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민연대의 ‘선진’도 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민연대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 외곽조직이었다. 박영준 국무차장과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2007년 10월 전국 2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를 모아 선진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출범 1개월 만에 등록회원 수가 43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 단체 출신 인사가 정·관계 요직을 장악했다. 이른바 ‘개국공신’의 대우를 받은 것이다. 물론 어느 정권이든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는 인물이나 세력에게 일정한 지분이 돌아가는 것이 상례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만들고, 경륜 있는 인사들이 요직을 맡아 정책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탓할 게 아니다. 문제는 권력을 공익(公益)보다는 사익(私益)을 실현하는 도구로 악용하려는 데 있다. 지난해 2월 이 단체 간부 250여 명이 모인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소개하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끼리끼리 전리품(戰利品)을 배분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것이 ‘선진’인가.
선진국민연대의 산파역이었던 박씨는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들어갔다. 선진국민연대 출신 10여 명이 그와 함께 청와대로 입성했다. 이들은 곧 ‘권력 내 권력’을 형성했다고 한다. 2008년 6월, 친이계 소장파로 분류되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며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비서관 등을 겨냥했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 비서관이 ‘형님 권력’을 등에 업고 인사를 전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여파로 박 비서관은 청와대를 떠나야 했지만 이듬해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재기했다.
‘왕(王) 비서관’이 ‘왕 차장’으로 귀환한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혹이 불거지자 “처음 그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으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2년 전 박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의 권력사유화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권력 핵심부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아 ‘영포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박 차장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장제원 의원은 “정 의원이 야당의 의혹 부풀리기가 사실인 것을 전제로 자신의 선명성을 보이려 하고 누군가(박영준 차장)를 권력을 전횡하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친이(親李)- 친박(親朴) 갈등에 이어 친이계 내부까지 반목하는 상황으로 번지자 급기야 대통령이 양측에 내분이나 권력투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경고를 전달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와 정부 내 비선조직의 불법행위이자 측근의 부당한 인사개입인데 이를 권력투쟁으로 모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권력투쟁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정 의원의 말이 옳다고 본다. 영포회든 선진국민연대든, 혹은 그들이 결합되었든 국가의 공적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비선조직이 존재한다면 그것부터 발본색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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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차장은 지난해 포스코 회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말 KB금융지주 회장 인선파동 때도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일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인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사퇴)은 매달 시중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 등을 시내 호텔에서 만나 모종의 영향력를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거래소 이사장 교체에도 개입했다는 등 선진연대 및 영포회와 연관된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이 대통령은 산더미 같은 의혹부터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가호위의 호(虎)’를 향한 화살은 결국 대통령에게 향할 것이다.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 등으로 물타기해서 넘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