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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②

‘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세상을 밝힌 빛의 혁명가

  •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더사이언스팀 기자 uneasy75@donga.com

‘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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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토머스 에디슨이 1929년 10월 전기회사의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가 백열전구를 발명하게 된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를 전송하는 전선에는 저항이 있어 전기를 멀리 전송할수록 전기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직류 발전소를 설치해야 했다. 반면 교류 방식은 전류를 세게 만들긴 어려워도 전압을 높이는 건 쉽다. 테슬라의 교류 발전기는 수천 볼트(V)에 이르는 고전압도 만들 수 있었다. 전선에 저항이 있어 전기량이 감소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발전소를 전기 소비 지역 가까이에 지을 필요 없이 중앙 발전소에서 전기를 전송한 뒤 각 지역에 설치된 전신주의 변압기에서 전압을 110V로 전환했다. 이 덕에 발전에 필요한 석탄이나 물만 있으면 어디든 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다.

테슬라의 발전 방식이 전기를 싸고 편리하게 공급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교류 전기는 에디슨의 직류 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인 뉴욕은 처음에 교류를 외면했다. 에디슨이 이미 뉴욕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교류의 장점이 입소문 나면서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에디슨의 직류 시장을 잠식해갔다.

에디슨은 곧바로 교류에 흠집 내기 ‘캠페인’을 벌이며 반격에 나섰다. 가령 에디슨은 ‘에디슨전기회사로부터의 경고(A Warning from the Edison Electric Company)’라는 팸플릿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뿌렸는데, 팸플릿에는 고전압 교류전선에 가까이 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고압 교류전선에 감전된 사람들의 명단을 실었다.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은 전선을 땅에 묻는 방식이어서 감전될 위험이 없었다.

반면 당시 뉴욕 하늘은 고압선과 전화선으로 검게 뒤덮여 있었고 매년 수십 명의 사람이 고압선에 감전돼 죽었다. 에디슨은 팸플릿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무서운 교류를 가정에서 사용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교류 대신 직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피력했다. 직류와 교류를 놓고 사태가 인간의 생명에 관련된 문제로 확대되자 과학자들이 심판으로 나섰다. 시카고 전기클럽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직류와 교류를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미 에디슨의 로비에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들은 직류가 사용 범위가 넓고 안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직류를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시카고 전기클럽의 토론 직후 상황은 테슬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프랑스 기업이 구리 시장을 장악하면서 구리 가격이 3배나 껑충 뛰었는데, 직류 방식은 전기를 굵은 구리선에 보내야 하는 반면 교류 방식에서는 구리선이 가늘어도 됐기 때문이다. 상황은 점점 교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전기의자로 교류 폐기 노렸지만 실패

궁지에 몰린 에디슨에게는 교류를 폐기시킬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경제적인 면이나 과학적인 논리로 교류를 폐기시킬 수 없다면 교류의 위험성을 강조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에디슨의 눈에 해럴드 브라운(Harold P. Brown)이라는 인물이 띄었다. 브라운은 어린 시절 고압 교류 전화선에 사람이 감전돼 죽는 것을 직접 본 뒤 직류 신봉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뉴욕 포스트’에 자신의 경험을 기술한 편지를 보내며 교류는 저주받은 위험한 것으로 법으로 금지해야 하며 직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포스트에서 이 편지를 본 에디슨은 즉시 브라운을 고용했다. 에디슨은 자기 회사의 최고 기술자를 브라운의 조수로 붙여주며 교류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입증하도록 부추겼다. 브라운은 이번엔 ‘뉴욕 타임스’에 공개적으로 광고를 냈다. 말이 광고지 사실은 테슬라를 향한 일종의 결투 신청서였다. 브라운은 “내 몸에 직류를 흘려보내는 동안 당신의 몸에는 교류를 흘려보내 누가 오래 견디는지 알아보자”며 “100V에서 시작해 50V씩 올리고, 둘 중 먼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류 방식의 결점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테슬라 측은 브라운의 결투를 무시했다. 오히려 테슬라는 몇 백만V가 흐르는 전기 불꽃 밑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사진 한 장을 공개해 에디슨의 꼼수를 잠재우려 했다.

사실 이 사진은 교류 송전의 안전성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전기의 특성을 제대로 모르는 대중에게 교류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에디슨은 지치지 않고 계속 다른 방법을 찾았다.

마침 1887년 미국 뉴욕 주 사법당국은 전통적 사형집행 방법인 교수형의 대안을 찾고 있었다. 당시 뉴욕 주가 교수형 집행에서 몇 차례 심각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교수용 올가미가 너무 느슨해 사형수가 천천히 고통스럽게 질식사하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올가미가 너무 꽉 조여 사형수가 교수형이 아닌 참수형을 당하는 끔직한 경우도 발생했다. 에디슨은 원래 사형제도에 반대해왔지만 사업 앞에서는 달랐다. 사업가로서 에디슨은 무자비하고 악랄했다. 그는 뉴욕 주 사형집행에 자신이 직접 고안한 전기의자를 사용하도록 로비를 벌였다. 뉴욕 주지사는 다양한 사형집행 방법을 검토한 후 전기를 이용한 사형집행을 위해 연구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는 전기 방면의 대가인 에디슨에게 자문을 구했다.

에디슨은 “고압 전류가 가장 빠르고 고통 없이 사형수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교류를 의자에 흘리는 전기의자를 쓰자고 제안했다. 전기의자에 전압이 높은 교류를 흘려 사형수를 죽이면 테슬라의 교류 전류는 ‘사람을 죽이는’ 전류로 인식될 게 뻔했다. 에디슨의 작전은 성공했다. 에디슨은 브라운을 시켜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를 만든 뒤 동물에 감전시키는 실험을 보여주며 뉴욕 주를 설득했다. 처음엔 길거리에서 한 마리에 25센트를 주고 산 개와 강아지 같은 작은 동물로 시작했다. 그러다 브라운은 점점 동물의 크기를 키워 송아지와 말을 에디슨의 실험실로 끌고 와 교류에 감전시키는 실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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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동아사이언스 더사이언스팀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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