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이명박 검찰’

“현 총장 강제로 밀어내면 평검사들 들고 일어날 것”(검찰 간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8-12-05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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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논리로 피해 본 검사들, 총장 지지하고 장관엔 각 세워
    • 국정원장 밀어내는 장관·총장 동반퇴출 시나리오
    • “청와대가 검사들에게 직접 얘기해 괴롭다”(검찰 고위층)
    • 수사 성과 작아 코드·표적수사 논란 가열
    • ‘PD 수첩’ 수사 답보, 담당 부장검사의 ‘소신’ 탓
    • 환경운동연합 수사과정에 청와대 민정 개입
    • 검찰 고위인사 “위에서 NGO를 치라는데, 내키지 않는다”
    • 임채진 총장과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 1기 동기
    • 임 총장 10월 중순 최 대표에게 전화, “혐의 있다니 준비하시라”
    • 수사팀 능력 부족이냐, 수사환경 악화 탓이냐
    • 수사라인 핵심간부, “실세니 거물이니 언론이 만든 말”
    ‘이명박 검찰’
    이른바 ‘TK(대구·경북) 검찰’로 불리는 ‘이명박 검찰’이 출범한 지 1년이 돼간다. 정권 초기에 걸맞게 검찰은 그간 많은 수사를 벌였다. 주된 수사대상은 한국석유공사, 한국석탄공사, 한국전력, 강원랜드, GKL(그랜드코리아레저, 관광공사 자회사) 등 공기업 비리. 더불어 신성해운, 프라임, 나우콤, KT·KTF, 부산자원, 케너텍 등의 민간 기업체에 대해서도 칼을 뽑아 들었다. ‘야당 탄압’이라는 시비 속에 정치권 인사들의 선거 관련 비리에 대한 수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조금 다른 성격이긴 하지만 KBS, MBC 등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교직원공제회, 환경운동연합 등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처럼 전방위로 뻗친 사정수사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코드수사니 표적수사니 과잉수사니 말이 많았다. 성과가 미흡한 것을 두고 “애초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검찰은 공개적으로는 이 같은 비판을 일축하면서도 내심 당혹해 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언론 등 검찰 밖이야 그렇다 치고 내부에서조차 이에 동조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건 내 인사가 아니다”

    검찰 쪽으로 안테나를 세우면 먼저 들리는 게 총장을 ‘동정’하는 목소리다. 전(前) 정부 말기에 임명됐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임채진 검찰총장은 새 정부 출범 직전 삼성비자금 사태에 휘말려 도덕적 상처까지 입었다.

    정권 출범 이후 검찰 주변에서는 임 총장이 김경한 법무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TK 검찰’에 포위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 장관은 사법연수원 1기, 임 총장은 9기로, 사법시험 8년 선배다. 검찰처럼 위계질서가 엄정한 조직에서 8년 선후배 간이면 어른 아이 관계나 다름없다.



    검찰 고위간부가 사석에서 한 얘기다.

    “우리 총장님 참 안됐다. 그놈의 삼성 떡값 때문에 마음고생하더니 그거 넘기고 나자 무서운 장관이 나타나 통 힘을 못 쓴다. 한마디로 소신을 못 펴고 있다. 장관이 법무무 검찰과장 할 때 총장은 그 밑에 평검사였다. 기수 차이가 워낙 크니 장관 눈에는 총장이 수석검사쯤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인사권은 장관이, 수사권은 총장이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각자의 권한을 조금씩 양보해 절충해왔다. 특히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주요 수사부서 인사는 총장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새 정권 출범 직후의 검찰 인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검찰 내부의 중론이다. 총장의 뜻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중견간부의 전언(傳言)으로는, 임 총장은 사석에서 “이건 내 인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알려졌다시피 검찰의 주요 보직, 특히 사정라인은 TK 일색이다. 검찰 서열 2위인 권재진(경북고, 연수원 10기) 대검 차장을 비롯해 사정수사의 사령탑인 박용석(경북고, 13기) 대검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의 특수1~3부 수사를 지휘하는 김수남(대구 청구고, 16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 주요 수사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최재경(대구고, 17기) 대검 수사기획관, 박정식(경북고, 20기) 대검 중수2과장, 김광준(대구 영신고, 20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이 주축을 이룬다.

