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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⑥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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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검문검색

야간 촛불집회는 5월 2일부터 7월 10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날을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참석자도 다양해졌다. 신바람 난 일부 청년은 이 집회를 2002년 월드컵 응원에 비유하기도 했다. 5월 14일, 최초로 시위대의 시가행진이 있었다. 물리적 충돌 끝에 일부 부상자가 발생했다. 다수가 연행됐다.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집회가 이어졌지만 종종 청와대 점거, 정권 퇴진의 구호도 등장했다. 정부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통령이 두 차례나 직접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다. ‘광우병 대책회의’ 등 몇몇 급조된 단체가 군중 동원과 선동에 나섰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다.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야간집회는 기술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불법집회 진압에도 경찰이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절대로 공격적 진압이어서는 안 된다. ‘방어적’ 진압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필요한 최소한도의 물리력만 사용해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는 이런 기준을 지키기 어렵다. 그래도 끊임없이 이 기준을 환기시켜야 한다. 그게 법이고 인권이다.

촛불집회가 점화된 지 2주일 남짓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인권위원장은 매년 어김없이 참석하는 자리다. 기념식뿐 아니라 국제인권상 시상식 등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시민사회 원로를 만나는 것이 연례행사다.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식장에 도착했다. 전반적으로 경계가 과했다. 엄청난 숫자의 경찰이 철저한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계엄령이 선포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1980년 바로 그날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부 의전과 주최 측의 배려에 따라 맨 앞줄에 앉았다. 정당 대표들 바로 옆자리다. 헬기로 도착한 대통령이 전남지사의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 의례적으로 앞줄의 인사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나눈다. 공교롭게도 바로 내 앞에서 손잡기를 중단하고 곧바로 단상에 마련된 국가원수 자리로 옮겨갔다. 대통령이 내 얼굴을 알 리 없고, 특히 인권위원장을 유념했을 리도 없었지만 다소 민망했다. 바로 뒷자리에 서 있던 한 야당 국회의원이 제법 큰 소리로 외쳤다. “대통령님, 인권위원장 손도 좀 잡아주시지요.” 몇 사람이 따라 웃었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대통령의 표정에는 여유가 없었다. 시종일관 어둡게 경직된 표정이고 연설도 유연하지 못했다.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로 되날아갔다. 과거 선례에 따라 만남과 덕담, 그리고 선물보따리를 기대하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허탈해했다. 퇴장하는 대통령의 뒤를 향해 한 중년여인이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를 외쳤다. 경호원들이 재빨리 끌고 나갔다. 당연한 일이지만 도가 지나친 것 같았다. 한 참석자는 시민을 ‘마치 개 끌 듯이’ 다루는 모습을 보고 분개했다. 나도 우울했다. 식장 너머 멀리 뒷산에 도열한 경찰의 모습도 보였다. 기념식 끝나기가 무섭게 뜀박질로 하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록영화에서 본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함께 지켜본 박준영 전남지사도 불편한 기색이었다.

이듬해, 같은 날이다. 기념식장에는 인권위원장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참석 사실을 통보하고 확인도 했다. 주최 측의 의도적인 무시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부주의였는지 몰라도 1년 사이에 추락한 인권위 위상을 보여주는 듯해 몹시 씁쓸했다. 불과 달포 전인 2009년 3월 30일, 인권위 조직규모가 21% 축소되는 수모를 당한 터였으니 나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몹시 분개하는 인권위 광주 지역사무소장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았다. 중립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2009년 5·18 기념식은 위상이 심히 추락한 반면 당파성과 지역성이 강화된 듯해 안타까웠다.

다시 2008년 5월 21일, 촛불집회와 관련된 최초의 진정이 들어왔다. 경찰의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어 줄줄이 7월까지 130여 건이 접수됐다. 언론에서도 여러 형태의 인권침해를 예시했다. 7월 11일, 인권위는 상임위 의결로 직권조사 결정을 내렸다.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인권운동가들도 날아왔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의 조사관도 왔다. AI는 한국지부가 있다. 그러나 지부는 소재국가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게 업무수칙이다. 일부 정부부처와 수사기관에서는 AI 조사관의 행방을 인권위에 문의했다. 엄연히 한국지부가 있는데도 말이다. 인권위를 이들과 공모한 ‘패거리’로 본다는 증거다. 상식의 결여와 편견을 드러낸 것이다. AI 조사관은 집회, 시위의 진압과정에서 공권력 남용이 있었다면서 시정을 권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7월 21일 AI보고서에 대한 법무부의 반박성명이 발표됐다. 인권위는 진정사건과 직권조사를 병행해 진행했다. 유능한 조사관 6명을 투입했다. 2개월에 걸쳐 심도 있는 조사가 이어졌다. 주 7일, 하루 14시간 이상의 전력투구였다. 도합 256명의 대상자를 조사했다. 시위와 진압이 가장 격렬했던 6월 1일(안국동 로터리)과 28일(종로, 태평로)자 두 건에 집중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각종 법령은 물론 경찰 내부의 훈령과 지침도 검토대상이 됐다. 국제규범도 참조했다. 핵심 쟁점은 법리적으로 ‘경찰비례의 원칙, 최소의 원칙’을 준수했는지였다. 방패와 경찰봉 및 물포의 사용, 후퇴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 지켜보는 사람이나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폭행을 만류하는 사람·넘어진 사람·비무장의 청소년과 여성·의료지원 활동자에 대해 정당한 공무집행의 범위를 넘어선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를 봤다.



쇄도하는 진정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권위는 시위자에게는 평화로운 집회를, 경찰에게는 방어적 진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 스스로 ‘인권지킴이단’을 결성해 시위현장에 투입, 감시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경찰에 통보하고 협조를 구했다. ‘인권지킴이’임을 공시하는 노란색 조끼를 입고, 경찰과 시위자 쌍방의 과격행위를 말리고 달래는 일에 나섰다. 상임위원들도 지킴이단에 합류했다. 그러다 인권위 직원이 경찰의 진압봉에 맞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가 강한 항의의 메시지를 전하자 어청수 경찰청장이 사과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위와 경찰이 공동으로 정립한 기준이 있지 않나, 왜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느냐고. 그는 그 기준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상을 넘어선 폭력사태에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이른바 ‘명박산성’이 설치되기 직전의 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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