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한겨울 여성 노숙인이 살아가는 방식

추위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거친 욕설 내뱉지만 세상이 무서운 피해자

  • 최진렬 인턴기자

    fufwlschl@naver.com

    입력2020-01-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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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을 선택 ‘당한’ 사람들

    • 수시로 마주하는 남성 노숙인의 위협

    • 낮에는 역사(驛舍), 밤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떠돌이 생활

    • “서울역 여성 노숙인 10명 중 9명은 정신질환 보유”

    [GettyImage]

    [GettyImage]

    “사랑이 엄마예요. 사랑이 엄마.” 

    2019년 12월 26일 서울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현수정(60·가명) 씨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검붉은 피부에 꼬불꼬불 긴 머리카락, 목에 친친 감은 여러 장의 머플러가 눈에 들어왔다. 견종이 빠삐용인 사랑이는 수정 씨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사랑이를 얻기 전까지 수정 씨는 오랜 시간 혼자였다.

    “미혼모 엄마가 나를 버려서 할머니가 키웠는데, 아주 복잡해요. 처참하고. 할머니 임종도 못 봤어요. 내가 나오고 싶어서 집을 나왔나. 그 이야기는 다 못해요. 트라우마야.”

    집을 나선 수정 씨는 돈을 벌고자 쉬지 않고 일했다. 밤낮없이 고철을 모았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건 돈이 아니라 병이었다.

    “겨울에 밤낮없이 고물 주워봤자 해장국 한 그릇 먹으면 끝이에요. 오히려 동상만 생겼고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까지 걸렸어요.”



    이제는 고물을 줍기는커녕 빨리 걸을 수도 없다. 가족도 없고 건강도 잃은 수정 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노숙뿐이었다.

    “배고프니까요.”

    수정 씨는 그렇게 노숙을 선택‘당했다’.

    수정 씨와 서울역에서 영등포역까지 함께 걸었다. 빵가루가 가득 든 흰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비둘기한테 밥을 주던 수정 씨는 기자에게 장소에 맞는 ‘노숙 팁’을 알려줬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서울 곳곳 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들(사진 속 인물과 기사에 등장하는 노숙인이 동일 인물은 아님). [최진렬 인턴기자]

    서울 곳곳 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들(사진 속 인물과 기사에 등장하는 노숙인이 동일 인물은 아님). [최진렬 인턴기자]

    “영등포역사에 있으면 밤에 쫓아내요. 그때는 밑에 있는 롯데리아로 가요. 거기도 시간이 좀 지나면 청소한다고 쫓아내거든요. 그러면 새벽 5시쯤 다시 역사로 올라가면 돼요.”

    영등포역사에서는 여성 노숙인 서너 명이 매일 그렇게 밤을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거리는 냉혹하다. 아무리 생존법을 모색해도 여성 노숙인이 버티기란 쉽지 않다. 수정 씨는 남성 노숙인들이 자신을 동료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애들은 자꾸 엉키려고 그래요. 엉킬 목적으로 시비를 걸어요. ‘너 죽어봐’ 이렇게 싸우는 척하면서…. 그러고는 성폭행하죠. 다 그래요.”

    거부하면 더욱 거칠게 대했다. 수없이 다쳤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랑이마저 잃었다. 한 남성 노숙인이 사랑이를 밟아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였다. 수정 씨는 다시 혼자가 됐다. 혼자 지내는 삶에 지쳐 2만 원을 주고 산 가족이었는데, 거리의 삶은 그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그동안 겪어온 아픔 얘기를 하면서 수정 씨는 도리어 기자를 걱정했다.

    “왜 이렇게 기침을 해요. 이거 하고 가세요.”

    친친 두르고 있던 허름한 목도리를 풀어 기자 목에 매줬다. 그러고는 말했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위험해요. 둘러보지 말고 바로 가세요.”

    영등포역 인근 노숙인 생활터에서 수정 씨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마침 그때 “야 이 XX놈들아. XXX들아” 하는 술 취한 남성 노숙인의 욕설이 영등포역 주변을 가득 채웠다. 기자만 깜짝 놀랐을 뿐 거리 사람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노숙인 5명 중 1명은 여성

    서울역 인근에 있는 노숙인 지원 시설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전경. [최진렬 인턴기자]

    서울역 인근에 있는 노숙인 지원 시설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전경. [최진렬 인턴기자]

    서울시가 발표한 ‘2019년 노숙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는 3253명의 노숙인이 있다. 노숙인 지원 기구인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이수범 실장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안타까워했다.

    “노숙인은 날 때부터 노숙인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에요. 한번 무너지면 재기가 어려운 사회구조에서 노숙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입니다. 노숙인은 신분이 아니라 상황일 뿐이에요.”