    지난 3월, 검찰 간부 11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출신고로 따지면 경북고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8부와 조사부를 지휘하는 최교일(15기) 중앙지검 1차장도 그중 한 명이다.

    출신만 놓고 조직이나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뻔한 얘기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검찰 수사라인을 장악한 TK 검사들 중에는 김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표현한 것처럼 ‘에이스’로 꼽힐 만한 검사가 없는 게 아니다. 출신 지역과 능력은 분명 별개 문제다.

    ‘잃어버린 15년’

    그럼에도 연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 사회에서 출신은 어떤 조직의 속성이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잣대다. 특히 검찰처럼 힘 있는 기관일수록 그렇다. 검찰 고위관계자의 다음 얘기는 ‘TK 독식’에 대한 내부 반발기류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함을 짐작하게 한다.

    “검찰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TK들은 다 연결돼 있다. 예전엔 보이지 않게 했는데 요즘은 내놓고 한다. 김경한 장관은 과거 ‘TK 검찰’의 황태자였다. 법무무 근무만 10년 넘게 했다. 올봄 검찰 인사는 너무 심했다. TK 전성기이던 노태우 정권 초기의 인사를 보는 것 같았다. 당시 검찰 인사를 주무른 법무부 검찰 1과장이 지금의 장관 아니었나.”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TK 검사들의 인사배경이 저마다 다르다”며 “정치권 민원이 반영된 인사로 봐야 한다. 장관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그렇게 억지인사가 이뤄질 수 없다”고 평했다. TK 득세 현상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뿐 아니라 지방 대도시의 검찰청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TK 검사들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래 검찰 인사가 잘못돼왔다며 ‘잃어버린 15년’이라고 표현한다”고 꼬집었다.

    현 정부 들어와 TK 이외 지역 출신 검사들의 소외감이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중견간부는 “지역논리로 인사에서 피해를 본 검사들은 총장한테는 우호적이고 장관과는 각을 세우고 있다”고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임 총장이 검사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는 없지만 장관에게 눌린다는 이유로 심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총장이 힘든 이유는 주변에 자기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의 관전평이다.

    “총장이 힘든 건 사실이다. 야권은 표적수사라고 비난하고 여권은 사정수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공격한다. 장관은 좀더 강력한 수사를 촉구한다. 내부에서도 흔드는 분위기다. 총장 자신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검찰 일부에서는 지휘부가 정권에 유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우면 지휘권 확립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권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대로 총장이 청와대와 특별한 유대관계가 없으면 유착 의혹이라든지 코드수사 따위의 정치적 공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지휘권이 흔들린다. 이것이 검찰 지휘부의 딜레마다.

    현재 일부 검사들이 총장을 안 보고 한나라당과 청와대를 쳐다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장관의 힘이 너무 센 것도 원인이다. 검찰 관계자는 “장관이 일선 검찰 간부들에게 직접 전화해 수사 상황을 챙긴다면 총장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정상명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부산고 동문회에서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을 밀었다. 하지만 정 총장은 “안영욱이 임명되면 정권 교체 후 100% 바뀌게 된다”면서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안씨가 청와대 측과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국정원장 밀어내고 차장을 총장으로’

    검찰 안팎에서는 총장이 연말에 바뀐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더욱 공고한 ‘TK체제’ 구축을 위해서라는 것. 그럴듯한 시나리오까지 있다.

    장관이 TK이기 때문에 TK를 총장에 앉히는 건 정권에 부담이 된다. 따라서 TK를 총장에 임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김경한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김 장관이 누구인가. 청와대의 신임을 받는 ‘TK 검찰’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닌가.

    시나리오에 따르면 김성호 국정원장을 빼고 그 자리에 김 장관을 앉힌다. 법무부 장관으로는 호남 출신을 임명해 지역 간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총장에는 TK인 권재진 대검 차장을 올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검찰 일각에서 나도는 ‘임 총장 퇴출 시나리오’의 골격이다.

