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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④

빨치산과 토벌군의 지리산 대혈투

남북 모두에 버림받은 이현상, 최후를 맞다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빨치산과 토벌군의 지리산 대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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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의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게 내부 권력투쟁이다. 6·25전쟁 중 남한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은 이를 온몸으로 겪었다. 당장 자신들부터 구빨치와 신빨치로 나뉘어 소모적인 노선투쟁을 벌였고, 북한 정권이 평양의 남로당 지도부를 축출하면서 ‘조국’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받는 운명이 됐다. 그 와중에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2개 군단의 막강 전력이 대대적인 지리산 토벌에 나서자 총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을 ‘세 가지 각오’를 했다는 빨치산들도 궤멸할 수밖에 없었다.
빨치산과 토벌군의 지리산 대혈투

지리산 빨치산을 이끈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1951년7월 초.

신록이 우거진 덕유산 송치골에 빨치산 지도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남한에서 활동하는 6개 도당의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긴급 회동한 이유는 그동안 빨치산 투쟁을 하면서 쌓은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향후의 투쟁 방침을 확정하기 위해서다.

“중국도 휴전에 응할 용의가 있는 것 같소.”

속칭 남부군으로 불리는 빨치산 독립제4지대를 이끌고 있는 이현상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했고 급기야 1월4일에 다시 서울을 내주고 말았다. 평택과 원주를 잇는 선까지 후퇴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서 3월22일에 서울을 재탈환했지만 중국군의 춘계대공세로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이후로 유엔군과 공산진영 양측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전선은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고착됐다.



전선이 고착되고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휴전 논의가 오가기 시작했다. 양측 모두 힘으로 완승을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의 휴전 제의를 중국 당국이 수락하면서 양측은 7월10일 개성에서 예비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휴전은 한반도가 다시 남과 북으로 갈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남한에서 투쟁하고 있는 빨치산은 어떻게 되는 건가. 빨치산 지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휴전회담을 지켜보았다.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투쟁을 가일층 강화해야 할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부대를 대단위로 재편할 필요가 있소.”

“찬성할 수 없소. 전선이 소강상태로 돌아서면 남조선은 대규모 토벌대를 편성할 것이오. 그에 대비하려면 부대를 소규모로 전환할 필요가 있소. 앞으로의 투쟁은 아성공격(牙城攻擊)보다는 인민들 속으로 침투해서 장기투쟁을 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오.”

이현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준표가 반대하고 나섰다. 교사 출신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전북도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전북도당은 남부군 못지않게 강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도 방준표 동지의 의견에 찬동하오. 이제부터는 지역별로 분산해서 소단위 투쟁에 치중해야 할 것이오.”

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이 방준표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속칭 ‘전평(全評)’ 간부 출신으로 방준표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자다. 방준표와 박영발은 사사건건 이현상을 물고 늘어졌다. 빨치산을 통합해 강력한 제2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현상과, 오히려 소규모로 분산시켜 인민들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방준표·박영발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회의장에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舊빨치와 新빨치의 갈등

빨치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전쟁 전부터 좌익활동을 하던 속칭 구빨치, 그리고 낙동강 전선에서 낙오한 인민군들과 북한 점령하에서 공산당에 협력한 사람들로 구성된 신빨치가 그들이다. 빨치산 부대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평양의 남로당 지도부에서 직접 파견한 이현상의 독립제4지대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별로 조직된 도당 유격대다.

두 종류의 빨치산 부대는 지금 휴전을 앞두고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현상은 남로당 대남총책 이승엽으로부터 직접 임명받았다는 사실을 내세워 전체 빨치산을 통괄하려 했는데 박영발과 방준표는 순순히 그의 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방준표와 박영발도 본래는 남로당 출신이지만 북한군이 호남 일대를 점령했을 때 북로당에 의해 각각 전북도당과 전남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북로당과 직접 선이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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