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백선엽·김원봉 논란…‘외눈박이 역사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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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6-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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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나 이념이 역사를 논단해선 안 돼

    • 독립史 연구 지지부진…‘제2의 NBC 사태’ 우려

    • ‘BH 사퇴 종용’ 사건, ‘다시는 그러지 말라’

    • 文, ‘DJ-오부치 선언’ 발전시켜야 할 사명

    • 尹 의사가 여당, 야당 위해 독립운동했나

    • 독립운동 정신으로 국민통합 나서겠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잘 알려졌듯, 윤주경 미래통합당 의원의 할아버지는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일왕 생일 축하연) 및 전승 기념식’에 물병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등 군 수뇌부를 섬멸한 불멸의 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공대’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수행한 윤 의사의 의거는 당시 침략의 깃발을 치켜든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국민당 정부 장제스의 표현대로 “100만 중국군과 4억 국민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한 것”이다. 윤 의사 의거는 이후 한국광복군 창설 등 임정을 적극 지원하고 대한민국 독립의 계기가 됐다. 

    좋든 싫든 윤 의원 어깨에는 할아버지 후광이 따라다닌다. 든든한 뒷배일 수 있지만 어쩌면 매사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멍에일 수도 있겠다. 6월 11일 국회 의원실에서 윤 의원을 만났다. 

    - 윤 의원 하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릴 적에는 ‘의사(義士)’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동네 골목길에서 ‘우리 할아버지는 의사인데 병 고치는 의사(醫師)는 아니래요’라고 했다가 ‘너 말 한 마디, 몸가짐 하나가 할아버지에게 자랑이 될 수도,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한 아주머니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내 말이 할아버지를 부끄럽게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와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학창 시절에도 ‘윤봉길 의사 손녀가 그러면 안 돼’라는 말에 뒤에 숨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구속’

    -할아버지 존재가 가족에게는 부담일 수 있겠다. 

    “아버지(윤종·1929~1985)는 할아버지(윤 의사) 때문에 짐짓 진중하게 행동하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윤 의사의 손녀가 저 모양이냐’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조심하며 살았던 거 같다.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내 삶을 조절해 주는 삶의 테두리이자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멍에는 아니었다.” 

    - 윤 의사 장손녀가 국회의원을 한다니 집안 반응은 어땠나. 

    “독립운동가 후손 등 주변 지인들이나 집안 어른들과 의견을 나눴다. 내가 정치를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는데 대부분 ‘독립기념관장도 무탈하게 마쳤으니 더 큰일을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어머니(윤봉길 의사 며느리 김옥남 여사)는 의외로 대범하고 통이 크다(웃음). 어머니는 ‘윤봉길 의사가 야당이나 여당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운동을 했다. 너도 어느 당이든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면 된다는 생각만 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어깨가 무거워지더라.” 



    -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뭔가. 

    “독립기념관장 재직 시절(2014~2017) 국정감사 때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독립기념관에서 만들어준 모범 답안은 ‘저희가 부족했습니다’였다. 그런데 3년 정도 기관장을 해보니 화가 나더라. 의원들이 독립기념관과 독립운동사 연구 사정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의원들이 잘 모른다? 

    “20여 개국에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는데 1년에 한두 번 조사할 예산만 배정해 연구가 더디다. 막상 자료를 수집해 들어와도 분석하는 데 굉장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니 자료만 쌓인다. 그리고 국내 독립운동사 전공자도 얼마 안 된다. 그러니 국회의원이 자료를 요구하면 과거 연구 자료를 줄 수밖에 없는데, 매번 지적을 받는다. 나중에는 ‘국회가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한 적도 있다(웃음). 정책,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에도 이 생각이 나더라.”

    독립운동史 연구에 나서야 하는 이유

    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2020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윤주경 의원이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2020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윤주경 의원이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 동계올림픽에서는 왜…. 

    “당시 (미국 올림픽 주관 방송인) NBC가 개회식 방송 도중 ‘일본이 과거 한국을 강제 점령했지만 모든 한국인은 일본이 문화와 기술, 경제에 중요한 본보기가 됐다고 말할 것’이라는 해설자의 말에 국민 모두가 공분했다. 물론 NBC는 사과했지만, 제2의 NBC 사태가 또 생길 수 있다. 우리는 매번 역사 왜곡에는 분노하면서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다. 독립운동사를 지금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향후 일본이 연구한 자료를 가져와 우리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 보수정당에서 ‘비례 1번’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당이 독립운동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겠다는 의미, 그리고 국민통합에 나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당장은 국민통합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국민통합의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사과 두 개를 놓고 하나를 결정한 게 아니라 우리 당에서 제안이 와서 내가 뭘 할지를 생각했다. 민주당에서는 오라는 얘기가 없었다(웃음),” 

    - 최초 발표 때는 비례대표 21번이었다가 1번으로 바뀌었다. 서운함은 없었나. 