    한 검찰 간부는 “만약 현 총장을 강제로 밀어내면 평검사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권 초기 법무부와의 관계가 잘못 설정되면 검찰 조직이 망가진다. 그런 면에서 총장이 잘하고 있다. 아마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것이다. 현 총장의 유일한 임무는 임기 2년을 지키는 것이다. 정권 교체기에 임명된 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장관과 총장의 동반 퇴진 시나리오에 대해 알고 있다는 또 다른 간부는 그 실현 가능성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기제 총장을 바꾸려면 법을 위반해야 한다. 별로 인기가 없는 현 정권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분도 없지 않은가. 만약 소문의 진원지가 청와대라면, 진짜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이런 얘기를 흘림으로써 검찰을 정권 입맛대로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정권 입맛에 맞게 벌이는 수사는 코드수사다. 코드수사는 표적수사나 보복수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검찰의 숙명이다. 특히 정권 초기의 검찰은 늘 그런 논란에 휩싸여왔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 역시 코드수사나 표적수사를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몹시 기분 나빠하지만,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심한 것 아니냐는 냉소적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검찰 내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중견간부의 지적이다.

    “현 정부 들어와 검찰의 공안기능이 회복되는 등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수사는 더 나아졌다. 하지만 수사의 독립성보다는 정부 시책에 부합하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데 주력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수사방향이 청와대와 법무부의 방침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공을 들였다는 공기업 수사부터 순수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사 명분이 있거나 실적이 좋으면 코드수사나 표적수사 의혹이 잠재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가 주도한 공기업 수사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저인망식 압수수색으로 과잉수사라는 비난을 초래했다.

    곁가지 수사로 체면 유지

    우선 수사 명분이 여론의 공감을 얻기에 약했다. 정상적인 사정수사라기보다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기업 임원들을 퇴진시키거나 전 정권 실세들을 손보려는 청와대의 의중이 실린 표적수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성과도 미미했다. 강원랜드를 비롯한 여러 공기업에 칼을 들이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본질은 파헤치지 못한 채 곁가지 수사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강원랜드 비자금 사건의 경우 이광재 의원을 비롯한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실제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 하도급 업체 등에 대한 수사로 임직원 몇 명의 개인비리를 파헤치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되고 있다. 검찰은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곁가지로 발견한 케너텍 비자금 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비자금 수사도 성과가 미흡하긴 마찬가지. 배임 혐의로 몇몇 전·현직 간부를 구속하는 데 그쳤다. 강원랜드와 마찬가지로 곁가지 수사가 더 활발하다. 최규선·전대월씨가 관련된 수백억원대의 해외자원개발사업 비리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 김상현 전 민주당 의원과 정웅교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최씨한테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그밖에 석탄공사 특혜대출 의혹사건과 관광공사 자회사인 GKL 카지노 비리사건 등도 의혹만 남긴 채 개인비리를 들추는 선에서 끝났다.

    ‘이명박 검찰’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강원랜드.

    법원의 잇따른 무죄선고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법원은 시추비용을 과다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석유공사 전직 간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입찰 정보를 빼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GKL 간부 김모씨는 무죄를 선고 받은 후 “검찰이 박정삼 전 GKL 사장을 어떻게든 엮으려고 나를 혹독하게 조사했다. 아니라고 해도 도무지 내 진술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검찰을 맹비난했다. 박정삼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2차장을 지냈다.

    사기업체 수사도 표적수사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프라임, 애경, 강원랜드 등에 대해 전 정권과 가까운 기업이라서 수사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고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애경백화점 비자금 수사는 ‘386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검찰이 벌이는 수사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KTF 납품비리 수사도 처음부터 조영주 전 사장과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의 친분관계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역시 이 전 수석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진 김평수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의 비리의혹 수사도 표적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을 “대표적인 표적·편파수사”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김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했다.

    김씨의 비리혐의는 폐기물 처리업체인 부산자원의 특혜대출 의혹 수사과정에서 포착된 것이다. 김씨가 실버타운에 부실 투자하는 과정에 이 전 수석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골프장 운영권 관련 비리까지 캐고 있다. 그밖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도 농협의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PD수첩’ 오보, 사법처리 대상 아니다”

    검찰 내에서는 정연주 KBS 전 사장과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도 코드수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씨 수사의 경우 언론사 사장의 ‘경영실적 부진’이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탈세나 횡령 따위의 개인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감사원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정씨를 배임혐의로 기소했다. 자신의 연임을 목적으로 국세청과의 세금환급소송을 중도 포기해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다. 문제는 KBS의 소송 중단이 법원의 조정 권고안을 받아들인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오세빈 서울고등법원장은 10월9일 국정감사장에서 정씨에 대한 기소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부채질했다.

