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수렁에 빠진 욕망의 전차

  • 황숙혜 머니투데이 재테크부 기자

    입력2008-12-08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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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번 위기와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주기적인 위기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의 위기는 장기 슈퍼 버블의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촉발된 이번 위기는 슈퍼 버블의 청산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가 통째로 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수렁에 빠진 욕망의 전차

    <b>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b><br>조지 소로스 지음 황숙혜 옮김 위즈덤하우스

    어느 날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CDO(부채담보부증권)이라는 낯선 용어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상륙하더니, 주식시장과 실물경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물가가 오르면서 성장은 둔화되는 이른바 ‘S(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최대 화두였다. 하지만 곧 일부 경제학자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미국이 ‘R(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고백이 이어졌고, 이제 국내외 경제가 ‘D(디플레이션)’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투자가들은 세계 경기가 ‘L’자 형의 침체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D’는 불가피한 수순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의 쟁쟁한 공룡 IB(투자은행)들이 힘없이 나가떨어지더니 실물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고,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 아래로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산시장과 실물경기를 한꺼번에 망가뜨린 원흉은 대체 무엇일까. 지구촌 경제는 과연 어디를 향해 내달리는 것인가.

    현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구하기를 원한다면 소로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소로스는 이 책에서 위기의 핵을 직접적으로 공략했다. 독자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지만, 직설적인 화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향방을 전망했다.

    소로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경제 논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투자 세계에서 나타나는 인간 심리와 시장 생리를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조명했다. 주식은 물론 부동산과 원자재, 심지어 미술품과 와인에 이르기까지 자산이라는 이름이 붙기만 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가격을 끌어올린 거품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아울러 그 붕괴는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도 밝히고 있다.



    소로스의 책은 경제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핵심 논제는 경제 문제지만 접근 방식이 다각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를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고민하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를 진중하게 고찰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유익할 것이라 확신한다.

    ▼ Abstract

    오늘의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이어진 버블이 붕괴되면서 나타났다. 즉 이번 위기는 경기 사이클의 하강 국면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품은 두 가지 요소를 수반한다. 하나는 현실을 근거로 한 추세이며 다른 하나는 그 추세에 대한 오해 또는 오역이다. 오해는 지배적인 추세를 강화하며, 이를 통해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최대한 벌려놓는다. 그리고 오해가 비로소 오해로 인식되고 현실에 대한 각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추세는 뒤바뀐다. 추세는 거품이 형성될 때보다 붕괴될 때 짧고 가파른 흐름을 보인다.

    지난 60여 년 동안 거대한 거품이 만들어진 것은 시장이 항상 옳다는 인식과 재귀성(하나의 변화가 일어나면 그것이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조지 소로스의 이론)으로 인한 것이다. 시장은 항상 옳은 게 아니라 항상 틀린다. 시장은 경제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균형을 이루지 못하며, 경기 둔화를 정확하게 예측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둔화를 유발한다.

    하지만 투자자는 물론 정책 당국자까지 시장이 자기정화 작용으로 균형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빠져 감독에 소홀했다. 금융위기를 방조한 셈이 된 것이다. CDO나 대출담보부(CLO)증권과 같은 합성금융상품은 이런 잘못된 이론과 신념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에 오른 1980년대, 지배적인 경제사조로 자리 잡은 시장근본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슈퍼 버블을 일으킨 오해가 촉발된 것이다.

    수렁에 빠진 욕망의 전차

    세계 금융의 중심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전경. 월스트리트 발(發) 금융위기로 세계가 불황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 경제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 주택 가격은 2009년까지도 내림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금융회사들도 월가의 IB만큼 대규모 부실을 안고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세계 질서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 및 정치 질서에서 미국의 위상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도 흔들릴 공산이 크다.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과 산유국에서 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세계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통념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과 달러화, 유로화, 그리고 유럽의 주식 비중을 줄이고, 중국 위안화 및 신흥국의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할 때다.

    ▼ About the author

    조지 소로스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혹자는 소로스를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며 찬사를 보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철학이라는 탈을 쓴 희대의 사기꾼이라 비난한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양측 모두 그럴 만한 근거를 제시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그가 반세기 동안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으며 1969년부터 1989년까지 20년 동안 퀀텀펀드로 연평균 34%에 달하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린 투자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경제 문제를 관념적으로 풀어내는 ‘소로스적’인 특성은 그가 보낸 유년기의 시대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일각에서는 소로스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특성은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30년 헝가리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독일 나치의 대량 학살 때문에 어릴 때부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영국으로 탈출한 소로스는 기차역의 짐꾼, 여행 세일즈맨, 웨이터 등을 전전하며 외로운 이방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갖은 어려움을 이겨낸 뒤 런던경제대학(LSE)에 입학,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면서 재귀성 이론을 접하고 자신의 투자 철학을 정립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갖는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간 소로스는 한때 철학자를 꿈꿨으나 투자에 더 소질이 있다고 판단해 본격적으로 투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퀀텀펀드 등의 지주회사 격인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을 맡고 있다.

    ▼ Impact of the book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 속에 투자자들은 방향을 잃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후폭풍이 얼마나 강하게, 광범위하게 미칠 것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소로스의 눈을 통해 금융시장의 변화와 앞으로의 향방을 읽게 됐다. 그의 남다른 경제 철학에서 현 사태를 바라보는 통찰을 얻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은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과유불급의 처참한 결과로 치닫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세계경제가 무너진다는 그의 예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버블의 심화 과정에 언제나 자기강화 과정이 있었다고 설파하는 대목에서는 좀 더 차분하게 현 시점을 진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저자가 이번 위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데다가 과거 숱한 위기를 겪으며 깊은 내공을 쌓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부 초보 투자자나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독자는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다.

    ▼ Impression of the book

    서문에서 소로스는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일생일대의 작품이라고 적었다. 그만큼 이 책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소로스가 재귀성 이론을 발전시킨 것은 런던경제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나온 ‘금융의 연금술’이 이 이론을 저술한 첫 번째 책이었다.

    수십년 동안 소로스의 이론은 경제학계에서 냉대를 받았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회한 투자가는 미국 부동산시장에서 촉발된 위기가 이 이론의 정당성을 세상에 보여줄 기회라는 생각에 다시 펜을 들었다.

    경제를 경제가 아닌 철학으로 풀어낸 통찰에 놀라움을 표현하기에 앞서, 세상의 냉대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열정과 자신의 투자 전략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자신감에 찬사를 보낸다.

    소로스는 경제 문제를 철학적 관점으로 풀어내지만 이 책이 관념적이거나 피상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 사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투자자뿐 아니라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및 유럽, 그리고 그 파장에 휘둘리는 신흥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반드시 일독해야 할 책이다. 소로스의 이야기는 위기의 본질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귀성 이론에 관한 소로스의 이야기는 상당히 난해하다. 보다 넓은 독자층의 눈높이에 맞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Tips for further study

    수렁에 빠진 욕망의 전차
    소로스의 책이 국내에 출간될 무렵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이미 전세계로 퍼졌고, 이 주제를 다룬 책도 상당수 출간됐다.

    위기를 다룬 책을 통해 여러 경제학자의 다양한 통찰과 전망을 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미즈호종합연구소 지음, 김영근·현석원 옮김, 전략과문화)와 ‘그린스펀 버블’(윌리엄플렉켄스타인 외 지음, 김태훈 옮김, 한즈미디어), ‘세계 머니버블의 붕괴가 시작됐다’(마쓰후지타미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원앤원북스) 등이 이번 사태를 다뤘다.

    이밖에 소로스의 통찰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가 철학적 뼈대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민음사·사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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