    그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여러 고통을 겪는다. 여성은 더욱 그렇다. 길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신체적 약자인 여성 노숙인은 수시로 폭력 위험에 시달린다. 서울시 통계에 잡힌 여성 노숙인은 678명으로 전체의 19%다. 이들은 동료 노숙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적잖다.

    2019년 12월 23일 서울역에서 만난 이은자(62·가명) 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4월부터 8개월째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남성 노숙인들과 달리 혼자서 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을 붙이자 대답을 하면서도 눈으로는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폈다. 자기 짐과 주변 노숙인을 교대로 주시하며 “긴 시간 이야기할 수는 없다. 허리도 아프고, 내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주변 노숙인들이 좋지 않게 본다”고 했다.

    실제로 이씨와의 대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남성 노숙인 한 명이 다가와 “이 여자는 약을 먹어야 해. 머리가 아프다고” 라며 갑작스레 대화를 중단시킨 것이다. 그는 몇 번이나 “약을 먹어야 한다”고 외쳤다. 잠시 응대하던 이씨는 “남자들은 이러다 주먹을 휘두른다. 그만 가봐라. 더 있으면 나도 위험하고 당신도 위험하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같은 달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다시 이씨를 만났지만 그는 기자를 알아보고는 “말 걸지 말아달라”며 몸을 피했다.

    여성 노숙인에게 위험한 낮 시간이 지나면 더 힘겨운 밤이 찾아온다. 영등포역 인근에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희망지원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도열 노숙인상담원은 “이 근처에 여성 노숙인들이 모여서 자는 장소가 따로 있다. 그런데 남성 노숙인들이 한 번씩 그곳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고함치며 깨운다. 툭툭 치며 괴롭힌다. 여성 노숙인들이 이런 행동을 좀 막아달라고 호소하곤 한다”고 밝혔다.

    서울 곳곳엔 노숙인 일시보호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거리 노숙인들이 잠시 쉬거나 밤을 보낸다. 그런데 이곳도 여성 노숙인에게는 안전한 쉼터가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019년 12월 23일 오후 7시에 방문한 영등포역 인근 ‘응급구호방’에는 여성 노숙인이 한 명도 없었다. 남성 노숙인 30여 명이 전체 공간을 다 차지한 상태였다. 이틀 후 오후 1시에 다시 방문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남성 노숙인 22명이 그 안에서 쉬고 있었다. 여성 전용 공간이 없다 보니 여성 노숙인은 아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영등포구청은 건물을 증축해 올해부터 여성 노숙인을 위한 공간을 따로 배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정신 질환과 주거 빈곤의 악순환

    “야 이 XX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다 XX아.”

    2019년 12월 23일 서울역에서 만난 한 여성 노숙인은 계단에 주저앉은 채 행인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퍼부었다. 계속 소리를 지른 탓에 이미 목이 쉰 상태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필요 없어. 아무도 도움을 안 주는데 너희를 내가 도와줄 거 같아. 8개월 간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 국가 보호 대상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도와줄 거 같아? 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감싼 여성 노숙인은 기자가 떠날 때까지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이처럼 행인을 향해 욕을 하거나 횡설수설하는 여성 노숙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서울역파출소는 정신 질환 정도가 심해 사고를 당할 위험이 큰 것으로 판단되는 노숙인은 응급 입원시킨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서울역 거리 노숙인 중 여성 비중은 5% 정도인데, 응급 입원 대상자 중에는 절반 정도가 여성”이라며 “여성 노숙인의 정신 질환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밝혔다.

    “나도 성격 장애가 있어요.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해요. 마음속에 슬픔이 많이 있어서 그래요.”
    앞서 서울역에서 만난 현수정 씨는 스스로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처럼 문제를 알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노숙인은 자신에게 정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고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최리선 사회복지사의 설명이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이 희망할 경우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살 수 있도록 월 25만 원 안팎을 지급하는 방식이에요. 이 혜택을 받으려면 노숙인이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한 정신적·육체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죠. 정신장애가 있을 경우 약물 치료를 제대로 받는 데 동의해야만 주거지원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정신 질환에 대한 얘기만 꺼내도 화를 내며 아예 지원 자체를 거부하는 분이 많습니다.”

    최 사회복지사는 “서울역 여성 노숙인의 90% 정도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다. 이들이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주거 복지에서도 소외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약값이라도 조금 얻으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돈 있으면 미안하지만 1000원이나 2000원쯤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할매가 돼가지고, 내가….”

    서울역에서 만난 한 여성 노숙인이 기자에게 한 얘기다. 며칠 동안 여성 노숙인을 만나며 욕설 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이 “돈 좀 달라”였다. 여성 노숙인은 오늘도 거리 곳곳에서 이렇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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