    한편 광우병 보도와 관련된 ‘PD수첩’ 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표면적인 이유는 PD들이 검찰 소환에 불응해 MBC 사옥에서 숙박하고 있어 강제 구인에 나설 경우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는 것.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L부장검사의 ‘소신’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간부도 이를 확인해줬다. 이 간부는 자신도 같은 의견이라며 “L부장이 ‘혐의가 없는 사람들을 기소할 수는 없다’고 버티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L부장은 ‘PD수첩’이 오보를 내긴 했지만, 사법처리 대상은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특수통인 한 중견간부는 “부장검사로서 ‘죄가 안 된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PD들을 조사해본 다음에 결론을 내리는 게 맞다고 본다”고 견해를 달리했다.

    인터넷서비스업체인 나우콤의 문용식 대표를 구속한 것도 과잉·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렸다. 네티즌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한 보복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나우콤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는 촛불시위를 생중계해 네티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다.

    문 대표의 혐의는 저작권 침해 방조. 법조계에서는 벌금형으로 끝낼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구속카드를 꺼낸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깃든 과잉수사라는 시각이 있다. 물론 검찰은 이를 단호히 부인한다. 촛불시위 이전에 시작한 수사이고, 저작권 침해가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사팀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촛불시위보다 앞선 게 사실”이라면서 “모든 죄는 ‘걸린 죄’가 아니겠나”라며 “표적수사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민정이 검찰로 넘겼다”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환경련)을 둘러싼 표적수사 시비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지난 9월 검찰이 환경련의 정부보조금 유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일부 언론은 표적수사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대운하 반대 운동과 광우병 촛불집회에 적극 나섰던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법원이 환경련 공금을 개인계좌에 넣어 임의로 사용한 환경련 전·현직 간부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과잉수사 주장은 한층 힘을 얻는 듯싶었다. 하지만 10월 하순 기획운영국 부장인 K씨가 3억원대의 공금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사기)로 구속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환경련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우호적인 시민단체와 언론의 시선도 싸늘해졌다.

    환경련 수사의 계기는 언론보도였다. 지난 2월 조선일보가 환경련의 불투명한 회계관행 문제를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환경련의 두 간부가 공금을 개인계좌에 넣어둔 것이 내부 감사에서 적발됐다는 것이 기사 요지.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한 매체는 ‘주간동아’였다. 지난 7월 주간동아는 환경련 간부들의 공금 횡령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하면서 관련자들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어 또 다른 언론매체가 주간동아 보도를 인용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검찰도 주간동아 기사내용을 수사의 단서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쟁점은 검찰의 환경련 수사가 청와대의 주문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보고서를 검찰에 넘겨준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다. 검찰 관계자도 “청와대 민정의 첩보로 (수사가) 시작된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검찰 사정라인의 핵심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청와대와는 관계없이 검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시작한 수사라는 것. 그에 따르면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언론보도 내용을 토대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고, 그것이 수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나도 죽겠다. 위에서 자꾸 흔든다. NGO를 치라고 하는데, 내키지 않는다. (청와대) 민정에서 (검찰) 지휘부를 거치지 않고 검사들에게 직접 얘기해 괴롭다. 일부 검사들이 거물을 잡으면 자신이 거물이 되는 것처럼 생각해 오버하는 면이 있다.”

    검찰에서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지난 9월 하순 사적인 모임에서 모 대학총장에게 털어놓았다는 얘기다. 환경재단 최열 대표가 횡령 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환경련 수사는 최열 대표의 비리의혹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표적수사 시비를 낳았다. 최열 대표가 환경련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거액의 환경련 공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9월 하순 언론이 최 대표의 혐의를 일제히 보도하자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은 ‘흠집내기 수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최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호소했다.

    최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속도는 느렸다. 수사팀 주변에서는 “들여다봐야 할 계좌가 많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검찰 지휘부가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숨고르기를 한다는 지적도 그럴듯했다.

    최 대표 소환이 늦어지자 환경재단 측에서는 “검찰이 잘못 짚었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재단 측에 따르면 검찰이 최 대표 명의로 개설된 환경련의 여러 계좌 사이에 오간 돈의 흐름만 보고 횡령을 의심하는데, 이는 최 대표 개인의 돈과 환경련 공금을 혼동한 탓이라는 것이다.

