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동양의 경영 고전

  • 김원중 건양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중문학

    입력2008-12-09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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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경영 고전

    <b>정관정요</b><br>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현암사

    정관정요’는 당나라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정치 철학을 담은 책이다. 군주의 도리와 인재 등용 등의 지침을 적어놓아 치세술(治世術)의 명저로 손꼽힌다. 시간적으로는 태종이 제위에 오른 627년부터 649년에 이르는 24년 동안으로 흔히 ‘정관(貞觀)의 치세’라고 말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정관정요’의 요체는 군주의 자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군주상은 대체로 이렇다. 천하가 안정된 후에도 창업 초기처럼 성실하고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배우지 않는 것은 담벼락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이들의 도가 모두 책 속에 있다.

    백성과 신하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여 기초를 공고히 해야 한다. 시장에서 지게 지는 사람에게는 지게 지는 요령이 있다. 그걸 알려면 지게꾼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기에 군주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끊임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그리고 나랏일을 처리할 때는 신하 각자의 능력에 따라 처리하도록 해야 하고 적재적소에 관리를 배치하며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아첨하는 신하를 피하는 올바른 성품을 지녀야 한다.

    과거 왕조시대 통치술의 전형을 제시한 ‘정관정요’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을 깨우쳐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뿐 아니라 리더십의 모범 답안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대개 조직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위기는 기본적으로 신뢰 관계가 무너졌을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오늘날에 전해주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열린 정치문화의 주요한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 Abstract

    ‘정관정요’는 당나라 태종이 다스리던 시대가 배경이다. 통치자와 백성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로서의 관리의 의무, 민의를 반영한 정치 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당 태종의 열린 통치 스타일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10권 40편으로 구성돼 있다. 태종이 당시 역사가이자 신하였던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왕규(王珪) 등과 담소를 나눈 내용을 책문(策問), 쟁간(爭諫), 의론(議論), 주소(奏疏)로 분류해 편찬했다. 각 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권에서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도리와 정치의 근본에 관해 논했다. 2권에서는 어진 관리의 임명과 간언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3권은 군주와 신하가 거울로 삼아야 할 계율 및 관리 선발 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4권은 태자와 여러 왕을 경계시키는 내용을 담았다. 5권에서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인(仁), 충(忠), 효(孝), 신(信) 및 공평함에 대해 문답했다. 6권에서는 절약과 사치, 겸양 등을 말했으며, 7권에서는 유학, 문학, 역사 등을 논했다. 8권은 백성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업, 형법, 부역, 세금 등을 논하고 있다. 9권에서는 정벌과 변방 안정책을 언급했고, 10권에서는 군주는 순행이나 사냥 등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대부분 문답 형식의 대화체 표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소문의 경우 경전의 어구를 종횡으로 인용하고 미사여구를 사용해 난해한 부분 또한 적지 않다.

    동양의 경영 고전

    <b>정관정요</b><br>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현암사

    ▼ About the author

    오긍은 하남(河南) 개봉(開封)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高宗) 총장(總章) 3년(670)에 태어나 당 현종(玄宗) 천보(天寶) 8년(749)에 죽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해 경학과 사학에 해박했던 그는 무주(武周) 때, 사관(史官)으로 들어와 국사(國史) 편찬에 참여했다. 그는 역사의 진실을 거리낌 없이 바르게 서술하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동호’(董狐)라는 예찬을 듣기도 했다.

    오긍은 당시 사마천 시대 이후 처음으로 역사를 포괄적으로 기술한 ‘사통’(史通)의 저자 유지기(劉知幾)와 필적할 만한 역사가였다. 그는 중종 때 우보궐(右補闕), 기거랑(起居郞), 수부낭중(水部郞中) 등을 지냈으며, 현종 때는 간의대부(諫議大夫) 겸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를 역임하고, 위위소경(衛尉小卿), 좌서자(左庶子)를 역임하는 등 30여 년간 관직 생활을 했다. 그는 ‘측천실록’(則天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20권, ‘중종실록’(中宗實錄) 20권의 편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 Impact of the book

    오긍은 통치자의 잘못된 행동이 백성은 물론 국가 사직에 막대한 재앙을 초래함을 통감해 이 책을 썼다. 오긍은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는 태종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중국인의 역사 서술 원칙인 춘추필법(春秋筆法)을 고수하면서 태종의 장단점까지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중종에게 바쳤는데, 중종에게 당나라 재건에 필요한 정치철학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했던 중종은 황후 위씨(韋氏) 일족에 의해 시해됐고, 오긍은 ‘정관정요’를 다시 현종에게 바쳤다. ‘정관정요’는 당나라 이후 여러 왕조에서 꾸준히 간행돼 읽혀졌다. 당나라 선종(宣宗)은 이 책의 내용을 병풍에 써서 널리 읽히도록 했으며, 금나라 세종(世宗)은 각본으로 펴내어 권장했다.

    그리고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이 책을 애독해 ‘독정관정요’(讀貞觀政要)라는 시와 ‘정관정요서’(貞觀政要序)라는 글을 지었고, 또 ‘당태종론’(唐太宗論)이라는 책을 썼다. 또한 에도막부 시대를 연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통치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 책을 참고했다. 분열 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룩한 태종을 본받기 위한 차원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엔 최고경영자의 애독서로 꼽히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정관정요에서 인사(人事)를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경영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동양 고전으로 꼽고 있다.

    ▼ Impression of the book

    이 책을 번역하면서 당 태종이 천하 평정 후, 수 양제의 실패를 거울 삼아 위징과 같은 현명한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여, 문치(文治)에 힘쓰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40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가슴이 절로 답답해진다. 열린 정치문화를 꽃피웠던 당나라 사람들에 비해 우리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 날만 새면 정쟁을 일삼는 현실 정치권 인사들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Tips for further study

    동양의 경영 고전
    강력한 법치를 주창하는 제왕학의 전범이자 법가류의 대표작인 ‘한비자’(韓非子,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현암사·사진)와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비(韓非)가 제시하는 관점은 분명 ‘정관정요’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한비는 이 책과 달리 법과 형벌에 의한 신상필벌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철저히 군주를 위한 제왕학의 기틀을 새로 짜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비자’는 읽기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비가 믿고 있듯이 인간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체계적인 계통이 세워지고, 또 그 계통에 따라 천하 만민에게 공명정대하게 시행되는 법치를 희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서 당 태종의 열린 정치학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자율보다는 타율을 강조하고 우매한 민중을 다스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법치를 내세운 한비. 그가 추구한 이상적인 정치란 제왕이 법과 원칙이라는 기본적인 통치기법에 의해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 책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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