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는 관객들
실존 인물 바넘 이야기…희대의 사기꾼 vs 흥행 천재
스토리와 사운드가 빚어낸 영상의 감동
대중은 속는 줄 알면서 즐거우면 또 속는다
[Bona Film Group]
뻔한 스토리에 불타는 가슴
영화 ‘위대한 쇼맨’의 원제는 ‘The Greatest Showman’이다. 그냥 위대한 것도 아니라 ‘가장 위대한’이라는 최상급 수식어가 붙은 쇼맨이다. 그는 실존 인물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1810~1891)이다. 서커스단과 박물관을 운영한 바넘은 19세기 미국의 쇼 비즈니스 개척자로 흥행의 귀재였다. 지상 최대의 쇼맨으로 칭송받았지만 동시에 ‘지상 최대의 협잡꾼’ ‘사기꾼의 제왕’과 같은 비난도 함께 받았다.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는 자신의 박물관에 기형이나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고용해 노이즈 마케팅, 혹은 신기마케팅으로 포장된 전시회와 쇼를 펼쳐 돈방석에 앉았다. 이 사실은 이미 실존 인물에 관한 수많은 자료와 언론의 기사로 남아 있다. 따라서 아무리 영화의 극적 감동이 중요해도 바넘의 상술(商術)을 마냥 미화할 수는 없다.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은 여느 전기 영화와는 다른 색채의 영화를 원했다. 그는 영화 메가폰을 잡자마자 투자자에게 뮤지컬 영화를 제안했다. 시간과 자금이 더 많이 소요됐다. 하지만 투자자를 설득한 제작진은 영화 ‘라라랜드’의 황금 콤비였던 음악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을 영입해 모든 음악을 맡겼다.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허점이 많은 인물인 바넘 일대기를 서사로 풀어내는 자충수를 피하면서도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려면 음악의 힘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전 먼저 발매된 음반은 ‘역대급’ 찬사를 받으며 65개국에서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주옥같은 선율은 영화 흥행몰이를 이끌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빌보드 100 차트에 ‘위대한 쇼맨’ OST 4곡이 올랐고, ‘This is Me(이게 바로 나)’는 75회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다. 음악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팥소 없는 찐빵이 됐을 것이다. 영화는 바넘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영화 주인공은 서커스단원들’이라고 느껴진다. 일례로 ‘This is Me’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바넘 역의 주인공 휴 잭맨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바넘이 카리스마 흐르는 웅장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으로 시작해 가난했던 바넘의 어린 시절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그도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백만장자이지만, 영화는 극적 환상을 투영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일부 과장하고 첨삭했다. 신부 집안의 격렬한 반대에도 바넘은 첫사랑 채리티(미셸 윌리엄스 분)와 10년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실제로는 집안 어른의 중매로 바넘이 19세 때 채리티와 결혼했다).
‘기부 천사’ 린드와 ‘금수저’ 필립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신이 다니던 직장이 파산해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바넘은 파산 사실을 은행에 속이고 직장 재산을 담보로 불법 대출을 받는다. 그 돈으로 ‘호기심 박물관’을 개장한다. 코끼리 박제 등 진귀한 전시품은 관객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박물관은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바넘은 발상을 전환한다. 딸의 조언을 받아들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커스 쇼를 구상한다. 먼저 은행에서 우연히 만난 왜소증 장애인 청년 톰 섬(샘 험프리 분)을 수소문해 찾아간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이 청년은 “조롱거리가 필요하냐”고 묻고, 바넘은 흔쾌히 이렇게 대답한다.“기왕에 조롱당할 것 돈 받으며 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난쟁이 장군’으로 명명된 그의 영입을 기점으로 바넘은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광고를 보고 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여인, 샴쌍둥이, 공중곡예사, 거인,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사나이 등 사연 많은 ‘아웃사이더’들이 총집합했다. 그들은 그동안 꽁꽁 숨겨둔 가슴속 열정을 불사르며 무대에 혼을 담았다. 편견을 향해 보란 듯 최고 무대를 펼친 그들은 더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들은 빛나는 스타가 됐고, 바넘은 그들의 꿈을 실현해 줬다.