    11월13일 검찰이 최 대표를 소환하면서 새로 밝힌 혐의는 환경 관련 지원금을 구(舊)여권 정치인들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제공했다는 것.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정치인 후원금은 개인 돈”이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또 환경련 계좌에서 자신의 개인계좌로 입금된 7000만원을 검찰이 주목하는 것에 대해 “환경련에 빌려준 사재 3억원 중 돌려받은 돈의 일부”라고 일축했다. 환경재단 측은 “검찰이 갑자기 정치인 후원금을 문제 삼는 것은 공금 유용 혐의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면서 최 대표의 무죄를 더욱 확신하는 분위기다. 쟁점은 과연 3억원이 최 대표의 대여금이냐는 것. 검찰은 환경련 공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최 대표 측은 대여금임을 입증할 증빙서류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임채진 총장과 최열 대표의 친분관계다. 임 총장은 환경재단이 주관하는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 1기 수강생이다. 올해 개설된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의 교육기간은 10주이고 수강료는 700만원.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강의를 듣고 참석자끼리 토론을 벌인다.

    1기 과정은 지난 5월 개설돼 8월에 끝났다. 수강생은 84명. 9월에 시작된 2기 과정에 등록한 수강생은 64명이다. 수강생 면면을 보면 각계 저명인사가 총집합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관계, 법조계, 교육계, 재계, 언론계의 거물급 인사가 수두룩하다. 수강생들의 평균 강의 출석률은 50%대. 임 총장은 세 차례쯤 참석했다고 한다. 임 총장과 최 대표는 모 CEO 과정의 1기 동기생이기도 하다. 임 총장은 이 모임의 회원들을 검찰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모든 수사는 표적수사”

    10월13일 임 총장과 최 대표는 수사 문제로 통화했다. 임 총장이 직접 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시간은 약 3분. 최 대표는 검찰 수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조목조목 해명했다. 임 총장은 최 대표에게 “혐의가 있다고 하니 준비를 잘 하시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적수사 시비는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검찰의 중견간부는 “청와대 관련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표적수사를 한다는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련 수사란 이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의 비자금 조성과 한국타이어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말한다. 이 대통령의 셋째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조카다.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는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여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조 부사장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위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핵심 관련자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모 기관 관계자는 “수사를 일찍 끝내면 부실수사나 봐주기 수사라고 욕먹을 테니,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추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늑장수사 의혹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정권 초기라 (대통령 주변 수사를) 주저하는 면도 있지만, 사건 자체가 약한 탓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제보 내용이 약하다. 효성과 마찬가지로 한국타이어의 혐의도 대단한 게 아니라고 들었다. 효성의 경우 오히려 분식(粉飾) 사실을 자진 신고한 내용이 더 문제가 된다고 한다. 효성이 대통령 사돈기업이라서 안 친다는 것도 맞는 얘기는 아니다. 진짜 사돈 기업인 한국타이어와 효성이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코드수사나 표적수사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재경지청의 고위간부는 “모든 수사는 표적수사”라며 “권력이 있다 없어지면 당연히 수사대상이 된다”며 논란이 이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표적수사라면 애초 겨냥했던 거물들이 걸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표적수사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거들었다. 대검 수사라인의 핵심 관계자는 “실세니 거물이니 하는 것은 다 언론에서 지어낸 말”이라며 “우리는 누구를 목표 삼아 수사한 적이 없다. 이광재 의원만 해도 (강원랜드와) 관계없다고 내가 기자들에게 10여 차례 공언했다”고 표적수사설을 반박했다.

    수도권 검찰청의 중견 간부는 코드수사 의혹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끈 떨어지면 비리가 나온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 정부의 비리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공기업 수사는 신정부의 입김이 개입됐다고 볼 수 있다. 전 정부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비리의혹이 있는 만큼 수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수사력이 문제지만.”

    ‘수사력 저하’는 ‘표적수사’ 못지않게 검찰에 아픈 말이다. 주로 검찰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는 검사들에게서 나오는 얘기지만 일리가 없지 않다.

