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세트당 200만 원으로 200개 한정 출시된 ‘설화수 진설 백동장성 세트’는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능률협회 주관 조사에서 연속으로 여성기초화장품 브랜드파워 1위에 오른 설화수는 한방 화장품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제품으로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설화수의 성공은 업계뿐 아니라 세계 브랜드 전문가들에게 연구할 만한 사례로 손꼽힌다.
한방 화장품 업계 매출 1위의 설화수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역사와 뿌리를 함께해온 브랜드다. 1997년 론칭한 설화수는 나이가 들면서 거칠게 메말라가는 여성의 피부에 눈송이가 피어난 겨울나무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화수의 기본 라인에는 화장수에 해당하는 ‘자음수’와 로션인 ‘자음유액’이 있다. 작약, 연자육, 백합, 지황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자음단’은 음부족 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35세 이상 여성의 피부에 음을 더해, 음양의 상생을 도와 피부에 활력을 더한다.
한국 뿐 아니라 동양적 브랜드

설화수 대표 베스트셀러인 윤조에센스는 2011년 한 해 동안 1분당 9개꼴로 판매됐다.
설화수의 시작은 인삼이었다.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고향은 유명 인삼 산지인 개성이다. 그의 어머니는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제조해 판매했다. 서 회장은 1945년 태평양 창립 후 업계 최초로 1954년 화장품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끈질긴 인삼 성분 연구 끝에 1966년 ‘ABC인삼크림’을 출시하면서 한방 화장품 브랜드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아모레퍼시픽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소비자는 한방 화장품을 한약 재료로 만든 것이나 한의학 연구 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한방 이론을 적용한 화장품으로 인지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한방 화장품은 1973년 태평양에서 내놓은 인삼 사포닌 성분을 함유한 ‘진생삼미’다.
이후 1975년 고려청자에서 모티프를 얻은 패키지 디자인의 ‘삼미’, 1987년 생약 성분을 가미한 ‘설화’를 거쳐 지금의 설화수가 탄생했다. 1997년 ‘프로모션’ 개념조차 모호했던 시절에 아모레퍼시픽은 자사가 발간하는 미용 전문지 ‘향장’에 샘플 30만 개를 부착하는 입소문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제품력에 공감한 사용자들의 재구매가 이어지면서 점차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설화수는 출시 10여 년이 지난 2008년,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했는데, 당시 국내 화장품 시장이 5조 원대 규모였으므로, 단일 브랜드가 전체 화장품 판매량의 10%를 차지한 것. 2009년에는 화장품 브랜드로는 최초로 백화점 매출 집계 1000억 원 시대를 열었으며 2010년 매출 약 7000억 원을 돌파하면서 더욱 국내 화장품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윤조에센스 1분당 9개 팔려
설화수의 베스트셀러인 자음생크림, 윤조에센스는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특히 윤조에센스는 2011년 한 해 동안 1분당 9개꼴로 판매된 설화수의 스테디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일명 ‘갈색병’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의 ‘나이트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가 1분당 3개꼴로 팔려나간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인삼 연구 결정체였던 ‘자음생크림’은 2000년 출시 당시 20만 원의 고가로 소비자 판매 가격이 책정됐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인 점을 감안할 때 이 가격을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놓고 내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기술력과 좋은 성분을 알아본 소비자에게 자음생크림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호응을 얻으며 설화수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2010년 10월에는 미국의 럭셔리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에서 추천하는 상품인 ‘BG Best Pick’으로 선정됐으며 현재까지 설화수 제품 중 판매 1위(금액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화장품과 미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인 ‘겟잇뷰티(Get it beauty)’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과 미국의 클렌징 오일 제품을 제치고 설화수의 순행클렌징오일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본래 설화수의 주 고객층보다 낮은 연령의 20대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며 2011년에는 20~30대 고객이 전년 대비 14%가 증가했다. 순행클렌징오일의 성공사례는 ‘겟잇뷰티 마케팅’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발판이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가던 한방 화장품 시장은 현재 전체 화장품 시장의 25%에 해당하는 약 2조 원 규모로, 이 중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설화수와 LG생활건강의 ‘후’가 약 1조 원이 넘는 매출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웅진코웨이가 내세운 한방 화장품 브랜드 ‘올빚’ 등 후발주자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보통 한방 화장품은 피부 자생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30대 중반 이상이 주요 타깃인데, 올빚은 그 대상을 넓혀 20대를 겨냥한 한방 화장품을 출시했다. 뿐만 아니라 KT·G는 ‘뷰티 크레딧’으로 유명한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면서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궁극적으로 이들이 노리는 시장 역시 한방 화장품이라는 후문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한방 화장품 브랜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개발 등의 초기 진입 비용이 많이 들지만 고급화된 이미지의 브랜드 부가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최근 ‘화장품 한류’의 기세에 힘입어 미국, 중국 등에서 국내 한방 화장품 브랜드의 인기가 상당한데, 약재의 느낌이 강한 한방 재료를 사용해, 일시적인 피부 자극으로 인한 효과보다는 치료 차원의 피부 개선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