연일 만석인 서커스장은 관중의 환호가 그칠 줄 모르고, 바넘은 가족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선사했다. 그러나 만족할 수 없었다. 평단의 냉담한 반응은 여전했고, 상류층은 그의 쇼를 ‘불쾌한 저질 쇼’로 폄훼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세상과 단절된 이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엮어야 했다. 바넘은 촉망받는 연극 극작가 필립(잭 애프론 분)에게 접근해 그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시계추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제안한다. 필립은 서커스 수익의 10%를 받기로 계약하고 바넘과 동업자로 한솥밥을 먹게 된다. 격식 있고 우아한 것만 보고 살았던 ‘금수저’ 필립의 눈에 흑인 곡예사 앤 휠러(젠데이아 콜맨 분)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내 인종과 신분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필립의 합류로 쇼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영국 여왕의 초대를 받는 영광을 누린다. 바넘은 또 다른 시도를 한다. 유럽 최고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레베카 퍼커슨 분)에게 뉴욕 콘서트를 제안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기부 천사’로 불리는 린드가 돈만 좇는 바넘과는 가치관이 맞지 않았다. 그러나 바넘은 린드의 감성에 호소해 계약을 성사시킨다.
“사람들은 속고 싶어서 제 쇼를 보러 오지요. 하지만 한 번쯤은 그들에게 진짜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린드의 전미(全美) 투어는 대성공을 거두며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린드의 콘서트에 집중하느라 바넘은 기존의 서커스와 가족에게 소홀했고, 단원과 가족들과의 갈등은 심화된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
턱수염이 풍성한 여가수 레티 러츠(케알라 세틀 분)는 자신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이들을 향해 다른 극단 단원들과 ‘This is me(이게 바로 나)’를 열창한다. 그가 단원들과 함께 역동적인 군무를 펼치는 파워풀한 장면은 보는 이들의 탄성과 눈물을 자아낸다. 영화의 백미다. 같은 가수이지만 린드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은 러츠는 오매불망 린드의 콘서트를 기대한다. 바넘은 고매한 상류층 관객이 눈살을 찌푸릴까 염려돼 단원들의 관람 좌석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입석으로 배정한다. 공연 후 열린 리셉션 파티에 한껏 멋을 낸 단원들이 찾아오지만, 바넘은 야박하게 문을 닫아버린다. 흥분한 러츠와 단원들은 함께 노래 부르며 “저 두꺼운 벽을 뚫고 태양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외친다.얼마 전까지 세상과 단절돼 어두운 세계에 은신하던 이들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한다. 노래 ‘This is me’에는 인간은 누구나 특별하다는 환상적인 울림이 담겨 있다. 과거의 악몽이 재현된다고 해도 이제는 자존감을 되찾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설 준비가 돼 있다. 그 강력한 에너지가 전달되면서 관객들도 덩달아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의 벽과 맞선다.
하지만 바넘의 성공에 찬물을 끼얹는 의외의 복병은 린드였다. 바넘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바넘이 받아들이지 않자 복수의 칼을 빼 들어 스캔들을 터뜨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넘의 가정은 파탄 나고 공연장은 화재로 잿더미가 된다. 바넘은 다시 알거지가 돼 나락으로 떨어진다.
바넘이 린드의 투어 공연을 기획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기획자와 아티스트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 스웨덴 지폐에 실릴 정도로 스웨덴의 존경받는 인물인 ‘기부 천사’ 린드가 질투로 바넘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설정은 사실관계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흙수저’ 바넘의 성공 비결
환상적인 노래와 화려한 안무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위대한 쇼맨’. [Bona Film Group]
물론 얕은 상술과 삼류 쇼로 손가락질받다가 파산하기도 했지만, 당시 바넘의 의도는 적중했다. 실제 파산한 바넘이 다시 서커스 쇼를 재건할 때 단원들은 그를 떠나지 않고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가 야만적인 돈벌이로만 단원들을 대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바넘은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세기 후반 베스트셀러였던 자서전 ‘위대한 쇼맨’과 ‘세계의 사기꾼들’ ‘투쟁과 승리’ ‘돈 버는 기술’ 등 주로 자기계발 서적을 저술했다. 과대 홍보나 마케팅은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술이라며 정당화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기 행각’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다. 노예제를 반대하고 흑인의 참정권을 주장한 그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치 노선을 변경했고, 1865년에는 정치에 투신해 코네티컷주 의원, 브리지포트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자선 활동이 경제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고백해 기부 활동을 의심받기도 하지만 매사추세츠 터프츠대 박물관 건립에 거액을 기부해 학교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또한 건강이 나빠지자 뉴욕의 ‘이브닝 선’지에 자신의 부고 기사를 내 대중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어쨌든 ‘흙수저’ 바넘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대중의 마음을 간파하고 감정에 호소해 이성을 마비시키는 언변이었다. 눈도 깜짝 않고 침소봉대를 일삼았지만 어려운 시절 대중은 그의 판타지를 보고 희망을 읽었다. 그를 보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엇갈린다.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면 뻔히 알면서도 결국 속을 수밖에 없는 기상천외 속임수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볼거리와 매력적인 음악의 대향연은 관객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 속 서커스장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판과 오버랩되는 거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문화와 사회’(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