    15년 전인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은 군 인사비리, 무기도입 비리 등 군 관련 수사와 슬롯머신 수사를 벌였다. 군 관련 수사 결과 전·현직 군 고위관계자가 인사청탁 혹은 무기도입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슬롯머신 수사의 경우 박철언이라는 전 정권의 핵심 실세를 낚으면서 코드수사 혹은 표적수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검찰에 우호적이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사정수사였고 성과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년 후인 김대중 정권 초기, 검찰은 대선과정에서 발생한 북풍·총풍 사건을 수사해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청와대 행정관 등을 구속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론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또 IMF 구제금융 사태와 관련된 부실기업의 비리를 수사하고 환란(換亂)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정부 관료들을 기소했다. 정책실패를 법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검찰이 전 정권에 대해 보복수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권 실세이던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를 경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한 것도 그런 인식에 한몫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03년 봄 검찰은 오히려 여권에 대해 더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철저하게 파헤쳐 정권창출 공신인 염동연씨와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용근 금융감독원장을 구속하고 김홍일 의원과 안희정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안씨에 대해서는 법원의 제동에도 세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해 청와대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엔 노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인 문병욱 썬앤문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고, 문 회장의 청탁을 받고 세금을 깎아준 손영래 전 국세청장을 구속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정권 실세인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노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여택수 청와대 행정관, 정치적 후견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등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 대선 당시 노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신계륜 의원을 대부업체 굿머니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의원 배지를 떨어뜨렸다. 이후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로 여권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임기 1년이 안 지난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현 검찰의 주류 세력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군 납품 비리로 구속된 유한열 전 한나라당 고문과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인 김옥희씨를 사례로 들며 “우리도 여권 수사를 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인지수사가 아니라 언론보도로 문제가 된 후 봉합 차원에서 이뤄진 수사라는 점에서, 그리고 정권 실세와 관련된 수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효성과 한국타이어 관련 수사도 청렴위와 금감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탓에 ‘마지못해’ 진행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여권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특수통으로 날렸던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사들의 수사력이 옛날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수사 여건이 나빠졌다는 건 핑계다. 예전엔 내사를 오래했다. 확실한 감을 잡은 후에 비로소 수사에 들어갔다. 그래서 수사를 하면 뭐가 문제인지 곧바로 알아냈다. 그런데 요즘 검찰 수사는 일단 쑤셔놓고 본다. 그러니 수사를 한참 해봐야 뭐가 문제인 줄 안다. 아니면 말고 식이고.”

    검찰 고위간부도 “수사원칙도 방식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려는 검사들에게는 수사를 시키면 안 된다”며 “특수수사는 150% 승산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치밀한 내사를 강조했다.

    “5·6공 시절로 되돌아간 검찰”

    수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대검 간부는 “우리에게 아픈 말”이라며 “성과가 크지 않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고 어느 정도 시인했다. 하지만 “수사환경이 악화된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 요직에 있었던 중견간부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수사 환경 악화 60%, 수사력 저하 40%다. 법원이 일정한 기준 없이 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영장이 기각되면 수사에 급제동이 걸린다. 뇌물사건은 자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구속이 안 되면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들도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에 대해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수사 환경보다는 검사의 자질이 더 큰 문제”라고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다.

    “특수수사는 계좌추적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수사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여느냐에 달려 있다. 수사환경은 과거보다 더 좋아진 면이 있다. 공인회계사들로 구성된 회계분석팀, 계좌추적팀, 디지털 포렌식(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DNA·지문·혈흔 등을 찾는 것) 수사팀 등 전문수사 인력이 보강됐다. 소총만 갖고 싸우다 첨단무기를 갖춘 셈이다. 검사는 사람만 조사하면 된다. 변호사 입회도 수사를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예전에도 큰 사건을 수사할 때는 변호사가 다 붙었다.”

    수사성과가 약한 것에 대해선 “검찰이 우리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진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예전 잣대로만 밀어붙이니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검찰 고위간부는 수사 성과 문제에 대해 “좀 더 지켜봐달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검찰 수사는 조금씩 실적을 내고 있다. 프라임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라는 ‘대어’를 낚고, 강원랜드 간부한테 인사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강경호 코레일 사장을 구속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 사장은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외곽조직인 서울경제포럼 공동대표를 지냈다.

    검찰 수사라인의 핵심간부는 “검사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균형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주문했다.

