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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周遊天下 ②

미국인의 정신적 갈증 풀어준 선승 범휴 스님

  • 조용헌| 동양학자, 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미국인의 정신적 갈증 풀어준 선승 범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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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스시, 요가, 명상에 빠진 미국인
  • ●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 ● 한국불교 청화문중과 티베트불교 닝마파
  •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라”
미국인의 정신적 갈증 풀어준 선승 범휴 스님
“최근 미국 상류층의 관심사는 스시(초밥), 요가, 명상입니다. 돈 있고, 학벌 있고, 지위도 있는 상류층의 일상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가 이 세 가지예요.”

11년간 미국에서 불교 수행을 지도하면서 현지 지식인 및 주류계층 사람을 만나온 조계종 범휴(梵休·56) 스님 이야기다. 그는 수행자같이 생겼다. 눈이 작고 눈빛이 예리한데다 몸이 호리호리한 편이다. 이런 체형이 고행을 감내한다. 수행은 고행을 감내해야 문턱을 넘어간다. 이런 몸과 관상을 타고나는 것은 아마 전생(前生)에도 수행자 생활을 했다는 증거이리라. 전생 성적표가 금생의 체형에도 반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법명에 인도(印度)를 뜻하는 범(梵)자가 들어갔는가? 눈빛이 예리한데, 어딘지 모르게 평화로운 느낌도 배어 있다. 눈빛이 예리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면 수사기관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범휴는 미국인이 은퇴한 후 가장 머무르고 싶어하는 도시이자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을 지낸 바 있는 캘리포니아 주 카멜(Carmel) 시의 삼보사(三寶寺) 주지를 지냈으며, 세계적으로 기(氣)가 세다는 애리조나 주 세도나(sedona)에서 토굴을 짓고 4년간 집중 명상을 하기도 한 선승(禪僧)이다. 서양식으로 이야기하면 ‘젠 마스터(Zen master)’인 것이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다. 유럽보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훨씬 심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백인은 겉으로는 개방적이고 평등한 척해도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아시아인의 피부가 유색(有色)이라면 백인은 무색(無色)에 해당한다. 유(有)에 대한 무(無)의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이런 미국에서 백인이 그래도 대접을 좀 해주는 아시아인이 바로 불교 승려다. ‘멍크(승려·monk)’는 우선 복장이 독특하다. 잿빛 장삼은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보기에는 매우 개성 있고 특이한 패션이다. 특이한 옷을 입고 있으면 백인은 호기심을 가진다. ‘뭔가 다른 게 있나 보다’하고 말이다. 속은 알 수 없으니 우선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멍크는 패션이 튄다. 그다음 멍크는 서양 백인이 잘 모르는 명상의 세계, 즉 마음의 고요함과 평화에 대한 전문가로 인식된다. 명상에 대한 집중 수련을 거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게 약간 존경심을 우러나오게 하는 요소다. 그들은 멍크를 ‘영성(靈性)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먹고사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음의 평화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걸 누구보다 절절하게 인식하는 인종이 백인이다. 아르마니, 페라가모보다 한 급 높은 패션이 회색의 가사 장삼이 아니겠는가.

미국인의 정신적 갈증 풀어준 선승 범휴 스님
미국 상류층에 부는 동양 열풍



▼ 스시, 요가, 명상은 모두 동양 문화 아닌가? 스시는 일본의 초밥, 요가는 인도의 육체수행법, 명상은 불교 계통의 호흡법과 관법(觀法)이다. 초밥을 먹으면서 요가를 하고, 요가를 해서 몸을 푼 다음 명상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왜 갑자기 서양에서 이런 동양적인 가치가 고급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비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미국인은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 대부분의 체중이 100㎏에 육박한다. 인류 역사상 국민의 상당수가 100㎏씩 나가는 시대는 없었다. 비만은 ‘전염성이 가장 강한 질병’이라고 정의되는 실정이다.”

▼ 비만이 전염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주변 사람이 배나온 것을 보고 ‘저 정도 나와도 괜찮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전염이다. 비만은 치료가 힘들다. 아울러 각종 성인병이 발생한다.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은 고치기 어렵고, 병원비도 많이 든다. 휴식과 여가(餘暇)에 써야 될 돈을 병원비로 쓰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삶의 질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사회가 무기력에 빠진다. 그러면 결국 사회가 망하는 것 아닌가. 대략 보면 미국이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이런 슬럼프에 진입한 것 같다. 베트남전이 끝나고부터 건강하던 미국 사회가 점차 도덕적으로 느슨해진 느낌이 든다. 개척자 정신이 쇠퇴했다. 주택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고 자동차도 대형화됐다. 유럽은 소형차로 갔는데, 미국만 대형차로 갔다. 몸의 비만이 비만에서 끝나지 않고, 생활환경의 비만, 즉 과소비로 이어졌다고 본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소비 아닌가. 이는 탐욕에 해당할 뿐 아니라 도덕적 해이와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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