    “전혀.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고, 공천은 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여러 직능대표 중 21번이라기에 ‘이 당에서 추구하는 독립운동의 가치가 21번째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시 1번이 되는 과정은 당이 국민 목소리를 듣는 기회이자 국민들이 독립운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막상 1번이 되니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 책임감? 

    “내가 역할을 잘하면 눈길에 새 발자국이 돼 다음 사람이 내 길을 따라 걸어올 수 있으니까.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책임감이 무겁다. 내가 잘한다면 더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못하면…매일 용기와 절망 사이를 오가고 있다.(웃음)” 

    - 독립운동, 건국, 산업화, 민주화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성과는 모두 국민통합이 바탕이 된 거 같다. 

    “맞는 말이다.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 말이 ‘망국노(亡國奴)’였다. 내 후손들은 망한 나라의 노예라는 말을 듣게 하지 않겠다는 게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었다. 산업화나 민주화 정신도 일맥상통한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 공부를 시킨 이유는 내 아이들에게 배고프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거였다.” 

    - 윤 의원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민간위원 등으로 국민통합 분야에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통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갈등 구조가 깊어진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3·1운동 100주년 행사를 하면서 정부나 사회에서 통합 목소리가 더 강하게 나왔어야 했다.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한 약산 김원봉 관련 발언도 결과적으로 국민 분열을 낳았다. 약산 역시 독립군 활동을 했지만 6·25전쟁 책임자라는 사실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모든 게 소중한 역사인데 어느 한쪽만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군사적 역량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左右 이념으로 역사 재단해서야…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윤 의사 
동상을 배경으로 선 윤주경 의원. [지호영 기자]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윤 의사 동상을 배경으로 선 윤주경 의원. [지호영 기자]

    - 최근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도 논란이다. 

    “백선엽 장군도 소위 간도특설대 활동도 했고, 6·25전쟁 영웅이라는 공적도 크다. 독립운동 역사가 중요하듯, 정부 수립 이후 만든 우리 역사도 소중하다고 본다. 오늘날 좌우 이념 시각으로만 보면 한쪽만 보는 ‘외눈박이’ 거인이 된다. 우리가 함부로 공과를 재단할 수도 없고, 정치가 역사를 논단하는 것도 안 된다.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봐야 하고, 그렇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통합도 이뤄진다.” 

    - 꽉 막힌 한일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1998년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양국 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과거 역사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고 미래를 열어나가자고 한, 그 약속의 길을 가야 한다. 이는 소중한 외교 자산이다. 그 이상 발전시키는 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사명 아닌가.” 

    -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일제 피해자인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보나. 최근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윤미향 민주당 의원과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이 비판받는데.
     
    “사실 위안부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이해를 만들어낸 게 윤 의원만의 공적은 아니다. 수많은 단체와 연구자, 활동가가 있었고 여러 할머니가 목소리를 낸 결과였다. (6월 8일) 문 대통령이 한 ‘그러한 노력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도 투명해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이용수 할머니가 말씀하신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위안부에 대해 배워서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자’인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윤 의원이 독립기념관장 시절이던 2017년 7월경 국가보훈처 국장으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사실은 ‘신동아’ 보도(714호)를 통해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는 “외압은 없었다”고 했다. 보훈처 등에서 해명이나 사과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는가. 

    “보훈처의 사과나 해명은 물론 (당선을) 축하한다는 인사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편하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들이 얼마나 무서우면 그럴까 하는 마음도 든다. 다만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앞으로 나와 같은 일(임기 전 사퇴 종용)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은 전하고 싶다. 당시 내가 사표를 내지 못한 이유 또한 내가 전례를 만들면 다음 관장 역시 이런 일을 겪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 인간 윤주경은 어떤 사람인가. 

    “남의 말을 쉽게 믿고 잘 받아들이는 경솔한 면이 있지만 ‘할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행동할 때는 많이 고민하고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나라고 해서 왜 인생에 굴곡이 없었겠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고 믿는다. 어떻게 보면 나는 빈 곳이 많다. 부족한 게 있으면 채워줬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지켜야 할 최후의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배수강 편집장

    배수강 편집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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