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부터 여러 언론에는 국내 의료진이 에이즈치료제, 말라리아치료제, 천식치료제 등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 임상시험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3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은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 임상시험을 주도했다. 이 연구는 세계 10개국, 73개 의료기관에서 공동으로 진행했다. 의료진은 코로나19 환자 1063명에게 렘데시비르와 위약(가짜약)을 각각 10일간 투여했다. 이 과정에서 렘데시비르 치료 효과가 확인되자 미국식품의약국(FDA)은 5월 1일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 승인했다.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싱가포르 등도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렘데시비르를 사용하고 있다.
렘데시비르, 임상시험 개시 한 달여 만에 긴급사용 승인
그렇다면 국내 약물재창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6월 13일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승인한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은 14건으로, 이 가운데 11건이 약물재창출과 관련돼 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대 교수는 “식약처에 임상시험 계획을 제출하고 승인받은 건 코로나19 환자가 하루 수백 명씩 늘어나던 3월이었다. 그런데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사 절차를 밟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렸고, 그사이 국내 환자 수가 급감했다. 좀 더 빨리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교수가 참여한 임상시험은 국내 11개 의료기관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의료기관마다 IRB 심사 일정과 진행 방식이 다르다 보니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식약처는 이런 문제를 막고자 3월부터 수차례 관련 공문과 안내문 등을 냈다.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임상시험은 긴급 상황인 점을 감안해 긴급회의 개최 등을 통해 우선적으로 심의해 달라” “여러 의료기관이 동일한 내용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경우 한 병원 IRB 심의 내용을 다른 병원에서 그대로 인정해도 된다”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권고가 일선 의료기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정부, 기간 단축 ‘권고’할 게 아니라 ‘강제’해야
다기관 임상연구에 참여한 또 다른 교수는 “식약처가 그런 권고만으로 임상시험 심사 관련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대학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가. 이미 정해진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특정 임상시험을 우선 심사하면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혜를 주려면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지 ‘권고’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식약처의 두 번째 요청도 현실화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A대학병원 IRB가 먼저 연구계획을 심의하면, 다른 병원은 그대로 따라도 좋다’는 것인데, 현장에서 그렇게 되겠나. 학자들은 ‘왜 우리 권한을 포기하고 A병원 말대로 하나’ 생각하게 된다. 결국 모든 의료기관이 각자 정한 절차에 따라 연구계획을 심의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임상시험이 조속히 진행되게 하려면 절차 간소화를 ‘권고’ 또는 ‘허용’할 것이 아니라 ‘강제’해야 한다는 게 현장 연구자들 요구다.
한 의대 교수는 “보건 위기가 발생하면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재창출 연구의 임상시험 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