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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④

빨치산과 토벌군의 지리산 대혈투

남북 모두에 버림받은 이현상, 최후를 맞다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빨치산과 토벌군의 지리산 대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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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남로당 지도부는 휴전에 대비해 남한에 강력한 근거지를 마련해둘 필요가 있었다. 남한에 강력한 빨치산 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남로당 지도부가 평양에서 큰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의 원천. 그래서 6개 도당의 유격대를 이현상의 독립제4지대 지휘 아래에 두기로 한 것인데 현지 도당 위원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방준표와 박영발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자 충남도당과 충북도당, 경북도당, 그리고 경남도당 위원장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양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독립제4지대와 전남, 전북도당 유격대는 빨치산의 주력을 이루는 부대다. 그런데 지금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고 있었다.

“이현상 동지는 이승엽 동지로부터 미해방지구 투쟁에 관해 전권을 위임받았소. 이현상 동지가 통합지휘를 결심한 이상 마땅히 각 도당은 직할 유격대를 그에게 넘겨야 할 것이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남부군 정치위원 여운철이 발언을 하고 나섰다. 공산국가 군대에서 정치위원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정치위원이 당의 결정을 들먹이며 이현상의 편을 들고 나서자 방준표와 박영발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한발 물러섰다.

“정치위원의 말이 옳다고 봅니다.”



경남도당의 김삼홍이 거들고 나섰다. 경상도 만석꾼의 아들로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그는 평소에도 이현상에게 호의적이었다. 다른 도당 위원장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 이현상은 빨치산의 총수가 되었고 독립4지대의 별칭이던 남부군은 남한 전체 빨치산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남부군의 거점을 지리산으로 옮기겠소. 각 도당은 휘하의 유격대를 서둘러 지리산으로 집결시키고 연락책과 비선을 새로 조직해서 도시로 침투시키시오.”

이현상은 지리산으로 돌아갈 것임을 공표했다. 지리산. 그곳은 구빨치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봄날은 가고

빨치산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야산대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무장을 갖추고 투쟁에 나선 것은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이후부터다. 남로당 간부로 평양에 머물며 모스크바 유학을 준비하던 이현상은 여순사건 소식을 듣고 급히 남쪽으로 내려왔다. 여순사건은 남로당 지휘부의 지시 없이 현지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때 여수와 순천을 점령했던 반군은 진압군이 출동하자 곧 패퇴했고 여순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현상은 패주병들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전부터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던 남로당원들을 규합해서 빨치산을 조직했다. 이현상은 지리산을 근거지로 삼고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평양의 남로당 지도부는 이현상을 지원하기 위해 인민유격대를 차례로 남파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인민유격대는 모조리 토벌되면서 지리산 빨치산들은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쫓겨 다니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런데 가물가물하던 불씨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불타올랐다. 토벌대에 쫓겨 덕유산을 헤매던 이현상은 그곳에서 북한군이 이미 서울을 점령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은 것이다. 마침내 조국해방의 그날이 온 것인가. 용기백배한 빨치산들은 인민군 부대로 달려갔고 무장을 새로 지급받고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활발하게 유격전을 전개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국토완정의 대업을 이룰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군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면서 전세가 일시에 역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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