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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⑪

이효석의 길과 향기로운 땅 기운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이효석의 길과 향기로운 땅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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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이 욕정을 쓰다듬고 욕정 끝에 남는 회한을 다스린다. 장터 술집 거리에서 허생원이 주모에게 마음이 끌린 동안 그의 늙은 노새는 암컷을 보고 욕심을 내다가 무안을 당했다. 장터 꼬맹이들까지 노새의 주책을 놀려댔다. 심기가 상한 허생원은 젊고 건장한 동이한테 몹쓸 소리를 한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다. 이 고약한 심경과 분위기는 ‘흐뭇한 달빛’과 이 달빛으로 조명되는 청신한 밤 풍경이 변화시키고 위무한다. 이 밤길, 나귀들의 걸음걸이가 시원하고 방울소리가 명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효석, 1907년생이다. 여덟 살 때까지 봉평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마을에서 100리나 떨어진 군 소재지의 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그는 그때부터 평창에서 하숙생활을 했는데 봉평집을 오갈 때면 예사로 100여 리 길을 걸어 다녔다. 집에서 지금의 가산공원이 있는 봉평 본 마을까지가 10여 리, 봉평에서 장평까지가 20리다. 지금 찻길이 나 있는 노루목고개를 넘으면 장평 개울을 만난다. 장평에서 대화까지가 또 30리 길이다. 대화면의 대화거리가 곧 대화장터인데 이곳도 효석이 봉평과 평창을 오가며 거치던 길목이었다.

지금은 도중에 영동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지만 봉평-장평-대화-평창을 잇는 오늘의 국도는 그 예전 어린 효석이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걷던 길인 동시에 소설 속의 인물들이 걷던 길이다. 그 사이 도로가 말끔히 포장되고 주유소며 ‘가든’이 서 있다고 해서 달라질 산천이 아니다. 따라서 국도를 달리면서 이 어디쯤이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건너던 개울이구나, 요량도 해보고 여태도 옛 모습을 지닌 대화장터를 슬쩍 구경하고 나오는 것도 나그네 걸음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 시 ‘고사(古寺)’ 전문

전나무 숲 너머 응달에는 아직도 무명 포대를 널어놓은 듯 잔설이 쌓여 있으니 볕 바른 절간 마당이라고 해서 하마나 모란이 필 턱이 없다.

지훈을 그리게 하는 월정사

1940년대 초 일제의 정치가 날로 포악해가던 때, 스무 살을 갓 넘긴 시인 조지훈은 오대산 월정사에 몸을 피해 잠시 심신을 자연과 부처에 의지했다. 스님도 아닌 이가 스님들에게 불교 경전을 강의하던 것도 이 무렵이었으며 솔잎 술을 담아 스님들을 유혹하던 때도 이 시기였다(수필집 ‘돌의 미학’). 젊은 의기를 분출할 수 있기는커녕 우리말로 시 한 줄 쓸 수 없는 절망의 시대에 붙잡아본 선(禪)의 세계는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천재적인 하이틴이 제 빼어남을 자랑하듯이 화려현란하게 읊고 있는 초기 시 ‘고풍의상(古風衣裳)’이며 ‘승무(僧舞)’에 비하면 이 무렵에 쓴 ‘고사(古寺)’는 파격적으로 단정, 얌전하다. 짐짓 선시(禪詩) 투를 내면서 멋을 부리고 있기는 하나 예쁘게 봐줄 요량이면 얼마든지 예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월정사에 이르면 더럭 지훈이 그리워지는데 막상 절간에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절의 품새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맛이 덜한 탓이다. 지세 때문인가, 가람의 배치 탓인가, 근래의 치장 덕인가. 나름으로 요량해보지만 까닭을 알지 못한다. 하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로 가는 그 골짝 길을 곧장 오른다. 권세를 위해 사람도 많이 죽인 세조 임금. 제 몸에 생기는 오만 가지 병이 모두 그 탓인가 여기고 부처님을 찾는 심사에서는 제법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 골짝에서 진물 흐르는 피부를 씻다가 동자 보살을 만났다는 설화도 적막한 이야기로 세간에 남는다.

산행을 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온전히 내 발로 디뎌보는 것이다. 그동안 월정사, 상원사를 거치는 나그네 걸음은 여러 차례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 따라 이름난 산천을 눈으로 더듬는 탐승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산에 들고서도 제대로 산을 보지 못하고 물을 따르면서도 물길을 헤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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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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