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소통을 위해 메일 주소를 남겨두는데 이번처럼 수신함이 뜨거웠던 적도 없었다. 그것도 ‘선함’의 방향으로. 군 복무 중인 병사, 해외 교민, 개척교회 목사 부부, 증권가 애널리스트, 기자 지망생, 피자가게 주인…. 칼럼 잘 봤다, 몰랐던 이면을 알게 돼 고맙다, 늘 고국을 걱정하는데 이런 글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고백컨대 메일함을 열어보는 순간이 이렇게 두근두근 설렜던 적도 없었다. 이번 ‘신동아’ 칼럼 ‘나는 왜 윤미향 씨처럼 저축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격려든 욕설이든 역시 독자들의 메일에도 답장을 드리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에 따라 늘 따뜻한 마음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사실 이런 칼럼을 쓸 때마다 썩 유쾌하지 못하다. 칼럼 가운데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나부터도 ‘과거를 파는’ 일종의 논리 모순을 범했기 때문이다. 제발이지 과거는 그만 이야기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토론하며 준비하기에도 촉박한 시대에 아직껏 친일파 묘소를 파내자느니, 6·25때 나라를 구한 장군을 현충원에 모실 수 없다느니 하는 ‘역사 놀음’에나 매달리고 있으니, “이러다 양란(왜란, 호란) 부역자 처벌 특별법까지 만들겠네!” 하는 비아냥거림마저 들리는 것이다. 지금 서민 경제가 어떻고, 앞으로 시대의 변화를 예상컨대 어떠한 준비가 있어야겠다, 이런 논쟁이 더 활발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 나 같은 편의점 점주가 생업에 전념하지 않고 서툰 칼럼으로 과거를 고백하는 기회는 차라리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다
한 친구가 이번 칼럼에 대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의 페이스북 반응을 갈무리해 보내주었다. 박 교수는 “정의연 마녀사냥에 이렇게 386세대 전향자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무엇이 마녀사냥이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의연은 어떠한 비판이나 의혹 제기도 허락되지 않는 성역(聖域)이란 말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박 교수는 어쩌면 논점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권에 김일성 숭배가 만연했던 이유를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니 “(전향해) 박정희 후속 체제에 충성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혹시 지금 그런 충성심(?)의 견지에서 정의연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려는 것일까.박 교수는 “이게 많은 뉴라이트들의 사상적 궤도”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른바 ‘전향자’들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분화됐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다. 누군가는 민주당으로 갔고, 누군가는 이른바 보수 인사가 됐으며, 또 누군가는 진보정당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고, 절대 대수는 평범한 시민으로 세상을 관망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갑작스레 ‘뉴라이트’라고 딱지를 붙이고 “동원됐다”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마녀사냥 아닐까. 그동안 여러 저작과 강연을 통해 박 교수의 생각과 입장에 많은 부분 공감하던 필자로서는 약간 섭섭하고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