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강승영 옮김, ‘월든’, 이레, 184쪽
2 최초의 근대인, 로빈슨 크루소

영화 ‘로빈슨 크루소’의 한 장면
즉 인간 사회로부터 완벽히 고립된 한 개인의 고독을 극한까지 몰아붙임으로써 작가는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연료임을 증명했던 것이다. 고독이야말로 로빈슨을 키우고, 로빈슨을 강하게 만들고, 로빈슨을 한 사람의 성숙한 ‘개인’으로 완성시켜준 결정적 동력이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장 자크 루소는 ‘에밀’을 통해 한 소년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최고의 환경이 바로 ‘고독’임을 입증하려 하기도 했다. 루소는 인간이 타락하는 원인을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봤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한 순수한 자연 속에서 에밀이 영혼의 스파르타 훈련을 치러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작품 속의 로빈슨 크루소도 실제 모델이던 셀커크와는 달리 ‘고독’을 낭만적으로 이상화하지 않고, 고독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려 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기나긴 고독 끝에 식인종의 포로 프라이데이를 구출해 충실한 ‘하인’으로 만들고, 선상반란이 일어난 영국 함선의 선장을 구출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우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는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원주민 남성을 ‘식민지의 노예’처럼 착취하는 데 성공했으며, ‘식인종’보다 훨씬 우월한 자신, 선상반란을 일으킨 ‘선원들’보다 더욱 뛰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낸다. 그는 더는 철부지 선원이 아니었으며, ‘28년 동안 무인도에서 살아남았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성숙한 개인’이 된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마침내 이 섬 전체를 지배하는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는 단지 무인도에 고립된 고독한 개인의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라 한낱 평범한 뱃사람이 일약 한 부족의 왕이 되기까지 우여곡절 가득한 ‘성공신화’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내 섬에 사람이 늘어났고 스스로 보기에도 날 따르는 신민이 너무 많았다. 가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꽤 왕처럼 보인다는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섬 전체가 내 소유였으니 통치권은 당연히 내가 갖고 있었다. 두 번째, 온 국민은 내게 완전히 복종했다. 나는 절대적인 군주이자 법률을 세우는 이였다. 그들은 모두 내가 목숨을 구해준 사람들이었고 혹시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펭귄 클래식, 3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