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프레임</B><BR>최인철 지음 21세기북스
책은 객관적 근거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개 자기계발서는‘~하라’는 식의 주장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끝부분에서 짤막하게 저자의 주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책의 울림은 여느 책보다 훨씬 크다. 심리학적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자기반성과 깨달음을 거치게 된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심리학적 발견을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한 이 책은 대중서로도, 연구보고서로도 손색이 없다.
▼ Abstract
우리는 스스로 만들었거나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 산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객관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왜곡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저자는 우리가 어리석은 프레임에 매몰돼 있음을 설명한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차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미국 코넬대학의 길로비치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한 학생에게 수십년 전의 가수나 코미디언의 얼굴이 새겨진 민망한 티셔츠를 입힌 뒤 4~6명이 모인 실험실에 가 있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실험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그 학생이 입었던 티셔츠에 대해 물었다.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그들 중 절반이 그 그림을 인식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가 입은 티셔츠에 관심이 없었다.
저자는 이것을‘조명효과’라 부른다. 조명효과란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듯이 시야를 잃고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는 출근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이상한 헤어스타일, 붕 뜬 화장, 어색한 코디를 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회사로 향하는 날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계속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작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는데 스스로 불필요한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가 왜곡하는 과거의 기억
현재는 과거나 미래를 왜곡하기도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어른들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의가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절제와 책임을 아는 지금의 모습이 원래 자신의 모습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류가 많은 자서전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과거를 기술하는 것이다. 저자는 서재필의 자서전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서재필은 13,14세 때 최연소로 과거 장원급제를 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시문과 3등이었다. 최연소자는 맞지만 장원급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프레임은 과거를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왜곡하기도 하지만 현재와 반대의 모습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과장함으로써 초라한 현재를 감추려는 심리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 성적이 좋았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있다. 목표에 못 미치는 학교에 입학한 이 학생은 ‘왕년에는 내가 잘나갔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린다.
하지만 회상 과정에서 과거는 끊임없이 부풀려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공부 못했다는 사람은 없다.
▲‘이름’이 만들어낸 착각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 이른바 ‘이름 프레임’이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냐 ‘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쟁은 이겨야 하지만 점령은 철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이름 프레임’ 관련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잡지나 학습지의 1년 구독료를 하루치로 계산하면 푼돈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거금이 자잘한 푼돈으로 둔갑하는 ‘푼돈 프레임’이다. 존 구어빌 하버드대 교수의 실험은 이 논리를 뒷받침한다. 한 기업의 사원들에게 1년간 구호단체에 기부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한 집단에는 연간 기부액인 30만원을 제안했고, 다른 집단에는 일일 기부액인 850원을 제시했다. 분석 결과 연간 기부액을 제시한 집단은 30%가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일일 조건을 제시한 집단은 52%가 기부하기로 했다.
‘이름 프레임’은 다양한 마케팅의 밑거름이 되지만 소비자에게는 똑똑한 소비 지침이 된다. 이름 프레임의 사례를 직시하면 보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소비를 할 수 있다.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
저자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프레임의 실체를 설명한다. 그리고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실천 방법을 알려준다.
▼ About the author
저자 최인철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과 서양의 심리적 차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행복 등을 연구해왔다. ‘프레임’은 그간 심리학이 밝혀낸 유용한 지식을 대중화하기 위해 쓴 첫 작품이다.
서울대 사회과학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뒤 1998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3년에는 한국심리학회에서 주는 소장학자상을 수상했다. 조근조근 흥미 있게 내용을 풀어내는 글솜씨와 이야기 솜씨를 갖췄다. 2005년 동아일보는 저자의 강의를 서울대학교 3대 명강의 중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 Impact of the book
이 책은 2007년 6월 출간 이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자기계발서는 가벼운 메시지를 읽기 쉽게 전달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적이면서도 알찬 연구 결과를 담은 무게 있는 심리학서다.
일반 독자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간결하게 풀어냈다고 책을 호평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계에서도 기업이 강조하는 창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Impression of the book
저자는 서울대 최고 명강사답게 숨겨진 심리 프레임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인간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 프레임 역시 학습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뚜렷한 가치관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된다. 철학이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중심이 없으니 늘 주변에 휘둘린다. 불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프레임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문제를 알아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틀의 정체를 이해해야 그 자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틀을 세울 수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스스로 마음의 틀을 깨닫는 일이 지혜로운 삶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어쩌면 ‘프레임’은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개념일지 모른다. 깨달음을 주는 좋은 글의 내용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의 생각을 글로 마주하는 것은 감동이자 기쁨이다.
가슴을 꽉 채우는 글과 생각으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다만, 편견과 오류를 깨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7장에서 나오는 저자의 메시지 사이에는 다소 간극이 있다. 이 간극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더 자연스럽고 탄탄한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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