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코로나 걱정요? 요새 일당 10만 원 일자리 없어요!”

‘언택트 수혜’ 마켓컬리 물류창고서 일해 보니…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0-06-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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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이후 언택트 소비 첨병 ‘신선식품 배송업’

    • 일평균 주문 5만 건, 물동량 늘어 인력 수요↑

    • 수도권 한 곳 물류센터 인력 100명 달해

    • 10초당 박스 1개씩 포장하는 쉼 없는 노동

    • “사회적 거리 2m 유지해야 하나 1m만”

    • 창고 인근 식당·흡연 공간에서는 거리 유지 안 돼

    서울 송파구 마켓컬리 물류센터를 방역하기 위해 5월 27일 방역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송파구 마켓컬리 물류센터를 방역하기 위해 5월 27일 방역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6월 3일 오후 2시.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패딩(누비옷)을 손에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울지하철 2·4호선 사당역 인근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 물류창고에서 일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물류창고로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고서야 이들의 이마에 맺힌 땀도 식었다. 

    “여기는 초보도 가능하나 냉장·냉동창고에서 근무합니다. 좀 추울 수도 있어요.(패딩, 넥워머 준비 등) 괜찮으신가요?” 

    마켓컬리 일일 업무에 지원하면 가장 먼저 받는 문자메시지다. 작업 현장의 온도는 영상 4도.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덕분에 열심히 일해도 여간해서 땀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여름에는 물류창고 안으로 들어가기까지가 고행길이다. 물류창고 주변에서는 무더위에도 패딩 입은 사람들이 인상 쓰며 담배를 피우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일터 들어가니 “와 살 것 같다”

    2015년 29억 원이던 마켓컬리의 매출액은 지난해 4289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배송량은 지난해 기준 2300만 박스에 달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대면(언컨택트·uncontact) 소비문화가 확산하면서 마켓컬리와 같은 신선식품 배송업체가 유통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늘어나는 물동량을 처리하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이날 경기 의정부에 있는 물류창고에 모인 인력은 100여 명에 달했다. 작업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일용직 근로계약서와 코로나19 자가진단 확인서를 작성한다. 물류창고가 코로나19 재확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5월 23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같은 달 27일 쿠팡 고양 물류센터와 서울 송파구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줄줄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의 경우 근무자와 접촉자를 포함해 6월 9일까지 139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마켓컬리에서는 추가 확진자가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원래 2m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현장 특성상 1m 정도만 유지하면서 할게요. 마스크 꼭 코끝까지 올리셔야 해요.” 

    입장을 앞두고 작업 현장 안에서 방역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현장관리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인원 점검과 주의사항 안내가 길어지면서 가림막 없는 공터에서 대기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현재 기온은 29도. 다들 냉장창고 업무에 대비해 패딩과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기자 역시 니트 위에 패딩을 입고 있었다. 목도리와 장갑은 기다리다 지쳐 벗었다. 땀을 흘리며 인상을 쓰고 있던 사람들은 “입장하면 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자 종종걸음으로 물류센터 입구로 몰려갔다. 

    “와 드디어 살 것 같다.” 

    먼저 냉장창고에 들어간 사람들의 외마디 외침이었다. 이내 너도나도 냉장창고 입구로 몰리면서 혼선이 생겼다. 입구 앞에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됐으나 몰려오는 사람 한명 한명의 체온을 일일이 측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땡볕 아래 서서히 익어가던 사람들에게 구석에 놓인 열화상카메라가 눈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입은 가만히 손은 바쁘게

    물류센터 작업은 크게 △피킹 △다스 △포장 △분류 네 가지 순서로 구성된다. ‘피킹’ 근무자들이 일차적으로 상품을 창고 내 구역별로 대분류하면 ‘다스’ 근무자들이 이를 구매자별로 소분류한다. 이후 ‘포장’ 근무자들이 해당 상품을 종이 박스나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하면 ‘분류’ 작업자들이 배송 권역별로 포장된 박스를 최종 분류하며 배송 준비를 마친다. 

    이날 기자가 담당한 업무는 포장. 2인 1조로 꾸려져 한 창구에 2개 조가 투입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작업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어 점점 불안해졌다. 같은 조에 속한 동료에게 물었다. 

    “처음 오신 분인가요?” 

    다행히 그는 이곳에서 제법 오래 일을 했다. 작업 방식을 묻자 간단한 설명만이 돌아왔다. 

    “제가 물품을 검수해서 송장과 함께 박스에 넣어줄 테니,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테이프를 예쁘게 붙여주면 돼요.” 

    7시간 20여 분 동안 함께 일하며 나눈 대화 중 가장 긴 말이었다. 물류센터 안에서는 대화를 나눌 틈이 없다. 작업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박스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통상 10초 안에 박스 1개를 처리해야 작업이 지연되지 않는다. 

