의 리더십을 꼼꼼히 분석해 ‘신동아’에 보내왔다. 20여 년간 미국에 머물며 한인 유권자운동에 힘써온 김 소장은 오바마 당선자의 대표적인 한국계 인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대선 캠페인 700일,                                         현장에서 본  오바마 리더십 요체
2006년 중간선거를 통해 이전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을 가장 비약적으로 확장한 지역을 꼽자면 일리노이 주, 바로 시카고다. 1991년 이른바 ‘아칸소 사단’의 일원으로 클린턴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노릇을 한 바 있던 이스라엘 이민자의 아들 램 이매뉴얼은 바로 이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전국의 유대계 정치조직을 기반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민주당의 하원 장악은 이매뉴얼의 지휘 덕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 시카고 지역에서 소비자권리 운동으로 명성을 날린 사회운동가 출신의 이매뉴얼은,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보좌관으로 활약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2002년 선거에서 일리노이 제5지역에 출마해 연방하원에 진출했다. 영원한 참모에서 선출직 현역의원으로의 신분 상승. 그러나 싸움이 붙으면 무조건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이 승부욕의 화신은, 2004년 이후 또 한 명의 사내에게 자신의 정치인생을 걸고 다시 한번 도박에 나선다. 바로 버락 오바마다.

이매뉴얼은 오바마 당선자보다 나이가 두 살 많다. 정치 경력으로 봐도 한참 선배다. 그러나 전국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같은 지역 내의 오바마에게서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정파적 이익과 이해관계에 허우적대는 워싱턴 군상과는 다른 ‘큰 정치인의 리더십’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때 빌 클린턴의 킹메이커였고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의 조력자가 될 것이라 모두 확신했던 이매뉴얼은 알게 모르게 점점 오바마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훗날 그 과정을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

오바마로부터 그러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고 고백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의 핵심 측근 대부분이 비슷한 종류의 ‘신앙고백’을 내뱉은 적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상과 철학이 같다”고 선언하며 일찍부터 정치인 오바마에게 모든 것을 내던진 데이비드 액설로드만 해도 그렇다.



오바마 캠프의 수석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2004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쟁쟁한 후보들을 마다하고 아무도 당선 가능성을 점치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를 택해 상원의원에 당선시켰다. 이후 액설로드는 캠프를 구성한 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 데이비드 플러프를 끌어들여 캠페인 매니저를 맡겼고, 대선 기간 두 사람은 모든 전략을 책임졌다. 뉴욕 출생이지만 시카고에서 생활한 액설로드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시카고 트리뷴’의 정치기자로서 정치감각을 익혔고, 1980년대 정치권에 진출한 이래 민주당 정치인들의 선거를 맡아서 의회에 진출시켰다. 그런 그가 오바마와 “철학과 이상이 딱 들어맞는다”며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함께 한다”고 말한다.

흔히 그를 부시 대통령의 선거전략가였던 칼 로브와 비교하곤 하지만, 차원이 다르다. 칼 로브가 부시의 두뇌였다면 액설로드는 오바마와 동지다. 이는 이제는 액설로드보다도 더 오바마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는 플러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당선자와 액설로드, 플러프 세 사람은 서로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파트너십을 만들어갔고, 오바마 당선자는 11월4일 당선 연설에서 두 사람의 실명을 특별히 지목해 감사를 표했다. 이렇듯 당선 연설에서 캠페인 전략가를 거명하는 일은 일찍이 없던 사례였다.

일리노이 주 제2지역구 하원의원이자 흑인운동의 대부 제시 잭슨 목사의 아들인 제시 잭슨 주니어의 경우를 보자. 올해 43세인 잭슨 하원의원은 흑인 정치권의 1세대 원로들이 오바마 지지에 머뭇거리자 직접 나서서 차세대 흑인 지도자들을 대거 오바마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1996년 상원에 진출해 상원에서 오바마의 정치파트너 역할을 했던 리처드 더빈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지난 1월8일 뉴햄프셔 예비경선장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다.

필자가 뉴욕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힐러리 지지자로 생각한 더빈 의원은 “오바마는 기존의 정당 정치인과는 다르다. 그는 당이 내세우는 후보가 아니라 국민이 추대하는 후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다는 것이다. 계파정치의 색깔이 엷은 미국정치 분위기에서 현역 상원의원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오바마 당선자가 가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은 짐작을 불허한다.

이러한 능력은 정치 데뷔 12년, 중앙무대 진출 4년 만에 대권을 거머쥔 오바마 당선자의 가장 큰 자산이다. 돌이켜 보면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오바마의 힘이었다. 선거 총지휘를 맡은 이매뉴얼이 2004년 보스턴 전당대회 연설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오바마를 전국 곳곳의 지원유세에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중간선거 기간 그는 공화당 강세지역을 민주당 쪽으로 돌려세우는 데 톡톡한 전공을 쌓았다. 오바마의 대중친화적인 얼굴과 탁월한 연설능력은 대륙 전체에서 지지자를 만들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으로부터 빼앗아 온 하원 20석 가운데 적어도 15개 지역의 지지율 반등은 오바마의 지원유세 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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