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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백석은 왜 가자미가 좋았을까

김민경 ‘맛 이야기’⑰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詩人 백석은 왜 가자미가 좋았을까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 현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 현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몇 주 전 일요일 아침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으로 서둘러 갔다. 농부들이 자신이 키운 작물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향신채소 ‘고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마르쉐에는 농부뿐 아니라 꿀 따는 사람, 치즈나 햄 등을 만드는 사람 등 건강한 식생활과 관련된 여러 판매자가 모인다. 장보는 재미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몇 배 크다. 

장은 11시부터 시작되나 ‘마르쉐의 수퍼스타’라 불리는 몇몇 인기 판매자 앞에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줄을 선다. 저렇게 앳된 사람도 손수 요리를 하나 싶은 예쁜 청년부터, 머리에 하얗게 눈꽃이 내려앉은 노부부까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농부들은 하늘거리는 줄기가 달린 어린 당근, 노란 주키니호박, 고수를 비롯한 각종 허브, 초록색 대가 싱싱하게 붙은 마늘, 다양한 색깔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갖고 나온다. 이 시장의 진짜 매력은 얼굴을 아는 농부가 키운 채소를 사면서, 그간의 이야기까지 함께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좀 더 성의 있게 대하는 일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표지.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표지.

공선옥 작가가 28가지 먹을거리에 대해 쓴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에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부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부추가 부추김치가 되기까지 나는 그 부추와 어떤 교감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 내가 부추를 보고 생의 아름다움에 들뜨는 그런 과정 없이 부추김치가 내 밥상 위에 당당한 부추김치로서 턱 놓여 있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으로 요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밥상 대화의 주인공은 단연 노란호박이다. 내가 키운 것은 아니지만 ‘아는 채소’니까 훨씬 성의 있게 대할 수 있다. 

공 작가는 앞 책에서 말했다. ‘내가 부추를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 만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그의 부추만큼은 아닐지라도,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 한 덩이는 분명 마음에 한 줄 이야기를 긋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에세이 ‘백석의 맛’ 표지(왼쪽). 에세이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 표지.

에세이 ‘백석의 맛’ 표지(왼쪽). 에세이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 표지.

애틋한 음식 표현이 있는 작품을 꼽자면 백석의 시 ‘선우사(膳友辭)’도 빼놓을 수 없다. 



‘흰밥과 가재미(가자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중략)/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전문을 읽으면 쓸쓸한 밥상에 놓인 세 존재의 외로움과 다정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서양화가 서산(西山) 구본웅은 김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는 김을 즐긴다. (중략) 묵은 김 덕에 생색나고 밥은 향기롭다. (중략) 김이야말로 우리의 조선김이 좋으니 뻣뻣하고 꺼덕차고 맛도 향기도 없는 왜김에다 댈 것이 아니다. (중략) 이 감미, 이 향기가 김이 김다운 본색이다.’ 

분명 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맛이든 기분이든 마음에 들어오는 음식을 만나면 이 정도의 인사와 감상을 우리도 서슴없이 해보면 좋겠다. 

백석의 인생과 맛 이야기는 ‘백석의 맛’이라는 책에 아주 쉽고 상세히 정리돼 있다.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에는 구본웅의 김 이야기를 비롯해 채만식, 이효석, 김유정, 현진건 등 여러 문인과 예술가의 음식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에세이 ‘음식의 위로’ 표지.

에세이 ‘음식의 위로’ 표지.

최근 나온 책 ‘음식의 위로’는 음식보다 작가 삶에 대한 고백과 기억이 대부분인 에세이다. 나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가 나고, 우습고, 창피하고, 뭉클하다. 책 속에서 음식은 주인공을 수호하는 히어로처럼 짧고 강렬하게 등장해 번쩍번쩍 빛난다. 백 마디 말보다 손수 만든 음식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감정의 물꼬를 트는데 훨씬 쓸모 있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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