    테이프는 좀체 예쁘게 붙지 않았다. 장갑을 낀 채 테이프를 눌러 붙이려니 곳곳에서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겼다. 그렇다고 하나씩 정성 들여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작업 속도가 느려지면 테이프 대신 팀원의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 위생상의 문제는 물론 수시로 드라이아이스를 만져야 해 장갑을 벗을 수도 없었다. 물류센터 교육 담당자가 “포장 파트에서 다툼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한 이유가 이해됐다. 적어도 흔한 불화 사유인 ‘성격 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2시간의 작업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물류가 쏟아졌다. 볶음밥·국·닭가슴살·대패삼겹살·냉동과일·핫바 등 친숙한 식품이 물밀 듯 밀려왔다. 물류센터에서는 식품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박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1~2가지의 냉동식품만 주문한 경우 검수와 포장이 간단하다. 10종이 넘는 다양한 상품을 복수로 주문할 경우 손이 바빠진다. 예상과 달리 박스에 한 번에 담기지 않을 경우 좀더 큰 박스에다 새로 포장해야 한다. 개중에 근무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주문자다. 아이스크림의 경우 배송 완료 때까지 녹지 않도록 종이백 안에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추가 포장을 해야 하는 탓이다. 

    시계를 볼 새도 없이 2시간 동안의 첫 작업이 끝났다. 오후 5시 40분부터 7시까지 80분간의 식사 및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다음 날 출근 여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퇴근 및 당일 신청 시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라는 재촉 문구도 적혀 있었다.

    쉬는 시간과 함께 풀리는 긴장

    방역 지침은 쉬는 시간일수록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측은 식사 시간과 흡연 시간을 코로나19 취약 시기로 꼽은 바 있다. 권준욱 방대본 부본부장은 5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대해 “식당이나 흡연실에서 충분한 거리두기나 생활방역수칙이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일단 파악하고 있다”며 “흡연실을 이용하다 보면 마스크를 벗게 되고 다른 이용자들과 밀접한 접촉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작업을 마치고 물류센터를 나서니 50여 명이 흡연 부스 주위를 둘러싼 채 다닥다닥 붙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간만의 휴식시간에 옆 사람과 대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사 시간 역시 마찬가지.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휴게실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따로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류창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이곳 물류센터 근처에 있는 식당은 백반집 한 곳뿐이다. 패딩을 벗어둔 채 구석자리에 홀로 앉으니 식당 주인이 테이블을 다른 작업자 2명과 함께 쓰도록 권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붙어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처음 일한다는 30대 청년 2명과 함께 밥을 먹었다. 이들은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 이만큼의 일당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흔치 않다”며 입을 모았다. 마켓컬리 물류센터의 일당은 업무마다 차이는 있지만 9만6000~10만5000원 선이다. 

    김익태(가명·35) 씨는 1월부터 4월까지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고깃집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애초 창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단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창업을 유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쉴 수는 없어 찾은 곳이 마켓컬리 물류센터라고 한다. 김씨의 말이다. 

    “코로나19가 걱정된다고는 해도 10만 원이 넘는 일당을 당일 지급해 주는 곳은 흔치 않다. 뉴스에서 물류창고 확진 사례를 많이 보도해 알고 있지만 코로나19가 걱정된다면 이곳에서 일하겠나.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투잡’을 뛰는 등 어렵지만 성실히 사는 사람들이다. 다만 대부분이 젊다보니 상대적으로 감염 우려를 덜하는 것 같다.” 

    김씨 옆에 있던 30대 A씨 역시 “생각해 보니 물류센터에서 체온을 잰 기억이 없다. 열화상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요새 이만한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도 막을 수 없는 퇴근 욕구

    5월 28일 서울 한 물류센터에 택배 박스가 쌓여 있다. [뉴스1]

    5월 28일 서울 한 물류센터에 택배 박스가 쌓여 있다. [뉴스1]

    어느덧 식사시간이 끝나고 저녁 근무가 시작됐다. 수시로 뛰어다니면서 냉동 제품이 담긴 플라스틱 박스를 6층으로 쌓아 끌어왔다. 묘기를 부리듯 종이 박스 60여 개를 한 번에 옮기는 작업자도 보였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물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감을 찾아올수록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감이 남으면 그만큼 퇴근 시간이 늦춰진다. 퇴근 시간이 가까울수록 작업장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마켓컬리 측은 5곳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5월 말 기준 5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마켓컬리는 일평균 주문 수가 5만 건이 넘는다. 손에서는 냉기가, 발에서는 열기가 나도록 일해야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할 수 있다. 작업장을 넘나들며 일을 하다 보니 거리두기 수칙도 점차 지켜지지 않았다. 먼저 일을 마친 타 파트 일용직 근로자들이 포장 파트로 넘어와 함께 박스를 포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2명이 한 조로 작업을 하던 라인에 3명씩 달라붙는 식이었다. 12시 35분 마지막 포장은 물론 뒷정리까지 끝났다. 

    “퇴근하셔도 됩니다.” 

    관리자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너나 할 거 없이 출입구로 몰려나갔다. 실내등을 소등한 셔틀버스가 작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버스 좌석에 앉자 사람들은 금세 잠이 들기 시작했다. 물류창고 일용직 근로자도, 그들이 포장한 택배도 그렇게 집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마켓컬리 측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켓컬리의 한 관계자는 “서울 송파구 마켓컬리 물류창고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방역 주기를 단축하는 등 보다 강화된 방역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물류센터 내부에서 비말이 퍼지지 않도록 작업자들이 페이스실드(face shield)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향후 물류센터 바깥 공간을 활용해 입장 시에도 작업자들이 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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