    기자는 검찰 내부에서 비교적 평판이 좋고 실력을 인정받는 이 간부의 진정성을 믿는다. 하지만 ‘TK 검찰’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정권의 기반인 특정지역 출신을 우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편향된 인사구도 속에서는, 그리고 전 정부의 검찰과 대조적이리만큼 여권과 가깝다는 인상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검사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그에 걸맞은 결실을 보지 못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현 시점에서 검찰 핵심 인사들과 정권 실세들은 다음의 ‘원칙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검찰 수사는 상하 검사들의 의견이 조화를 이루면서 합리적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그러자면 평검사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 검찰의 수사독립성이 검사 개개인의 독립성을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 때는 더러 홍위병 같은 행태가 있었다. 현 정부 들어와 검찰 분위기는 5·6공 시절로 되돌아간 양상이다. 상부의 의견이 지나치게 강해져 청와대 등 권부의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커졌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피하면서 국익을 명분 삼아 정의를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검찰 중견간부)

    기업체 표적 수사 논란

    “현 정권이 미는 인사 이사장 탈락으로 괘씸죄”


    남중수 KT 사장과 조영주 KTF 사장 등 KT그룹 최고경영진의 구속으로 드러난 비리는 충격적이다. 통신업계 일부에선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부분이 터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2년 민영화 이후 내부 출신 인사들이 연이어 KT그룹 최고경영진을 맡아온 게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두 사람에 대한 회사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조영주 전 사장에 대해선 추악한 얼굴이 이제야 드러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명박 검찰’의 사정수사가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는 KTF 임직원이 있을 정도다. 그는 중계기 납품업체 BCNe글로발 실소유주 전모씨로부터 24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9월22일 구속됐다.

    KTF 일부 임직원은 조 전 사장과 전씨의 유착 관계를 벌써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KTF 한 임원은 “그동안 회사 내부에선 ‘BCNe글로발 실소유주 전씨를 찾아가 인사 청탁을 하면 100% 성공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남중수 전 KT 사장에 대해서는 조 전 사장과는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KT 임직원들은 남 사장이 인사청탁이나 납품비리 등 구시대적인 관행으로 구속된 데 곤혹스러워한다. 그러나 남 사장이 개인적인 축재를 위해 돈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하고 있다. 남 전 사장은 부하직원과 납품업체로부터 3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11월5일 구속됐다.

    KT 일각에선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정치 수사’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마디로 남 사장이 ‘괘씸죄’에 걸려 사정 대상이 됐다는 주장이다. 그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남 전 사장이 잔여임기를 3개월 앞둔 지난해 12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연임,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 J전무를 내보내라는 현 정권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것.

    물론 남 전 사장 처지에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총 시기를 앞당긴 것은 사장 선임이 정치논리에 휩싸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 또 J전무 해임을 거부한 것은 본인 의사에 반해서 사표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는 것. J전무는 KT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IP-TV 사업을 맡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판단한 탓이다. 이 문제는 J전무를 미국에 연수 보내고 이명박 대통령비서관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일부 공기업 수사에서도 ‘표적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교 부산상고 선배인 황두열씨가 사장으로 재임했던 한국석유공사 비리 수사. 당시 이 회사 안팎에서는 “검찰이 임직원을 불러 황두열 전 사장에게 돈 갖다준 사실을 불라고 압박한다” “김모 전 해외개발본부장이 구속된 것도 그가 황 전 사장의 측근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1심 판결에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가 10월16일 김 전 본부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 검찰은 김 전 본부장이 면밀한 검수 절차나 증빙 자료 없이 유전 시추 비용을 과다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구속기소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역시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렀다. 금융감독원이 KRX 감사 결과를 검찰에 보내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KRX가 1년9개월에 걸쳐 10억5000만원에 달하는 골프 접대비를 지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은 3개월여 동안 KRX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검찰은 결국 2건의 비위 사실을 KRX에 통보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KRX 관계자는 “평소 같으면 금감원도 감사 결과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하는 선에서 끝났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갑자기 태도를 바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현 정권이 미는 사람이 KRX 이사장 공모에서 탈락한 게 괘씸죄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환 KRX 이사장은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후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KRX 관계자는 “공개석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정환 이사장에게 ‘그동안 별일 없었냐’고 안부를 물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괘씸죄가 풀렸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이정환 이사장은 한때 테니스를 함께 치는 사이였다고 한다.

