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뉴스後

1983년생이 어떻게 운동권 학습서적을…

지식사회 화제 ‘조국·윤미향·최강욱 공통 QR코드 마오쩌둥 ‘모순론’’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6-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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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전 교수 “586 이중성 날카롭게 분석, 명쾌하다”

    • 신각수 前대사 “왜 작금의 모순이 암처럼 커지는지 설명”

    조성오의 ‘철학 에세이’와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송건호 등이 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등은 86세대의 정신세계를 규정지은 대표적인 저작물로 꼽힌다(왼쪽부터).

    조성오의 ‘철학 에세이’와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송건호 등이 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등은 86세대의 정신세계를 규정지은 대표적인 저작물로 꼽힌다(왼쪽부터).

    “1983년생 저자가 어떻게 1983년에 출간돼 당시 대학 1학년들을 운동권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 기초도서 ‘철학에세이’를 아는지. 586 세대 조국, 최강욱, 윤미향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글. 결국 주요 모순이 있으므로 자신들의 허물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명쾌하다!” 

    이경전(51)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한 토막입니다. 이 교수는 카이스트(KAIST) 경영학과 87학번으로 586 세대(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의 일원입니다. 최근에는 미래통합당 여의도연구원장 하마평에 올라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AI) 및 사물인터넷(IoT) 분야 권위자로 꼽힙니다.

    “대학 1학년이면 무조건 읽던 책인데”

    이 교수가 감탄한 글은 ‘신동아’ 7월호에 실린 ‘조국·윤미향·최강욱 공통 QR코드 마오쩌둥 ‘모순론’’(이하 ‘QR코드’)입니다. ‘모순론’은 마오쩌둥이 1937년 8월 옌안 항일군사 정치대학에서 한 강연을 정리한 글입니다. 제국주의가 주요 모순일 때는 국가 내부 각 계급의 모든 모순이 부차적 문제로 전락한다는 게 핵심 골자인데요. 쉽게 말해 주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기타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접어두라는 겁니다. 

    ‘QR코드’의 필자는 37세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입니다. 그간 진보논객으로 불려온 인물이죠. 편의상 이 글에서는 작가라고 칭하겠습니다. 노 작가는 ‘모순론’이 NL(민족해방) 계열을 비롯해 거의 모든 운동권 담론의 바탕에 깔린 원리가 됐다고 짚었습니다. 기자 나름대로 그의 논리를 재활용하자면 이런 겁니다. ‘반일’ ‘반박근혜’ ‘반이명박’ ‘반신자유주의’가 중요하니 위안부 할머니, 영세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등의 삶은 ‘다음 문제’로 미뤄둔다는 겁니다. 그 행동 양식이 이른바 ‘닥치고 정치’죠.(누가 그러는지, 즉 주어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왜 “1983년생 저자가 어떻게 ‘철학에세이’를 아는지”라고 썼을까요. 사연이 있습니다. 노 작가는 ‘QR코드’에서 1983년 초판이 출간된 ‘철학 에세이’(조성오 지음)를 언급했습니다. 책의 셋째 마당 “모든 것은 변화한다”가 ‘모순론’의 번안물에 가깝다는 겁니다. ‘철학에세이’가 운동권 교과서 역할을 하던 시절 대학에 다닌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흥미를 느낀 듯합니다. 24일 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철학에세이’는 당시 대학교 1학년이 무조건 읽던 책이에요. 일종의 운동권 기초 학습 서적인데, 그 무렵 태어났을 저자가 젊은 학자의 시각으로 분석하니 시사점이 큰 거죠. 1980년대 학생 운동하던 사람들이 동구권이 무너졌을 때 사회변화에 따라 자기 신념을 수정했어야 했는데, 운동권 586의 경우 그렇지 않은 모습이 많이 보이잖아요. 40년 전 생각을 갖고 지금 시대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거죠. 본인들(운동권 586)의 생각이 변해야 하는데, 물론 많은 사람이 변했습니다만 일부가 여전히 그러는 것 같아요.”

    작금의 모순덩어리와 해부학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역임한 신각수(65) 전 주일대사도 ‘QR코드’를 흥미롭게 읽은 모양입니다. 신 전 대사도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공유하면서 “왜 작금의 모순덩어리가 암처럼 커지는지 설명해주는 글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20세기에 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는 길은 국민 각자 올바른 잣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썼더군요. 청년 지식인 나연준(39) 제3의길 편집위원도 ‘QR코드’를 페이스북에 소개하면서 “이것은 해부학이다. 정말 잘 썼다”고 적어뒀네요. 

    뒷이야기를 공개하자면, 애초 기자가 노 작가에게 청탁한 큰 틀의 주제는 ‘진보 운동권 서사의 파산’이었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권력을 획득한 세력이 여태껏 스스로를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운동가로 여기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폐쇄적 조직문화와 바깥의 검증을 회피하는 태도가 혹 이런 정서에서 비롯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그러니 운동권 특유의 서사를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겁니다. 

    노 작가는 586 운동권 특유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다 ‘모순론’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지식사회에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기 넘치는 30대 철학도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영업 비밀을 미리 밝히자면 노 작가는 ‘신동아’ 8월호에도 기고합니다. 주제는 함구하겠습니다만, 한국 지식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글이 될 겁니다. ‘신동아’는 앞으로도 그릇된 통념에 균열을 내는 글을 꾸준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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