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은수저’ 표지.
아름다운 표현으로 가득한 책을 만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읽고 어서 적어둬야지 싶어서다. ‘은수저’라는 책은 처음부터 마음을 달궜다. 작가 나카 간스케가 1913년 발표한 소설이다. 그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 작품이니 따져보면 100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다. 그 시절, 특별하지 않았고 딱히 아름다운 면모도 없던 온갖 것이 작가의 펜을 통해 어여쁜 존재로 다시 태어나 책 속에 살아 있다.
‘봄이 되면 유학자 같은 자두나무가 구름처럼 꽃을 피우고 그 푸르스름한 꽃이 눈부신 햇살을 받아 물큰한 향기가 주위에 감돈다. (중략) 자두 꽃이 창백하게 져버리고 나면, 콩알만 한 열매가 하루하루 차오르는 것을 애태우며 지켜보았다.’
이렇게 열매 맺는 나무가 자두만은 아닐 텐데 자두나무는 참으로 운이 좋게 작가 집 문 앞에 자리를 잡았구나 싶다.
‘두부가 파르르 새하얀 살결에 접시의 남빛이 스며든 것처럼 비쳐 보였다. 연한 초록색 가루를 하늘하늘 뿌려 곧 녹을 듯한 것을 간장에 흠뻑 적시자 분홍빛이 스르륵 서린다.’
2~3일에 한번은 식탁에서 만나는 두부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니! 반복되는 먹는 행위 중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이 매번 지나가고 있다. 익숙한 것을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 맑고 영롱해진다면 앞에 놓은 과일 한 쪽, 두부 한 모에 고맙지 않을 수 없겠다.
이야기에 녹아든 맛 탐닉하기
몸이 약한 작가는 늘 이모에게 업혀 다니거나 누나와 시간을 보내고, 집안과 주변을 배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수십 년을 한 자리에 서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무는 갈 곳 없는 아이에게 친구가 돼주었다.‘피가 흐를 것처럼 싱싱한 삼나무와 노송나무 대팻밥을 핥아보면 혀와 뺨이 오그라드는 듯한 맛이 난다.’
하나뿐인 친절한 누이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동생의 시선은 또 얼마나 예쁜가.
‘아름다운 버찌가 누님의 입술에 살짝 끼워져 혀 위로 도르르 굴러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개처럼 예쁜 턱이 몽실몽실 움직였다.’
비단 음식 표현뿐만이 아니라 ‘은수저’에는 그 시절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눈높이의 모든 것이 한 자 한 자 색다른 표현으로 새겨져 있다.
소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표지.
소설 ‘화과자의 안’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