    윤영호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최재경 대검 수사기획관 인터뷰

    “대통령 사돈기업 수사, 신속히 진행하겠다”


    ‘이명박 검찰’
    최재경 대검 수사기획관은 현재 검찰이 벌이는 사정수사의 조율사다.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기획, 점검하고 총장에게 보고하는 한편 언론을 상대로 수사 진행상황을 설명한다. 11월10일 오후 대검 수사기획관실에서 그를 만났다.

    ▼ 수사는 많이 하는데, 성과가 미흡하다.

    “우리도 갑갑하다. 성과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뇌물수수나 횡령을 쫓다가) 배임으로 귀결되면 수사 실패를 뜻한다. 수백억원의 주식을 한두 달 만에 들어먹었다면 그만한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돈을 먹었거나 자리보전을 약속받았거나. 아니면 청와대 압력을 받았다든가. 그런 게 규명돼야 수사가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그는 수사 환경 악화를 수사 성과 부진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예전엔 48시간 동안 조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밤 12시가 되면 무조건 조사를 끝내야 한다. 대화시간이 잘리고 피의자를 설득할 시간이 모자란다. 변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석하는 것도 수사 흐름을 방해한다. 올해부터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과정에도 입회한다. 피의자가 누구한테 돈 줬다는 얘기를 하려고 하면 옆에서 변호사가 만류한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과 구속영장을 쉽게 내주지 않는 것도 수사진행을 더디게 한다. 영장 발부에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 예전보다 수사 환경이 좋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자금추적전담반, 회계분석팀, 포렌식 센터 등이 수사에 큰 도움을 주는 건 맞다. 그런데 특수수사의 80%는 누구한테 돈을 줬느냐를 밝히는 것이다. 자백이 없으면 어떠한 과학수사도 연결되지 않는다. 기업의 배임이나 탈세 적발 능력은 선배 검사들보다 낫다. 그런데 누구한테 돈 줬다는 것을 자백받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금액과 사람 이름이 적힌 수첩을 들이밀고 통화내역을 제시해도 잡아뗀다. 그걸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한국 법정에서는 자백이 없으면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당사자가 부인하면 유죄는커녕 기소조차 못한다. 총장께서 검찰 창설 60주년 행사 기념식에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도입을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 공기업 수사는 청와대 의중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

    “청와대와 조율한 수사가 아니다. 정부 출범 후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수사를 기획했는데, 그게 바로 공기업 수사였다. 왜 사장 하나 못 잡느냐고 비판하면 가슴이 아프다. 수사 검사들에게 ‘더 분발하자’고 말했다.”

    ▼ 표적수사 시비가 인다.

    “자꾸 정치적 편향성을 얘기하는데, 우리로서는 황당하다. 수사하다 보면 범죄가 드러나는 것이다. 총장께서도 ‘나오는 대로 수사하라’고 강조한다. 기업체들이 전 정권에서 한나라당 쪽에 돈을 줬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 아닌가. 수사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승복한다. 하지만 정치적 형평성을 문제 삼는 것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비판이다.”

    ▼ 치밀한 내사 없이 무조건 일을 벌이고 본다는 비판도 있다.

    “예전엔 상당 기간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내사를 할 수 있었다. 감청과 통화내역조회를 지금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은 보안유지가 안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을 하면 곧바로 알려진다.”

    ▼ 총장은 현재의 수사방향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들었다.

    “총장 의지가 없으면 어떠한 수사도 못한다. 대검 수사기획관이 모든 수사를 조율하고 있다. 그것은 곧 총장 중심으로 조직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 효성 수사는 왜 안 하는가.

    “청렴위 고발사건인데, 국정감사 이후 신속히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사는 수사 따라 간다. 피의자 신분 때문에 수사가 늘어지는 건 아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여권의 대선자금을 파헤칠 용의는 없나.

    “처음 듣는 질문이다. 범죄단서가 있다면 수사하는 게 우리의 직무다.”

    ▼ 국민 눈에는 정권과 검찰이 깊이 교감하는 것처럼 비친다.

    “우리도 그 점을 의식하고 있다. 성역이 한두 군데냐. 야당 최고위원이라고 아예 소환에 응하지도 않는다. 검찰 구성원들이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빛은 안 나지만 균형감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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